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싶은 만큼 더 멀어진다.
흐르지 않을 것 같았던 시간은 하릴없이 흘러 어느새 큰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하게 되었다. 어린이집을 다녔기에 이미 학부형이 되긴 했었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느낌은 남달랐다.
큰아이는 웃음이 많고 매사 밝은 성격이었으며 주변을 따뜻하게 챙길 줄 아는 스윗함까지 갖추었다. 반면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더 넓어진 행동반경에 언제나 신경이 곤두서있고 매의 눈으로 시선은 항상 아이를 향했던 시절이다. 아이들이 다 그렇지만 에너지가 넘치고 지칠 줄 모르는 체력에 더 많은 관심과 정성을 기울여야만 했다.
어쩌면 아이다운 모습으로 지극히 정상적이었던 그때였는데 왜 그리 아이를 통제하려 했는지 돌아보면 아쉽기 그지없다.
1학년 학부모들의 모임이 자연스레 형성이 되었고 자연스레 나는 엄마들 사이에서 왕언니가 되었다. 다행인 것은 나처럼 늦은 나이에 첫 출산을 한 엄마들도 더러 있었고 또는 늦둥이 막내를 둔 엄마도 있었기에 엄마들 사이에 나이차가 그리 크진 않았다.
그래도 어쨌든 그중 가장 나이 많은 나는 왕언니라 불리게 되었다. 왕언니라는 호칭이 마음에 안 들고 좀 불편했지만 뭐 그래도 받아들이게 되었다.
워낙 밝고 매사에 적극적이고 승부욕 강한 아이는 학교생활도 잘 적응해 갔다. 넘치는 에너지를 맘껏 분출하라고 태권도장에 보내줬더니 그리 좋아한다.
심지어는 열감기에 걸려 체온이 39℃가 넘나들고 몸은 축 쳐져서 힘든 상황일지라도 태권도장은 절대 빠지는 일이 없던 집념의 아이였다.
처음 학부모 상담을 하기 위해 교실에 들어서는데 담임선생님이 나를 보자마자 활짝 웃으며 반긴다. 과하다 싶은 반김에 의아해하니 이내 설명해 주신다. 쌤이 교실에 들어설 때마다 교실에서 웃음꽃이 팡팡 터지곤 한다는 거다. 그 웃음의 중심에는 항상 아들이 있단다.
언제나 밝은 에너지로 반에 좋은 분위기가 만들곤 한다며 그 아이의 밝음의 원천은 바로 엄마인 것 같다며 내 모습에서 아들의 모습이 보인다는 거다. 최고의 찬사다. 어깨가 으쓱해진다.
학교에 대한 자부심도 남다른 아이였다. 전국에 있는 초등학교 중에서 우리 학교가 제일 좋다며 학교사랑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이의 자신감 넘치는 학교사랑에 엄마들도 혀를 내두르며 아들을 칭찬하고 좋아했더랬다.
그런 아이였는데 가만둬도 스스로 빛내며 잘 성장할 아이였는데 나는 점점 더 애써 아이를 잘하게 하려 했다. 항상 모범이 되길 바랐고 중심에 있길 원했다. 남들이 인정하는 만큼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자라기 시작했던 모양이다.
내 뜻에 따르도록 아이를 통제하려 했고 뭐든 엄마의 생각과 판단을 아이에게 요구하고 지시를 하곤 했다.
어느새 나는 아이에게 안된다는 말을 많이 하고 있었던 거다. 나의 행동이 아이에게 도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쉽게 멈춰지지 않았다.
아들하고 좋았던 관계가 서서히 금이 가고 있음이 느껴진다.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자꾸만 간섭하고 참견하는 습관이 나조차도 무서워진다. 아침이면 다짐을 한다. 오늘은 아이를 다그치지 않도록 하자. 오늘은 안된다는 말을 빼자! 그러나 아이가 하교하고 오면 나는 또 자연스레 아이를 내 뜻대로 맞추려 했고 안된다는 말로 아이를 가로막곤 하는 것이다. 소통은 점점 불통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미 FM으로 잘하고 있는 아이를 더 돋보이게 하고 싶었고 나의 욕심대로 아이를 만들어 가려했다. 아이와의 소통은 늘 자신해 왔지만 점점 더 나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말았던 거다.
부작용은 바로 나타났다. 이제 초등 1학년 생 아들과 자주 마찰이 일어나고 내 뜻대로 되지 않아 스트레스가 되어 스스로 괴로움의 늪에 빠져들어가는 듯했다. 아이와 나는 점점 웃음을 잃어가고 있음을 감지한다.
아이를 재우고 나면 영락없이 후회와 반성이 밀려온다. 내일은 그러지 말아야지 아이를 존중해 주고 인정해 주자고 수도 없이 다짐하지만 밤이면 또 후회와 반성이 반복되곤 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나를 키우는 것이다. 아이는 잘 성장하고 있음에도 엄마의 욕심에 자꾸만 아이를 코너로 몰아가고 있음을 왜 그때는 인지하지 못하고 보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진심으로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잘못된 방향으로 짙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