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비건이 되니 편하고 불편했다.

by 샤인머스캣

현재 시점으로 약 2년째 비건(Vegan)으로 지내고 있으며, 지나온 이야기를 일기장에서 꺼내옵니다.


1. 선택지가 줄어 편하다.

-나는 현시대의 범람하는 정보와 선택지들에 염증을 느끼던 사람이다. 도서관에 가도 광활히 우거진 책장들을 보면 가슴이 뛰다가도, 마음 한 켠에선 이 수많은 책들을 다 보지도 못하고 죽겠구나 하는 허무하고 부질없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마트에선 그 염증이 극에 달한다. 옷을 사거나 물건을 살 때도 마찬가지. 선택지가 너무 많을 땐, 내 선택으로 발생할 무수한 기회비용을 의식하는 피로한 성격이다. 벗어나려고 노력은 하지만 쉽지가 않다.


나는 인스타에서 #요리스타그램 과 #맛집스타그램 으로 한 때 꽤 많은 팔로워를 가졌었다. 비건을 시작하게 전에도 수많은 요리들은 이미 섭렵해서 외식보다 내가 한 음식을 좋아했다. 러나 매일 새로운 레시피를 발견하고, 새로운 맛집을 발견해서 모두 북마크해놓고 쌓아두는 것이 내겐 썩 유쾌하지 않았다. 언제 이걸 다 해보나 싶은 조급함도 들고, 식재료와 음식들, 요리법들은 끝이 없었다. 거기서 나는 많은 피로감을 느꼈던 것 같다.


채식을 지향하는 생활을 시작하고는 한결 가벼워졌다. 장을 볼 때도 선택지가 좁혀졌다. 채소코너와 과일코너, 두부나 콩류, 곡류 등의 코너만 슥 보면 된다. 무수한 요리 레시피들도 재료가 한정되니 가짓수가 줄어들었다. 더 이상 들여다보지 않게 된 선택지가 어마어마하다. 육류부터 온갖 가공식품, 해산물, 유제품, 난류 등등은 내가 직접 요리할 땐 장바구니에 담을 일이 없다. 그로 인해 요리법을 복잡하게 구상할 필요도 없어졌고, 최소한의 가공과 조리를 거쳐 먹는 요리법들만을 찾는다. 아주 편안하다. 더불어 자연스럽게 요리나 맛집에 대한 관심사보다 더 생산적이고, 즐거운 일들을 찾아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물건을 살 때도, 환경을 고려하다보니 자연스레 미니멀리즘과 제로웨이스트를 추구하여 애초에 소비 자체를 잘 않는다. 이미 필요한 것은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2. 세상을 보는 눈이 생겨 불편하다.

- 아직도 편협하지만, 채식으로 각종 다큐와 서적, 글들을 보면서 축산업이 환경과 생명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더 알게 되었다. 제로 웨이스트보다, 전기자동차 개발보다 육류 소비를 줄이는 것이 환경오염 가속화를 줄일 수 있는 지금 당장 실효성 있는 방법이란 생각이 든다. 축산업은 온실가스 배출 원인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미친다. 축산업으로부터 대기부터 바다, 육지까지 확대 오염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그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에 지배되어 그것을 묵인하는 기업들과 단체들, 미디어들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제라도 자본주의와 경제발전, 미디어에 가려진 진실을 마주한 것이 다행이지만, 알면 알수록 세상에 대한 곳곳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빈도도 잦아졌다.


3. 사회생활이 불편하다.

- 회식이 있을 때, 채식을 지향하는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메뉴는 우리나라에선 극히 한정적이다. 사실 회식뿐만이 아니라, 오랜만에 만나 밥 한 끼 하는 자리에서 주로 선택되는 메인 메뉴들은 육류가 대부분이다. 맛있는 고기를 굽고, 술 한 잔을 곁들여 교감하고 교류한다. 나는 고깃집에 간다 한들 정말 아무런 상관이 없다. 가서 공깃밥 한 그릇만 뚝딱해도 충분히 만족스러워한다.


다만, 나의 존재만으로 그 자리에 불편함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 가장 힘들다. 고깃집에 와서 고기만 열심히 굽고, 흰 공깃밥만 내리 먹고, 야채만 먹는 것이 남들에겐 당연히 신경 쓰이는 모습이다. 이번 주 금요일엔 회사에서 피자를 간식으로 줬다. 속이 아프다는 핑계로 먹지 않았다. 언제까지 이런 핑계가 통할 수 있을까. 정말 갖은 핑계를 대고 미루고 미루다 분위기와 장단을 맞추려 고기를 입에 대는 불상사는 없었으면 좋겠는데, 걱정이다. 사람들을 잘 만나지 않게 된다. 집에서 요리해먹으면 비건식으로 한 상 차려먹을 수 있다는 행복감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 가까운 사람들을 만나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 대부분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존중해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다수가 모여서 이루는 자리가 아니면 굳이 고깃집에 갈 일이 없긴 하다. 그저, 사회생활, 직장생활에서 종종 발생하는 상황이 난처할 뿐이다. 비건임을 밝히는 것이 아직은 그리 쉽지 않다. 특히 한국은 비건 인구 비율이 최하위에 속하는 터라 주변에서 비건을 실제로 본 적도, 지향하는 것을 본 적도 없다.


4. 번외 - 고독하지만 행복한 채식

- 요 며칠 비건으로 지내다가 문득 '채식주의자를 만나지 않는 이상 결혼은 힘들겠는데?'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 순간은 아마 내가 만든 비건 병아리콩 브라우니를 한 입 베어 문 동생이 오만상을 쓰는 것을 목격했을 때였다. 그렇게 괴랄한 음식을 만들어낸 것도 아니고, 난 분명 맛있었는데..


그래서 든 생각이 나는 내가 만든 채식 요리를 너무 맛있고 행복하게 먹는데, 그것이 맞지 않는 동반자는 고역이지 않을까 싶다. 각자 밥을 해 먹자고 타협할 순 있으나, 식생활을 공유하고 함께한다는 건 꽤나 삶의 큰 부분이라서 꽤 힘들 것 같다. 그래서 연애도 쉬이 못하겠다. 보통의 연애 시작의 전과, 연애 중에서 함께 맛집을 가는 것이 데이트의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나도 예전에는 맛집 다니는 것이 연애의 주된 재미 중 하나였는데, 이제는 채식으로 외식메뉴가 극히 한정되고 외식 자체를 좋아하지 않게 되니, 이렇게 홀로 늙어 가려나보다. 요즘은 누군가가 내게 호의와 호감으로 제안하는 밥 한 끼조차 응할 수가 없다. 메뉴를 선정하는 데부터 까다롭고, 나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이해를 바라는 과정이 번거롭다. 혼자서도 충만한 삶을 살고 있어서 아직까지 별 상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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