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 리터러시 : 스물한 번째 이야기
서울의 중심 동대문디자인플라에서 올해로 12회를 맞는 서울 대표 디자인축제, 서울디자인위크가 화려하게 개막되었다.
정신없이 기자들을 맞이하고, 현장을 안내하고, 취재 지원을 하며 하루가 빠르게 흘러갔다.
늦은 저녁시간, 의자에 앉자마자 뇌리에 미숙했던 부분들이 떠올랐다.
더 좋은 정보를 드리고, 더 깊이 있는 기사를 쓰게 도와드리고 싶었지만 시간의 한계 속에서 반의반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이 밀려왔다.
그때 문득, ‘앉는다’는 행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서 있는 인간이 세상을 이끄는 존재라면,
앉는 인간은 세상에 자신을 내려놓는 존재일 것이다.
의자에 앉는 순간, 몸전체는 긴장이 풀리고, 마음은 진정된다.
잠시 멈춘 그 짧은 동작이 우리에게 ‘생각’의 틈을 준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휴식의 시간(scholē)’이 철학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school(학교)’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바로 이 멈춤의 시간에서 비롯되었다.
멈춤이 없는 삶에서는 깊은 생각이 자라나지 않는다.
앉는다는 것은 움직임을 멈추되, 생각을 멈추지 않는 상태
세상과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사유의 자세다.
의자는 그 자세를 가장 물질적으로 뒷받침해주는 물건이다.
우리는 의자 위에서 일하고, 대화하고, 글을 쓰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야말로
인간이 가장 깊이 자신을 만나는 순간이다.
의자는 가구를 넘어, 인간의 내면을 닮은 사유의 도구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바위 위에 앉아 고뇌했다면,
오늘날 사람들은 각자의 의자 위에서 사유한다.
이번 서울디자인위크의 특별전, 〈시팅서울(Seating Seoul)〉에 모인 100명의 디자이너는 자신만의 생각과 디자인을 의자 위에 앉혔다.
송봉규의 ‘아이언 캐스트 스툴’에는 뜨거운 쇳물이 식으며 남긴 시간의 흔적이,
잭슨홍의 ‘슬래시(/)’에는 긴장과 균형의 감각이,
전산의 ‘컬러 스툴 시리즈 3’에는 조립의 질서와 자유가,
하지훈의 ‘나주의자’에는 한국적 미학의 온기가,
문승지의 ‘타리 라운지체어’에는 견고한 구조 속의 포근함이 앉아 있다.
그들이 만든 의자 위에는 몸의 흔적만이 아니라, 영감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의자는 그 자체로 인간의 삶을 반영한 것이다.
의자에 앉는다는 것은 이처럼 일의 시작점이기도 하고, 휴식의 공간, 때로는 다시 일어서기 위한 조용한 준비의 자리이기도 하다. 비로소 생각을 창조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