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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사과 Oct 11. 2022

공기놀이를 아는 라트비아 바구니 할아버지

오징어 게임이 나오기 한참 전 이야기

라트비아에서 우리가 꼭 방문할 곳이 있어.

어느 날 피카 시간에 쇼코가 말했다. 교토에서 나고 자란 쇼코는 텍스타일 전공에 텍스타일 분야에서 일도 하다가 자기 작업의 방향을 찾고자 카펠라고든에서 2년째 공부 중이다. 항상 텍스타일에 진심이고 매사에 신중한 쇼코가 추천하는 곳이라 다 같이 귀를 기울였다. 우리가 가봐야 할 곳은 바로 자작나무 껍질 위빙 바구니 장인이 있는 이크네시(Ikneši) 공방이었다. 한참 위빙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었던 터라 모두 대찬성. 쇼코의 주도로 서둘러 라트비아에 도착 전 예약을 마쳤다.






아침 일찍 리가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한국의 고속버스터미널과 매우 비슷한 리가의 버스 터미널은 평일이라서인지 꽤 한산했고 우리는 리가트네로 향했다. 리가에서 리가트네는 한 시간이 걸렸다. 하차할 역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고 조금 당황했다. 아무것도 없는 너른 벌판에 앙상한 나뭇가지의 키 큰 나무 몇 그루와 버스정류장만 덩그러니 있는 것이었다. 사람도 집도 없고 도로만 있는 메마른 길을 따라 산속으로 20분 정도 걸어갔다.


기온은 낮지만 햇살이 따스하니 너무 좋았다. 가는 길에 가정집들이 종종 보이기 시작했다. 카펠라고든 동네에서 본 북유럽 집들과는 약간 다른 느낌이다. 라트비아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은 적도 있다는데 러시아가 이런 느낌일까 생각하며 계속 걸어갔다.







나무들이 없어지며 다시 큰 벌판이 나왔다. 이번에는 잘 다듬어지고 관리된 아름다운 벌판 가운데 집 한 채가 있었다. 바구니 위빙 공방 이크네시에 도착한 것이다. 공방 주인이자 바구니 장인인 할아버지가 나와서 우리를 반겨주었다. 집은 할아버지 부부가 사는 곳이고 외부 계단을 조금 내려가면 커다란 작업실이 있다. 잠시 할아버지가 대접해주신 커피도 마시고 집도 구경하며 몸을 녹이고 작업실로 내려갔다.



위빙으로 바구니 만들어보기!

나무껍질에 선을 그어 길게 여러 줄 자른다. 자른 나무껍질을 칼로 긁어 반들반들 평평하게 다듬은 후 왁스를 바른다. 가로세로가 엇갈리게 엮으며 위로 올라간다. 작은 집게로 고정시켜가면서 한 줄씩 엇갈리게 올라가는데, 이때부터 정신이 없어지기 시작한다. 손에는 왁스가 묻어 미끈거리고, 나무껍질은 자꾸 움직이고, 하나가 되면 다른 쪽이 빠지고, 엉망진창! 장장 네 시간이 걸려 우여곡절 끝에 조그마한 나무껍질 바구니가 완성되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고작 손바닥만 한 바구니 정도야 껌이지 싶었다. 그러나 큰 오산이었다. 직접 바구니를 만든 후부터 나에게 위빙 바구니는 "고작 바구니"에서 "장인이 만드는 정성 가득 바구니"가 되었다. 할아버지가 만든 것처럼 완벽한 모습이 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노력과 연습과 시간이 걸렸을까.  


장인 할아버지는 라트비아와 러시아 국경 근처의 자작나무 껍질만 고집한다고 했다. 자작나무는 라트비아 국가적으로 보호 대상인 나무라 개인이 껍질을 채집하는 것은 불법이다. 바구니를 만들려면 정식 루트를 통해 구해야 하는데 수요가 많지 않아 어렵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30년 이상 줄곧 바구니를 만들어오셨다. 이 분야에서는 유명해서 유럽과 일본에서 종종 전시회도 연다. 더욱이 일본에서는 이크네시 공방까지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처음엔 좀 무뚝뚝해 보여서 무서웠는데 워크숍을 들으며 대화해보니 오히려 순수한 마음을 가진 따뜻한 할아버지였다.





바구니를 다 만들고 공방 여기저기 전시된 장인 할아버지의 위빙 소품들을 구경했다. 갑자기 할아버지가 놀이를 하나 보여주겠다고 했는데, 작은 위빙 주사위들로 우리나라 공기놀이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그 공기. 초등학교 때 거의 매일 쉬는 시간마다 가지고 놀았던 공기. 안에 작은 돌 같은 것이 들어있어 무게도 소리도 공기다. 심지어 룰도 완벽했다.



깜짝 놀라서 나 그거 안다고 했더니, 


공기!

라고 정확한 발음으로 외치는 할아버지. 원래 이런 전통 놀이에 관심이 있어서 공기도 알게 됐다고 한다. 직항도 없는 먼 나라 라트비아의 작은 도시 리가트네에서 공기를 보다니 현실성이 조금 떨어진다. 즘이야 오징어 게임을 재미있게 보셨구나 하겠지만 당시는 한국에도 라트비아에도 넷플릭스가 없던 시절. 먼 땅에서 발견한, 잊어버리고 있던 추억 속 공기는 너무 반갑고 그립고, 왠지 뿌듯한 기분을 가져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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