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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신앙의 경계를 넘어

프레임 리터러시 : 두 번째 이야기

어릴 적,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신이 진짜 있을까?’를 생각하곤 했다.

지구와 우주 그리고 별들은 마치 과학의 언어로 설명되는데 주말이면 예배당에 앉아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에 내 머릿속에는 많은 물음표를 던졌다.


과학이 ‘보이는 세계’를 설명한다면, 종교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붙잡고 있는 셈이었다.

둘은 너무도 달랐고, 오랫동안 나는 그 둘 사이에서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 두 세계는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점을 깨달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여러 경계들이 무너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예술과 산업, 인간과 인공지능, 기술과 감성 사이의 벽도 조금씩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그 경계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우리는 다시 묻는다.


“이 세상은 왜 이렇게 만들어졌을까?”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과학과 종교는 오랫동안 대립해 왔다. 갈릴레오의 재판과 진화론을 둘러싼 논쟁이 그 상징이다. 하지만 지금은 ‘믿는 과학자’도 있고, ‘질문하는 종교인’도 자연스럽다.

방향은 다르지만 목적은 존재의 이유를 찾는 일이며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려 애쓴다.


과학과 종교는 서로 다른 질문을 던진다는 칼 세이건 『코스모스』를 읽고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신앙이 더 견고해졌다.

천문학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그는 종교를 역사와 감정의 일부로 존중하면서도, 과학과 구분된 영역으로 명확히 나누어 설명하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별과 우주를 바라볼 때 느끼는 감정을, 종교적 ‘경외심(awe)’에 비유했다.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우주를 바라보며 나는 신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우리는 별에서 왔으며, 다시 별로 돌아간다. 그것은 종교적 의미 못지않게 깊은 깨달음이다.”


이처럼 과학과 종교는 서로를 거울처럼 비춘다.

하나는 별을 관찰하며 감탄하고, 하나는 그 별을 만든 이에게 감사한다.

우리는 여전히 답을 모르지만,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별을 관찰하는 이도, 기도하는 이도, 결국 같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방법은 달라도, 우리는 모두 그 하늘을 이해하고 싶어 하는 존재다.

그게 인간이고, 어쩌면 그것이 믿음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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