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시점으로 약 2년째 비건(Vegan)으로 지내고 있으며, 지나온 이야기를 일기장에서 꺼내옵니다.
해당 글은 2021년 5월 말의 일기에서 가져왔습니다. 현재 시점에서 보니 비건을 막 시작한 복잡한 마음이 느껴지네요.
'내가' 비건을 쉽게 커밍아웃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고찰해보았다.
가장 영향력이 큰 건 나의 타고난 성향이었다. 나는 상대가 나 때문에 불편해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타입이다. 낯선 사람과의 침묵이 불편해서 정적을 깨고 대화를 주도하는 편이고, 우울하고 쳐진 분위기는 가능한 띄워보려 노력한다. 나와 대화하는 사람이 편안했으면 좋겠고, 자신의 생각을 쉽게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나의 색을 잃어가면서 타인에게 필요 이상의 배려를 하는 성격이다. 내가 중심에 선 삶을 살기 위해 안 그래도 끊임없이 연습중이다.
여하튼, 이러한 성격 탓에 나의 비건 생활을 친구, 지인들이 알게 된다면, 앞으로 나와의 만남에서 밥을 먹으러 갈 때 잔뜩 신경 쓸 것이다. 그런 모습들을 상상하니 차라리 말 않는 게 낫다는 판단을 했다. 물론, 비건을 시작하고 나는 외식을 거의 하지 않는다. 먹는 것에 대한 큰 기대가 없다. 그래서 오히려, 타인들과의 외식에서도 스트레스 없이 비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어차피 외식 메뉴는 지극히 한정적이며, 고깃집에 가도 밥과 논비건 반찬 정도를 먹거나, 덮밥집에 가서 판모밀을 시켜먹으며 타협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해산물이나 육류를 베이스로 하는 국물류가 워낙 많아서, 덩어리 고기는 피한다는 '비덩주의'개념이 있다.) 함께 식사하는 사람들과의 만남 자체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위한 메뉴를 찾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주변에 또 좋은 친구들,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나를 위해 비건 메뉴가 있는 식당들을 열심히 찾을 것이 벌써부터 훤하다. 나는 그런 수고와 배려를 원치 않는다.
또, 비건의 삶이 아직은 검열당하기 쉬운 사회라는 것도 한몫을 한다. 그냥 한 사람의 식습관일 뿐인데 아직 너무 소수이고, 주류 문화와 이데올로기를 부정하는 사회운동으로 치부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비건 아웃팅 후에는 긍정적, 부정적 호기심을 한눈에 받는 분위기다. 특히 육식 문화가 많이 발달했고, 집단으로 식사를 하는데에 의미 부여를 많이 하는 한국 정서상 더 그렇다. ‘왜 채식을 하는지’, ‘그럼 우유도 안 먹는지’, ‘그럼 ~도 안 먹는지’, ‘먹고 싶진 않은지, 참는 건지’, ‘실제로 환경에 도움이 되긴 하는지’, ‘단백질이 부족하진 않은지’, ‘주로 뭘 먹는지’, ‘유별나다’, ‘신기하다’, ‘부모가 아이에게 채식하는 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식물도 고통을 느낀다는데 왜 먹는지’ 등등의 질문 공세를 받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나는 오목조목 답할 수 있지만, 굳이 답하고 싶지 않을 때가 많다. 자신도 실천하고 싶어서 더 알려달라는 아주 소수의 친구들을 제외하곤, 그저 호기심, 또는 검열 등의 의미가 섞여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내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닭, 소, 돼지를 즐겨먹듯 채식도 하나의 식습관일 뿐인데 왜 채식을 하냐고 묻는 질문이, 왜 육식을 하냐는 질문만큼 이상하다는 것을 생각해주었으면 한다.
수년간 비건을 실천하고 나면 커밍아웃에 대한 걱정은 좀 덜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비건을 시작한 이유를 건강학적, 윤리학적, 환경학적 측면으로 나누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그냥 '비건을 한 지 10년 됐어요.'라는 말로 일단락 짓고 싶다. 다른 말로 아직은 비건임을 공표할 자신이 없다. '유별나다.'는 평을 견딜 만큼 나의 기둥이 단단하게 자리잡지 못했고, '비건'의 삶을 지향한다고 하나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서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하다. 완벽할 필요가 없다고 많은 이들이 강조하지만, 겨우 두 달 차니 이 정도 고민은 의미 있다고 본다.
자연스럽게 비건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향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나 하나 이렇게 실천한다고 세상이 변할 것인가에 대한 무한한 회의감에 잠식되곤 했다. 극소수의 비건인들이 육식을 거부한다고 광기에 가까운 육식 소비 증가와 환경 파괴 속도에 아주 미미한 영향력이라도 미칠 수 있을까? 내가 좀 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나서서 비건을 장려해야 할까? 이렇게 소극적으로 비건 생활을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비건과 관련된 다큐와 서적을 찾아보며 찾을 수 있었다. 다음 글은 <아무튼, 비건>이라는 책을 소개하고, 비건으로서 살아갈 방향성의 가닥을 잡은 이야기를 쓰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