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감상문
빈백에 비스듬히 누워서 유튜브로 먹방을 보다 아홉시에 맞춰서 경제 뉴스를 본다. 입이 좀 심심한데 싶지만 조금 참아보기로. 삼십대 중반의 싱글 여자. 그런 하루들이 모여 벌써 9월이다. 2025라는 숫자는 아직도 어색한데.
어릴 때 어른들은 시간이 빨리 간다 했다. 어른이 된다고 하루가 23시간으로 줄어들진 않을텐데라 생각했던 나 그리고 그 말을 듣고자란 나는 실제로 시간이 빨리 가는 삶을 살고 있다.
초등학생 때 학교를 마치고는 돌아오는 길이면 꼭 문방구에서 뭔가를 구경하다갔다. 그 문방구는 부부가 운영했는데 아저씨가 곱추인게 아직도 기억난다. 오락을 하는 친구들을 구경하기도하고 문방구의 신상 앞에서 주머니 속 엄마한테 받은 용돈을 꼼지락거리기도 하고. 주로는 불량식품을 사먹었다. 맥주맛 사탕이나 페인트 캔디 같은거. 가끔은 분식점에서 피카츄 돈까스를 사서 먹었다. 피카츄 돈까스는 꽤 비싸서 자주 못 사먹었는데 그렇다고 엄청 맛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친구들이 나무 젓가락에 피카츄 돈까스를 꽂고 다니는 게 부러웠던 거 같다. 그렇게 돌아오는 길은 주택가 사이의 길이었다. 나는 거의 혼자서 그 길로 귀가했다. 해는 길었고 등에 매달고 있는 백팩 때문에 땀이 맺혔다. 길가 아스팔트 틈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있었다. 그 시간들은 길었고 내 안에서 영원하다.
지금은 어제 일도 희미한데
키링을 가방에 주렁주렁 매단 아이들이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하교하고 그런 아이들을 약국에서 지켜보는 나. 그렇게 기억 속 내 시간을 살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자주 그 시간으로 되돌아간다. 피카츄 돈까스를 먹으며 집에 돌아가는 길. 행복한 시간의 슬로우 모드. 한 낮에 그 공기와 노곤함을 느끼며 산책한적이 언제였던가. 그 땐 등하굣길이 출퇴근하는 내 일상처럼 당연했다. 운이 좋았던 건 파도가 지난 뒤에 모래알들에 물결 흔적을 남기듯 그런 흔적들이 용케 남아있다는 거다. 작았던 나의 작은 행복.
몸집이 커진 나는 사이즈에 맞는 행복을 찾는 게 당연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 살고 있다. 탓하고 싶지만 내가 거기에 ‘아니오’라 말 못하는 건 은밀하게 ‘네’라 말하고 있는 탓이겠지.
그러나 실은 아직도 내 마음 속엔 그 하교하던 꼬맹이가 있다.
출퇴근길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올 해엔 무화과를 더 많이 먹어야지
오늘의 노을은 어제와 뭐가 다르지
하는 생각을
인맥을 더 넓히고 싶다
잠실에 입성하려면 얼마나 벌어야하나
나는 결혼 시장에서 몇 등급이나 될까
보다 더 많이하는 그런 유치한 생각들. 주위를 보면 누구는 얼마를 모았다. 누구는 월 매출이 얼마다. 걔는 등기를 쳤다더라라는 말을 들으면 앞선 유치한 생각이 쏙 숨어버린다. 나도 정신 좀 차려야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래.
돈, 돈, 돈 아 그 돈
가끔은 전에 썼던 글을 읽어본다. 그 때도 여전히 돈에 대해 걱정했고 미래는 불안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일상의 작은 것들을 좋아했다. 출근길 풍경을 모으고(글 <불안했고 할라피뇨가 매웠다 혹은 그 반대거나>) 아니면 대놓고 선언했다. (글 <좋아하는 걸 계속 좋아하자>)
결론이 내려진 건 없다. 다만, 피카츄 돈까스를 마켓 컬리에서 사려면, 무화과를 많이 먹으려면 어쨌거나 대금은 치뤄야한다. 이 외에도 여행을 가고 친구들이랑 맛있는 음식을 먹고 그러려면. 다만 어릴 때와 달라서 누가 용돈을 쥐어주지 않으니 직접 벌어서 해야한다.
어제 봤던 그 아이들도 내 나이가 되면 하굣길 그 시간들이 느리게 머릿속으로 흘러갈까. 부디 그들도 그런 느린 시간들을 가슴에 품길.
여기 30대인 나는 정속으로 아니 실은 살짝 빠르게 시간이 흐른다. 나는 어제보다 조금 늙고 오늘도 노을이 진다.
귀뚜라미 운다 가을이다.
불량식품 사진 : https://m.blog.naver.com/rhak2405/221457370807
피카츄 돈까스 사진 : https://m.blog.naver.com/rhak2405/22145737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