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일상적인 선택 중 가장 어려운 선택
항상 무던한 사람이 부러웠다. 길 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더라도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툭툭 털고 일어나 제 갈 길 가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부모님이 어떤 DNA를 주셨길래, 나는, 그렇지 못했다.
방금 산 물건을 다른데서 천원이라도 더 싸게 파는 걸 발견하면 1시간은 계속 신경이 쓰인다.
혼자 밥 먹으러 갔다가 1명은 식사가 안 된다고 문전박대를 당하면 그 날은 하루종일 기분이 나쁘다.
누군가 아무 생각 없이 툭 던진 말에 2주 정도 맘 아파하는 건 예삿일이고, 헤어진 연애의 상처는 3년은 족히 갔다.
유리잔도 순두부도 아닌 비지 수준의 멘탈을 부여잡고 깨지지는 않을까, 상처받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살아온 결과, 실패 회피 성향이 되어 버렸다.
실패를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으면, 아무 결과도 없다. 따라서 책임 질 일을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어진다.
안정적인 직장을 가졌고, 가정도 있으며, 별다른 우환도 없다 보니 대부분의 날들은 선택하지 않아도 그저 흘러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1번은 꼭 선택을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바로 '머리 자르기' 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머리 자르기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선택이다.
머리 자르기는 불가역적이다.
한 번 잘라낸 머리카락은 도저히 다시 복구할 수가 없다.
만약 실패한다면 이 선택의 여파는 최소 달포는 족히 가며, 이를 매일 보는 직장 동료든, 길거리에서 옷깃만 스치는 행인이든 누구나 알아볼 수 있게 된다.
머리 자르기는 상호작용을 수반한다.
값을 지불했으니 일방적으로 서비스만 받고 싶은데, 상대는 산 사람이고 그 사람과 일정 시간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하니 여지없이 대화가 오간다. 입을 꽉 다물어도 최소한 10분에 한 번 눈빛 교환은 해야 한다.
즉, 선택하지 않은 아주 느슨한 인간관계가 만들어진다.
머리 자르기는 정보의 비대칭성을 함유한다.
어떤 미용사가 실력이 있는지, 누가 내 머리를 잘 만지는지 미리 알아볼 방법이 도저히 없다.
미용사도 내가 커트만 하는 돈 안되는 고객인지, 몇 번 구워삶으면 염색이라도 할 놈인지 알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보니 이래저래 서로 불만이 생길 여지가 있다.
즉, 머리 자르기는.. 실패를 예방할 수 있는 수단은 조금도 없으며, 이 선택은 일정 기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고, 강제적인 인간-대-인간 인터랙션을 수반하는 일.
삶에 이렇게나 어려운 선택이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