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비건으로 지낸 첫 일주일

회사밥부터가 난관

by 샤인머스캣

현재시점으로 약 2년째 비건(Vegan)으로 지내고 있으며, 비건이 된 과거의 기억들을 일기장에서 꺼내옵니다. 사실 이전 글에서 '하루아침'에 비건이 되었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감정의 변화였지 현실에서는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1. 사내 점심식단에서 등갈비김치찜이 메인으로 제공됐다. 아예 받지 말았어야 했던 것을, 비건이 되고 첫 날이라 어영부영 받게되었다. 신기하게도 그 고기가 내게 오기까지 일어나는 도축, 살육, 희생을 상상하면 전혀 맛있어 보이지 않았다. 덧붙여 내가 먹는 음식이 나를 이룰텐데, 어디서 생산되어 어떤 과정을 거쳐 내 입에 오게되었는지 정체가 불명한 음식을 딱히 먹고 싶진 않았다. 이런 마음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일단 현재 느낀바는 그렇다. 다만, 등갈비를 받아서 입에도 대지 않고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게 되는게 또 하나의 죄책감으로 남는다. 음식물 쓰레기든 무엇이든 낭비를 최소화하고 싶은데, 딜레마이다.



2. 채소를 냅다 먹어서인지 화장실에 잘 간다. 아주 조금은 낯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름 중요한 변화라 기록을 해야겠다. 보통 퇴근 후 운동을 하고 집에 오면 8시 반쯤 되어 저녁을 먹으면 9시였다. 11시쯤 잠든다고 해도 이전에 먹던 닭가슴살과 야채는 소화가 꽤 느려서 아침에 속이 다소 더부룩하다. 더부룩한 채로 뜨끈한 물 한 컵과 아침을 먹고 한 시간쯤 지나서야 화장실을 가는 루틴을 매일같이 반복했다. 한 시간 이후쯤 화장실을 간다는 것이 출근을 해야하는 입장에선 굉장히 애매하고, 유쾌하지 않은 상황을 종종 만든다. 그런데, 채식 식단을 이후로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화장실에 간다. 물을 먹지 않아도, 말그대로 몸을 일으키자마자간다. 그것도 하루에 한 번만 가던 화장실을 어제는 두 번이나 갔다. 나는 화장실에 장이 좋지 않은 편이라 큰 볼일을 보지 못하면 더부룩한 속때문에 해야할 일에 집중을 못한다. 그래서 볼 일을 주기적으로 보는 것에 대한 약간의 강박이 있다. 하여튼 채식은 먹고나서 속이 더부룩하지 않고, 정말 적합한 에너지원으로부터 영양을 공급받는 느낌이다. 몸은 가벼워지지만 정신은 더 맑아지고 힘이 난다. 신비하다.



3. 아참 그리고 신기한건 식욕이 줄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다소 개인적으로 느끼는 변화이다. 고기, 유제품, 난류, 해산물 등으로 이루어진 식사를 할 때면, 뭔가 눈 앞의 음식이 사라져가는게 아쉬웠고, 다 먹고나서도 입이 심심했었다. 그런데, 채식 식단을 하고 나서는 오히려 적당한 배부름이 느껴지면 수저를 더 들지 않게 된다. 나는 정말 김이랑 밥만으로도 하루 세 끼 먹을 수 있고, 과일을 오랑우탄밥처럼 쌓아서 주식으로 먹을 수 있을 만큼 밥과 과일을 좋아한다. 그래서 밥과 과일을 많이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무한한 감사와 동시에 식욕 조절에 대한 걱정을 했으나, 오히려 아주 정상적으로 식욕이 조절된다.


4. 사람들이 맛있는 것을 먹어서 힐링하자고 표현한다면 보통 요즘 유행하는 떢볶이를 시켜먹거나, 고칼로리, 고나트륨, 지나치게 단 음식이라는 '금기시 된 음식'을 말하는 것이다. 야식으로 스트레스 풀기라는 주제로 SNS에 올라오는 사진들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채식식단으로 정성껏 요리해먹는 밥은 진짜 힐링이다. 단어가 갖고 있는 순수한 의미로 정신과 신체에 맑은 기운을 전해준다.


5. 이런, 오늘도 역시 회사밥에 온통 고기뿐이었다. 반찬은 온통 육식 식단이나 그나마 순두부찌개가 나온다기에 위안을 삼고 점심시간을 맞이했는데, 순두부찌개에 명란과 소고기가 가득들어가 있었다. 예전같으면 대박이라고 외치며 박수치며 먹었을 조합이다. 결국 찌개는 한 술도 뜨지 않았다. 밥만 하염없이 푸고 있자니 반찬칸에 담긴 양념치킨이 계속 눈에 밟혔다. 애시당초 주지 않으셔도 된다고 조리원분께 말씀드렸으나 항상 푸근한 미소로 내 거절을 거절하시곤 더 가득 주시는 분이었다. 아침부터 한 끼도 못 먹고, 오전에는 정신적, 육체적 노동에 치여 너무도 심각한 허기가 느껴졌다. 정말 수없이 고민하다가 결국 반찬칸의 양념 치킨을 한 입 베어물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사실 닭고기가 먹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달달하고 매콤한 치킨'양념'이 너무 먹고 싶었었던 것이다. 닭고기가 아니라 두부, 버섯이였으면 더 맛있게 먹었을텐데, 아쉽다. 매콤달콤한 양념은 내가 갈망하던 그 맛이 맞았으나, 고기에서 나는 닭 냄새와 질감이 심히 유쾌하지 않아 그만두었다.

요상한 완벽주의와 계획주의를 가진 나는 양념치킨을 한 입 베어문 이 날 무너지고 말았다. 채식을 실패하면 죽는 것도 아니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괜히 내 가치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실패했다는 생각에 바보같이 무너졌다.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6. 화요일을 기점으로 방황을 했으나, 궤도를 되찾았다. 외식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페스코로 타협을 하게 된다. 사람들에게 비건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연, 회식 장소로 거론되는 곳의 메인 메뉴는 99% 육류다. 그래서 나름 비건으로 살아남는 비법을 터득했다. 비법은 다음에 싹 정리하기로 하자. 어쨌든 이렇게 혼자 밥을 해먹어야 비건식이 가능하다보니, 사람들을 만날 때를 제외하곤 외식이나 배달을 일체 하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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