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 가려면 왕복 10킬로미터거든요
눈이 많이 오는 욀란드는 겨울이 되자 구름 낀 흐린 날이 많아졌다. 회색빛 하늘과 오후 4시면 깜깜해지는 날씨 탓에 왠지 우울증이 생길 것만 같으면 다음날은 신기하게도 반짝 해가 났다. 그리고 흐린 날이 또 며칠간 지속되다 다시 화창한 햇빛이 찾아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특히 토요일에 해가 나면 더욱 마음이 들뜬다. 아침부터 따스한 햇볕이 너무 좋아서 같은 기숙사에 사는 친구와 카페에 놀러 가기로 했다. 카펠라고든에서 남쪽으로 약 5킬로미터 떨어진 마을의 베드 앤 브랙퍼스트 호텔에 딸린 작은 카페다.
뚜벅이인 우리는 집에서 아침을 먹고 해가 지기 전에 갔다 올 수 있게 얼른 출발하기로 했다. 두 시간쯤 걸어야 하니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학교 뒤 옥수수밭 옆길로 들어섰다. 여름에는 양쪽으로 옥수수가 빽빽하게 내 키만큼 자랐었다. 가을 수확이 끝나고 밑동까지 모두 잘라버려서 겨울인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 이 길은 바람이 심하게 불고 아무리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데, 둘이서 요즘 하는 작업 이야기를 하며 20분 정도 걸어 큰 도로에 도착했다. 큰 도로라고 해봤자 욀란드에서는 차가 조금 빨리 다니는 1차선 도로일 뿐이다.
큰길에서 왼쪽으로 꺾어서 조금 걷다가 옆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호수를 발견했다. 색이 너무 예뻐서 가까이 가보았다. 분명 호수인데 물 색도 얼음이 얼은 모양도 바다 같네.
물이 꽁꽁 얼어있는 듯 보였다. 60년에는 한강 노들섬 근처에서도 겨울이면 스케이트를 탔다는 이야기가 갑자기 생각났다. 욀란드 사람들은 아직도 그럴 것만 같아서 위에 올라가 보았다.
나: 괜찮을 것 같은데 한번 가볼까?
친구: 무슨 소리야, 절대 안돼!
- 잠시 후
나: 절대 안된다더니 어떻게 거기까지 갔어!
의외로 겁이 없는 친구가 나중에는 나보다 더 많이 나갔다. 물론 조심조심, 한 걸음씩. 사진을 찍고 가운데를 향해 얼음 위를 두 걸음 정도 더 걸어갔다가 문득 겁이나서 땅으로 올라왔다. 더 늦기 전에 카페를 향해 가야지!
모두 여기 있었구나!
드디어 카페에 도착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스웨덴 집 같았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아늑하고 아기자기한 카페였다. 게다가 피카 시간을 갖는 손님들로 북적북적해서 깜짝 놀랐다. 자리가 나기까지는 조금 기다려야 했다.
스웨덴의 시나몬롤 "카넬불라"가 보였다. 시나본의 시나몬롤과도 비슷하지만 카다몸이라는 향신료가 들어가 특이한 향을 내는데 일반 시나몬롤보다 훨씬 더 맛있다. 원래 시나몬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선뜻 손이 가지 않았는데, 먹어보고는 한 입에 반해버렸다는 사실.
맛있는 디저트와 함께 수다를 떨며 몸을 녹였다. 매일 평화로운 학교에서 같은 친구들과 작업만 하다가 바쁜 카페에 가니 잊고 있었던 도시 생활의 활기가 생각나 너무 즐거웠다. 밖으로 나오니 오후 2시쯤이었는데 길어진 그림자가 보였다. 스웨덴의 겨울 저녁노을이 지고 있었다. 왔던 길을 그대로 한 시간 걸어서 학교로 돌아왔다. 아무리 걷는 걸 좋아하지만 카페에 가려고 두 시간을 걸을 줄은 몰랐는데, 스웨덴 시골의 삶도 도시만큼 다채롭고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