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 리터러시: 스물두 번째 이야기
오늘날 인공지능(AI) 경쟁 구도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톱니로 돌아간다.
두 나라는 세계 AI 리더십을 놓고 벌이는 속도와 규모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한국이 도전장을 냈다. A2에서 A3로 나가기 위해 늦었지만 달리기 시작했다.
미국의 AI는 ‘더 빠르고 더 똑똑하게’라는 명제를 향해 인간의 창작 영역까지 손을 뻗으며 나아가고 있다.
중국의 AI는 ‘더 확장되고 더 통제된’ 사회를 향해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그러면 이 경쟁사회에서 한국 사회는 어떤 차별화를 두고 A3로 진입해야 할까.
모두들 기술을 말하고 미국과 중국처럼 되려고 한다.
콘퍼런스장에서도 ‘혁신’과 ‘데이터’, ‘속도’의 단어가 쏟아졌다. 난 개발자도 아니지만 A3로 나가려는 차별성이 보이지 않아 콘퍼런스장에서 한참을 바라보다 묻지 않을 수 없었다.
“AI는 얼마나 똑똑해야 하는가?”
“보다 근본적으로, AI는 얼마나 ‘인간적’이어야 하는가?”
“AI는 얼마나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
여기에 제일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빠진 거 같다.
한국은 AI 강대국의 뒤를 쫓는 나라가 아니라 그림자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으면 한다
속도 대신 방향, 지배 대신 공존, 통제 대신 성찰을 선택했으면 한다.
전쟁터에서 AI는 이미 사람을 대신해 표적을 선택한다.
도시에서는 AI 감시 카메라가 시민을 대신해 판단한다.
학자들은 AI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무엇이 빠져서 이런 부작용이 나타나는 걸까.
그것은 윤리가 빠졌기 때문이다.
인류는 도구를 만들 줄 알지만, 그 도구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점점 더 무뎌지고 있다.
한국은 산업화의 속도와 민주화의 고통, 그리고 분단이라는 시대적 상처 속에서도 늘 ‘공존’과 ‘화해’ 그리고 ‘평화’를 말해온 나라다.
그 뿌리에는 5천 년 이상의 역사와 불교, 유교, 천주교, 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성과 정신적 유산이 함께 흐르고 있다.
서로 다른 가치가 부딪히는 세계 속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문화적 나침판이 될 수 있는 나라가 한국이라 생각된다.
미국의 AI가 기술의 날개를 달고,
중국의 AI가 체제의 울타리를 높일 때,
한국은 양심의 중심축을 세우는 일을 해야 한다.
한국은 AI와 윤리, 그리고 종교적 성찰을 잇는 ‘새로운 인간 중심 디자인’을 제시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이것이 바로 A3 한국이 진입할 수 있는 차별화라 생각된다.
모두가 AI시대 윤리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풀지 못하는 이 난제를 한국이 앞장서 다양한 잠재력으로 푼다면 그것이 차별화된 미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