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잘못된 사랑이었음을
불안감이 높고 걱정이 많았던 엄마의 성격은 아이들에게 그대로 영향을 주었다. 뭐 하나 편하게 넘기는 일이 없었다.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 지켜보고 사소한 하나도 소홀함 없이 다 해주려 애쓰던 나였다.
깔끔쟁이 엄마는 아이의 청결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먹거리 하나도 가볍게 지나치는 일이 없었다. 과자하나도 신중하게 선택하고 집에 오면 항상 씻겨야만 했고 음식도 좋은 식재료로 정성을 다해 직접 해 먹이는데 진심이었다.
하교 후 학원스케줄로 집에 와서 간식 먹을 시간이 안될 때는 손수 만든 간식을 챙겨 학교 앞에서 기다렸다가 먹여서 학원을 보내곤 했다. 학교 앞 불량식품 먹는 것이 탐탁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를 위한 이 모든 행동들이 사랑인 줄 알았다. 아이들도 엄마의 정성을 좋아하는 줄로만 알았던 거다.
엄마가 만들어준 간식이 최고라며 맛있게 먹고 행복해했던 아이였다. 아이들의 행복한 표정에 힘든 줄도 모르고 더욱 아이들에게 지극정성을 다했던 날들이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된 큰아이의 아침 등교가 자꾸만 늦어지기 시작했다. 에너지 높고 노는 걸 좋아하는 아이의 취침시간이 자꾸만 늦어지고 여러 가지 방법을 써보았으나 일찍 재우는 것은 늘 실패로 끝난다.
당연 아침기상시간까지 늦어지기 일쑤다. 아침부터 아이를 다그치고 재촉하며 동동거리는 아침이 반복되는 것이 싫었다. 언제부터인가 아이의 모든 것을 해주기 시작했다. 깨워서 안고 가 씻기고 옷을 입혀주고 밥을 떠먹이며 등교를 도왔다.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학교였지만 학교 앞까지 아이들 데려다주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었다.
늘 좋은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는 리더십 있고 학교생활을 즐거워하며 친구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뭐든 잘하는 아이로 선생님들께도 사랑받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를 엄마는 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뭐든 다해주곤 했다. 그것이 결국 화근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거다.
어느 날 아이가 갑자기 음식을 삼키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여느 때처럼 평범한 저녁 식탁에서 아이가 입안에 밥을 한가득 물고서는 우물우물하며 힘들어하는 거다. 왜 그러냐 물어도 고개만 가로저을 뿐 삼키지를 못한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삼키기 힘들면 뱉으라 했다. 그런데 계속해서 음식을 씹기만 할 뿐 삼키지 못하는 거다.
처음엔 밥 먹기 싫어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계속되는 것이다. 아이가 밥을 삼키지 못하니 두려움이 앞선다. 아이를 붙들고 왜 그런 거 같아? 물어도 아이도 모르겠다고 할 뿐이다. 컨디션은 매우 좋다. 여전히 밝고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랑스러운 아이다.
유독 밥을 먹을 때면 씹기만 할 뿐 삼키지를 못하는 거다. 3일째 같은 모습을 보고 겁이 더럭 나서 동네 소아과에 진료를 받았으나 의사 선생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좀 더 지켜보자할뿐이었다.
그렇게 음식을 전혀 삼키지 못하는 아이를 보는 것은 피를 말리는 일이었다.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학교에서는 어떤지 물어보니 점심시간에도 통 밥을 먹지 않고 거의 남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학교생활은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어 단순히 밥생각이 없나 보다 했다 하신다.
어느새 일주일째다. 다시 병원엘 갔으나 여전히 아이 컨디션이나 건강상태는 양호하다고 한다. 스트레스성 소화불량인듯하니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지켜보자고 할 뿐이다.
일주일째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심지어는 물도 삼키기 힘들어하는 아이를 끌어안고 달래주며 왜 그런지 답답한 심경에 눈물을 보이니 아이가 음식을 삼키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웠지만 애써 태연 한척하며 따뜻하게 다독거려 주었다.
잠든 아이의 손을 꼭 잡고 맘속깊이 아이의 불안이 가라앉기를 기원하며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져내린다.
