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평안한 밤, TV를 보며 갑자기 들어온 아이의 고백은 내 가슴을 세차게 때렸다. 중학생이 된 아이가 점점 말이 없어지면서 문을 걸어 잠글 때, 늘 청소년 시기에 하는 행동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지금 아이가 진심으로 나에게 부탁하고 있다. 동생을 잘 돌봐야 한다고 무심코 내뱉은 말이 아이에게 짐이 되었나 보다.
15년이 넘도록 직장맘을 하면서 나는 아이돌보미 서비스 신청을 하거나 대학생 아르바이트 육아 돌보미 등을 이용해 매일 어른이 와서 두 아이를 돌보게 했다. 서비스는 매우 좋았지만 평생 함께 하는 분이 아니기에 큰 딸에게 늘 작은 딸을 잘 돌보야 한다고 다그쳤다.
나이도 7살 차이가 나다 보니 아무래도 큰 아이를 내가 의지했던 거 같다. 돌이켜 보면, 7살 터울이 생긴 이유는 나의 몸 상태가 주된 원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32살에 첫 아이를 임신한 나는 '나를 닮은 아이를 가졌다'는 기쁨도 잠시 몸에 이상 신호가 찾아왔다. 임신 개월 수가 늘어날수록 눈은 침침하면서 흐려지고 몸은 움직이기가 힘들어졌다. 그래도 힘들게 들어간 직장을 그만둘 수 없어 매일 러시아워 지하철을 타고 시청역까지 1시간을 서서 출퇴근했다. 임신 후반에는 임신성 고혈압, 임신성 당뇨 등 임신중독증이 찾아왔고, 기형아 검사를 하는 등 한 번도 순탄하게 넘어간 적이 없었다. 진통도 15시간 동안 진행되고 나서야 첫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출산의 기쁨도 잠시 뿐, 나는 앉기만 하면 정신을 잃었다.
"혈압도 피검사도 정상인데 이상하네요. 대학병원으로 옮기셔야 되겠어요"
여성병원 간호사는 의사 선생님과 통화를 하더니 나를 큰 병원으로 옮겨야 된다고 응급차를 불러줬다.
아이를 낳으니 기립성 저혈압이 찾아온 것이다. 아무것도 먹은 게 없는데 위세척을 해야 했고, 한동안 가까운 곳을 갈 때에도 여동생이 나와 동행해야 했다. "괜찮다"라고 해도 갑작스럽게 쓰러질까 봐 가족들은 걱정하면서 쫓아왔다.
그 이후로 남편은 아이 갖기를 두려워했다. 둘째를 낳고 내가 죽을 까 봐 걱정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큰 아이가 커 갈수록 허전함은 커졌고, 동생이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그래서 39살에 둘째를 갖게 되었다.하지만 39살 임산부는 고위험군이다. 병원에서도 관리 대상이고 기형아 검사 등 온갖 진료 및 검사를 독차지했다. 그래도 다행히 둘째는 큰 아이처럼 임신중독증이 나타나지 않았다. 제 때에 맞게 3시간 진통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 참으로 감사하다.
두 아이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남에도 외모가 똑같다. 큰 아이의 어릴 적 사진을 보면 둘째의 지금 얼굴이 나타난다. 남편은 사진을 보고 늘 헷갈린다고 우스개 소리를 한다. 우리는 작은 아이를 통해 어렸을 적 큰 아이의 모습을 반추하고, 큰아이를 통해 작은 아이의 미래 모습을 그려본다.
사실 나의 부모님도 맞벌이로 평일에는 자녀들과 깊은 대화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토요일 저녁은 엄마가 손수 음식을 차려 커다란 상 두 개가 가득 찰 정도로 음식을 채우셨다. 그 주변으로 할머니를 포함해 8명이 둘러앉아 맛있게 밥을 먹을 때면, 아빠는 힘들어도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 아이 낳기를 잘했다"라고 흐뭇해하셨다.
중등교사인 아빠는 아이 다섯을 대학교까지 뒷바라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포기하면서 사셔야 했다. 수학 선생님이시지만 음악을 좋아하셨고 어렸을 적 카세트테이프로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시곤 했다. 음악은 본인 대신 자녀 다섯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셨다. 고작 양복과 외출복 몇 벌로 교편을 잡으신 아빠를 보며 우리는 사치보다는 근검절약을 배웠다. 그래서 그런지 언니와 나는 대학 졸업 후 직장 다니면서 1년에 꼭 한 번은 아빠에게 옷을 사드렸다.
엄마는 또 어떠셨나. 일을 하시면서도 새벽에 못해도 자녀 도시락 6개를 한꺼번에 싸셔야 했다. 중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했기에 그 수고는 늘 엄마의 몫이었다. 이처럼 오로지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 한편이 아려온다.
아직 아이와 나의 마음이 멀기만 하다. 하지만 조금씩 노력하면 우리 아이들도 내가 부모님의 마음을 느꼈듯이 엄마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리라 믿는다. 오히려 7살 차이가 큰 아이를 키우면서 부족한 부분을 둘째에게 채워주고, 둘째에게 가지 못한 이해를 큰 아이를 통해 준비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