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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머스캣 May 19. 2023

그때의 나는 죽은 삶을 살았다.

최근의 일상과 단상


 

삶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지금 내 삶은 '죽어간다'고도 '살아간다'고도할 수 있다. 양립할 수 없는 두 개념이지만 생물학적으로 둘 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이 모순을 인식하는데서 출발해 나는 '죽어가는 삶'을 살지, '살아가는 삶'을 살지 선택할 수 있는 주체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은 감히 말하건대 '살아가는 삶'을 살고 있다. 누구나 겪을 법한 평범한 흥망성쇠, 희로애락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낀다. 사실 지금도 그리 풍족하고 부유하고, 순탄한 삶은 아니지만 자신 있게 죽어가는 삶이 아닌 살아가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한 때 '죽은 삶'을 살았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지금의 삶이 더 낫다는 것을 과거에서부터 얻어온 것이기도 하다.


스텔라장의 <Reality blue>라는 노래를 미친듯이, 한 곡 반복으로 많으면 하루에 100번씩 들은 적이 있었다. 거의 한 달 내내 이 노래만 들었으니 달에 1000번은 족히 들었겠다. 이 노래에 광적으로 집착한 때는 내가 처음 정신과에 방문했을 시기다. 나의 첫 정신과 선택은 신중할 수가 없었다. 켜켜이 쌓아온 고름이 터진 어느 날 나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고 딱 하나의 정신과, 개원 시간이 가장 빠른 정신과를 찾아갔다. 개원 시간에 딱 맞추어 갔더니 세상에, 동네 의원같은 좁고 낙후된 병원에 사람들이 앉을자리가 없어서 복도에 줄을 섰다. 2시간 남짓을 기다려 진료를 받았고, 흔하디 흔한 정신과 상담 레퍼토리처럼 나는 내 이야기를 하면서 차오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런 울음조차 진부하다고 여길 시기라 참아보려 했으나 의지 밖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지만 당시 내가 겪는 것이 꽤 과장되었고, 별 거 아니지만 스스로가 나약해서 그런거라는 채찍질로 견디고 있던 때였다. 그렇게 의사선생님의 권유로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고,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고 판단하셨는지 내게 풀배터리 검사라고 불리는 종합심리검사를 권하셨다. 30만원 정도 하는 가격 때문에 권하실 때 많이 조심스러우셨지만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기에 30만원은 대수롭지 않았다. 바로 검사를 받고 지속적으로 병원에 다녔다. 병원 개원 시간에 맞춰가면 1시간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했기에 우습지만 나는 차라리 개원 시간보다 1시간 더 일찍 가서 기다리다가 문을 열자마자 진료를 받는 방법을 택했다. 조삼모사지만 터질 듯한 대기 인원 속에서 한 시간을 견디기보다는 차라리 5명 정도 남짓의 오픈런 멤버들과 서서 조용히 스텔라장의 <Reality blue>를 한 시간 내내 반복재생하며 기다리는 것이 나았다. 상황이 많이 좋지 않던 때라 매주 주말마다 오픈런을 반복해야 했다.


그 이후 병원도 옮기고 지금까지 꾸준히 내원하면서 제법 사람다운 삶을 살고 있다. 그런 요즘에 불현듯 스텔라장의 <Reality blue>가 재생될 때면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 그 노래의 간주만 들어도 나는 순식간에 첫 정신과 개원 1시간 전에 줄을 서 기다리던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는 게 어떤 의미냐 묻는다면 굉장한 불쾌감과 기시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 때가 있었구나 싶으면서도 그때의 감정이 너무도 선연하다. 그때의 나는 죽은 삶을 살았다. 그때의 나는 죽은 삶을 살았다. 그때의 나는 죽은 삶을 살았다. 그때의 나는 죽은 삶을 살았다. 그때의 나는 죽은 삶을 살았다. 그때의 나는 죽은 삶을 살았다. 그때의 나는 죽은 삶을 살았다. 그때의 나는 죽은 삶을 살았다. 그때의 나는 죽은 삶을 살았다. 그 이전에 나는 곧 죽을 삶을 살았다. 살아남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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