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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머스캣 Nov 16. 2022

[책과 삶] 그리스인 조르바, 도저히 끝까진 못 읽겠다



 유명한 고전으로 많이 거론되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어보려 했다. 이전에 읽은 <아무튼, 메모>의 저자가 인용하는 고전의 문구들이 너무도 강력해서, 고전 소설을 큰 맘먹고 펼쳤으나 3분의 1을 읽고 하차한다.


 문학에 조예가 깊지 않은 나에게 고전소설은 항상 장벽이 존재한다. 당시 작품이 쓰이던 시대상이 그대로 반영된다는 점이다. 그것이 고전소설의 맛과 멋이기도 하겠지만 나에게는 계속 완독을 하지 못하게끔 만드는 장애물이다. 한국의 고전소설도 외국의 고전소설에서 모두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혐오와 차별이 묻어나는 시선들, 특히 당시 여성의 존재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들은 책을 중간에 덮게 만든다. 모든 삶을 몸으로 마음으로 부딪히며 삶에 삶을 더해가는 조르바의 삶은 인상 깊었지만, 이 책에서 여자에 대한 성적 대상화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중요한 소재거리이기도 하다. 그의 자유로운 영혼을 표방하는 데에 아주 많이 사용된다.


 <그리스인 조르바>에 등장하는 모든 여성은 십중팔구 성적 대상화되어 유희 거리로 소비된다. 책의 3분의 1을 읽었으나 그 어떤 여성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이나 역할을 존중받지 못한다. 지금까지의 감상은 그저 화자로 등장하는 주인공과 그 주인공에게 한 줄기 빛같은 자유로운 영혼 조르바, 그 두 남자의 유별난 우정 이야기다. 그 당시 시대상이라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와 타협하기를 몇 번, 한 번만 더 견뎌보자를 반복하기를 수 어번 책을 읽으며 고뇌했다. 이것을 타협할 줄 알아야 고전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될 것만 같아서였다. 그러나, 고전에서 그들끼리 공유하는 성서나 신앙, 철학들이 불친절하게 이야기를 전개할 때 즈음 한 등장인물이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의 자궁을 '시궁창'이라고 표현했고, 그것에 '이렇게도 날 것의 표현을 할 수가 있냐'며 조금은 탄복하는 주인공의 마음이 묘사된 순간 책을 덮었다. 이미 그 전에도 수십 번의 기회를 주었다. 과부가 술집을 떠나자 술집의 모든 남자들이 과부를 두고 희롱하고, 잠재적 위협을 가한다. 그리고 우리의 조르바는 그 과부의 자태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온 몸을 붉히면서 안절부절못한다. 그 과부의 이야기가 흘러넘치는 술집에서 조르바는 잔뜩 상기되어 뛰쳐나간다. 책 속의 지나가는 여자는 모두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 엉덩이를 흔든다. 주인공은 극심한 내적 고뇌와 성찰을 하는 사람이지만, 그의 인생에서 여자는 부속품이며 탐험의 대상일 뿐이다.


 그깟 유명한 고전소설 못 읽으면 어떻나. 내 삶의 자존감이 함께 깎여나가는 기분인 소설을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대에 지금보다 훨씬 앞서서 여성 인권에 대해 쓴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라는 책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렇다. 소설은 우리 삶에 선연한 영향력을 미친다. 고전의 보석 같은 점들이 있겠지만, 현대 소설가들의 뛰어나고 따뜻한 점들이 더 내게는 와닿는다. 안녕, 조르바! 평생 그 세계에 갇혀 살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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