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 속의 나, 가능성의 시간

1분 동화, 별빛 동화 열여섯 번째 이야기

과학이론 '양자역학'과 '슈뢰딩거의 고양이' 중첩의 의미를 동화로 풀었습니다.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초등학생 5학년이 되니 주변에서 벌써 난리다.


“과학고 가기 위해서는 선행이 필수래!”

“나는 예고 갈 거 기 때문에 예중으로 진학할 거야.”

“우리 엄마는 무조건 국제고라고 어학원 다니래.”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은 자기 미래 이야기를 했다.


“나는... 아직 모르겠는데.”

5학년이 되자 갑자기 모두가 줄을 서기 시작한 느낌이다.

누군가는 앞에, 누군가는 더 앞에

그 안에서 소란이만 혼자 멈춰 선 것 같다.


“소란아, 또 배 아파?”

엄마의 말에 소란이는 이불을 끌어올리며 눈을 감았다.

잠든 줄도 모른 채 눈을 감았는데

어느 순간, 깊은 산속에 놓인 작은 문 하나가 나타났다.


“마법 나라...?”

문 앞에는 반은 검고 반은 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눈빛은 초록과 노랑이 반씩 섞여 있었다.


“너, 고민 많지?”

“고양이가 말을 해?”

“나는 슈야. 결정되지 않은 고양이.

지금부터 너에게 중요한 실험이 주어질 거야.”


슈는 말을 마치자마자 훌쩍 앞장서 걸어갔다.

슈가 안내한 교실은 이상했다.

시계는 거꾸로 돌고 있었고, 칠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들』


“어서 와, 소란아.”

수염이 긴 선생님이 부드럽게 말했다.


“누구세요...?”


“사람들은 나를 ‘양자 선생님’이라 부르지.

정해지지 않은 것들, 가능성들, 그리고 무너지지 않는 질문들 속에 사는 존재란다.”

그리고 양자 선생님은 소란이에게 커다란 상자를 가리켰다.


“이건 슈의 상자였지만, 오늘은 너가 들어가야 해.”

“제가요?”

“상자에 들어가면, 너가 어떤 상태인지 아무도 모르게 되지.

울고 있는지, 웃고 있는지, 포기했는지, 꿈꾸고 있는지.”


슈가 귀를 살짝 접으며 속삭였다.

“관찰자가 뚜껑을 열기 전까지,

너는 모든 가능성의 네가 될 수 있어.”


상자 안은 어두웠고 조용했다.

처음엔 조금 무서웠지만, 이내 익숙해졌다.

그런데 점점 속삭임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드래곤 키우는 소란이야. 물론 상상으로.”

“나는 발표는 무서운데, 연극 무대는 좋은 소란이야.”

“나는 질문만 열 개쯤 있는 소란이야.”

“나는 아직, 나도 잘 모르겠는 소란이야…”


소란이는 작게 웃었다.

이렇게 많은 ‘나’가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런데... 왜 나만 아직도 못 정했지?”

그때, 어디선가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바로 너란다, 소란아.”

망치를 든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이름은 ‘하이즈’.

자 대신 망치로 시간을 재는 이상한 목수였다.


“정해지지 않았다는 건

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지.

확실한 답만 찾으려다 보면

오히려 너가 사라지게 돼.”


“그럼… 혼란스러운 건 괜찮은 거예요?”

“그럼! 사람이 다들 너무 빨리 결정하려 하거든.

근데 진짜 좋은 선택은

마음이 ‘감당하겠다’고 말해줄 때 하는 거지.”


“딸깍.”

뚜껑이 열리는 소리가 났고 눈부신 빛이 들어왔다.


“짜잔! 나는 오늘 깨어 있는 고양이야!”

슈가 상자 밖에서 고개를 까딱이며 소란이를 맞이했다.


“선택은 정답을 고르는 게 아니란다.

감당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그게 너의 우주가 되는 거야.”


양자 선생님도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게 바로 너란다, 소란아.

아직 정해지지 않아서, 가장 살아있는 너.

확실하다고 믿는 사람들보다,

아직 질문하는 네가 더 가까이 있는 거야.

답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소란이는 아침 햇살을 맞으며 학교에 간다.

친구들이 또 말했다.


“과학고 갈 사람?”

“나 예술중 갈 거야!”


소란이는 가볍게 웃었다.

“나는… 아직 상자 속에 있어. 근데 꽤 넓고 푹신해.”


친구들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소란이는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건,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모든 것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소란이의 하루가

아직 오지 않은 시간들 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반짝이며 시작되었다.



《상자 속의 나》는

과학이론 중 하나인 양자역학의 개념을 바탕으로,

‘정해지지 않은 나’의 상태를 두려움이 아닌 아름다움으로 바라보게 하는 동화입니다.


5학년 소란이는 친구들이 진로를 말할 때마다 혼란과 불안을 느낍니다.

하지만 마법처럼 펼쳐진 상자 속 세계에서

중첩된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자신을 만나고,

정답을 고르는 대신 ‘감당하겠다’는 마음이 자신만의 우주를 여는 선택임을 깨닫게 됩니다.


양자역학처럼 인생도 하나의 해답만 있는 공식이 아닙니다.

때로는 정해지지 않았기에,

우리는 더 많은 빛을 품을 수 있습니다.


“정답이 없다는 건, 가능성이 있다는 뜻 아닐까요?.”


과학이 마치 인생처럼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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