물끄러미 아이의 얼굴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불현듯 내 모습이 그려지는 거다.
뭐든 아이를 위해 다해주었다.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밤에 잠이 드는 순간까지 엄마인 나는 아이의 손이 되고 발이 되었던 것이다. 아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고 격려해 주는 일이 한순간도 없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왜 그 모습을 그 제서야 깨달았을까?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미안한 마음에 억장이 무너져 내린다.
야무지고 똑똑한 아이였다. 뭐든 스스로 잘할 수 있는 아이였다. 그럼에도 엄마인 나는 아이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던 것이다. 뭐든 다해주는 것이 아이를 위한 거라 생각했고 그것이 사랑이라 여겼던 것이다.
하나하나 엄마의 손길을 거쳐야만 했던 아이는 얼마나 숨이 막혔을까?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느낀 아이는 얼마나 무기력했을까? 그런 순간들이 공포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그제야 잘못된 사랑으로 아이를 망치고 있었다는 생각이 머리를 쾅 때리는 순간이었다. 한참을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고 나서야 아이에게 진심을 다한 마음으로 편지를 써 내려갔다.
"뭐든 엄마가 먼저 해주고 해결해 주는 것이 사랑인 줄 알았어! 엄마가 이렇게 해주는 것이 너에겐 행복인 줄 착각했던 거야!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 너인데 엄마가 그걸 가로막았던 거 같아 정말 미안해! 엄마가 몰랐어. 진심으로 미안해"라는 내용의 글을 가슴으로 울며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갔다.
편지지를 고이 접어 거실탁자에 올려놓았고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겪으며 아침이 되었다. 실컷 자고 일어난 아이에게 따뜻하게 웃어 보이며 엄마가 밤새 네 생각하며 편지를 썼어 엄마의 마음이니 잘 읽어주면 좋겠어하고선 주방에 가서 아침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아이를 보니 주방 반대편으로 등을 돌리고 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다. 궁금해서 살며시 아이에게 다가가 보니 닭똥 같은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는 거다. 아이의 눈물을 보니 마음이 울컥해서 아이를 따뜻하게 안아주니 아이가 훌쩍훌쩍 운다. 서로 끌어안고 아이와 함께 울기시작했다. 급기야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한참을 울고 난 후 서로를 보며 웃는다. 그러더니 아들이 엄마 나 미역국 먹고 싶어요 불고기도 먹을래요 하는 거다. 일주일 동안 밥 한 숟가락 못 먹은 아들의 말에 희망이 샘솟는다.
그래그래 엄마가 다해줄게 좀만 기다려하고선 바로 마트에 가서 미역과 고기를 사 와서 정신없이 밥상을 차렸다. 오랜만에 밥상을 마주한 아이였기에 긴장반 설렘반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아이가 밥을 삼키는 것이다. 한 숟가락 두 숟가락 이내 밥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국물까지도 후루룩 다 마시고선 엄마 정말 맛있어요. 잘 먹었습니다. 하며 환하게 웃는 것이다.
그 순간 그 장면이 사진처럼 내 가슴속에 머릿속에 고스란히 저장되었다. 얼마나 감사하고 감동적인 순간이었는지 그날 나는 다시 태어난 느낌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사랑이라 표현하고 헌신적으로 다해주었던 것들이 오히려 아이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깨닫게 되었던 값진 사건이 되었다.
그 이후로 나의 교육관은 완전히 바뀌었다. 새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아이를 믿어주고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고 지켜봐 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인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인지라 많이 서툴고 실수하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아이에게 진심을 전하며 소통해 가는 법을 깨닫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식겁하고 두려웠던 순간들을 나의 깨달음으로 잘 타고 넘을 수 있었기에 진심으로 감사한 순간이다. 아이라고 해서 부족한 것이 아니고 부모라고 해서 다 옳은 것은 아님을 깊이 느끼게 되었으며 비로소 아이와의 따뜻한 소통을 해갈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부족한 한 사람이 아이를 키우며 함께 성장해 간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아이와 함께 성장해 온 나는 다시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험난한 시간을 겪으며 아이와의 관계는 급상승해서 좋은 관계들로 전환해 갈 수 있었음에 오히려 감사한 시간으로 기억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