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과 출산을 통해 내가 겪은 몸의 변화 2
나의 임신 전 가슴 사이즈는 70E 였다. 잠깐, E컵이라고 무조건 거대유방을 상상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 밑가슴둘레가 70cm이고 가슴둘레가 90cm 이상인 경우(가슴둘레-밑가슴둘레=20cm 이상) E컵으로 분류한다. 즉 같은 크기의 가슴이라도 밑가슴둘레가 작을수록 컵 사이즈가 크게 나온다. 어쨌든 뭐, 작은 가슴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사이즈가 잘 맞는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것은 중요했다. 그래야 활동하기에 더 편했다. 가슴의 무게 때문에 어깨가 말리고 목이 결리는 현상을 완화해 줄 수 있어 체형 유지에도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대학생 시절부터 브래지어는 꼭 전문 매장에 가서 직원의 도움을 받아 정확한 사이즈를 재고 시착용까지 해 본 후 구매 해왔다.
그런데 임신 중기(14주~)에 진입하자 착용하던 일반 브래지어가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점점 불어나는 가슴 하부와 겨드랑이 부분이 불편해졌다. 가슴을 모아주는 보정 기능을 하는 일반 브래지어는 이 부분을 압박해서 통증을 유발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브래지어 착용을 안 하거나 와이어가 없는 브라탑을 입자니 활동량이 많은 나에게는 더 불편했다. 나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임산부 전문 기능성 속옷 브랜드 마더피아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임산부 속옷이라고 검색하면 여러 브랜드가 나오지만 기능성 와이어와 원단을 쓰는 브랜드는 마더피아뿐이었다. 곧장 집에서 가까운 매장을 찾아 백화점으로 갔다. 매장에서 직원의 도움을 받아 정확한 사이즈를 측정한 후에 같은 70E 사이즈지만 와이어의 모양이 더 넓은 산전 산후 겸용 브래지어를 착용해보았다. 일반 브래지어를 착용해서 불편했던 부분을 확실히 더 편안하게 잘 받쳐주었다. 하지만 가격이 후덜덜했다. 임신 전에는 4~5만 원대의 브래지어를 구매해왔는데, 이건 두 배의 가격이었다. 마침 선물 받은 백화점 상품권이 있어서 비교적 부담 없이 하나를 구매할 수 있었다. 임신 중후기를 거치며 점점 더 커지는 유방을 잘 서포트해줬고 출산 후에 모유수유를 하면서도 잘 이용했다.
만삭 때는 불어오는 가슴과 배가 만나서 그 부분에 땀이 차서 불쾌했다. 배가 불러오면서 똑바로 누워서 잘 수가 없어서 옆으로 누워 자다 보면 무거운 가슴이 한쪽으로 쏠리는 느낌도 영 불편했다. 그래서 임신 전에는 노브라로 취침했지만, 임신 후기와 수유기에는 잘 때도 수유 겸용 노와이어 브래지어를 착용해서 가슴 무게를 받쳐주었다. 많은 산모들이 임신 중 유방의 크기 변화로 이러한 불편함을 겪는다. 대부분은 한 두 사이즈가 큰 일반 브래지어나 노와이어 브래지어를 구매해서 착용하는데, 이는 유선 발달을 방해해서 나중에 모유수유를 힘들게 하고 산후 가슴 처짐을 유발할 수도 있다. 10만 원짜리 산전 산후 겸용 브래지어를 구매하면 임신 기간 내내, 그리고 산후 6개월 정도까지 매일매일 편하게 입을 수 있으니 따지고 보면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였다. 임신 축하 선물은 아기 내복 말고 이런 걸 해주면 너무 유용할 것 같다.
출산 직후에는 모유를 촉진하는 허브차를 마시고 유선을 뚫어주는 유방마사지를 받으며 틈틈이 젖을 물렸다. 지난 30년간 별다른 기능을 하지 않던 내 유방이 처음으로 유용한 일을 하고 있었다. 조리원에 입소한 날 밤 출산 후 처음으로 샤워를 했다. 2박 3일 병원 입원 동안 땀에 찌들어있다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니 너무 개운하고 좋았다. 그런데 몸을 닦고 나오자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 발생했다. 유방 두쪽이 축구공만큼 터질 듯이 불어난 것이었다. 혈액순환이 갑자기 확~ 촉진되면서 본격적으로 모유가 돌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기다렸던 모유였지만 현실은 아름답지 않았다. 여태 열심히 젖을 물려대서 젖꼭지가 이미 너무 예민해졌기 때문이다. 유축기로 짜내자니 기계의 압력은 너무 쓰라리고 고통스러웠다. 아기에게 물려 빼내기에도 너무 양이 많았다. 유방은 점점 더 단단하게 굳어 열이 났고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말로만 듣던 젖몸살 증상이었다. 밤이 늦어 나를 도와줄 유방마사지 선생님도 없었다. 유방 두쪽을 부여잡고 엉엉 울었다. 할 수 없이 남편이 두 손으로 펌핑해서 수동 유축을 시도했다. 유축기보다는 덜 아팠지만 요령을 모르는 남편이 있는 힘없는 힘을 다해 열심히 짜내는 바람에 유방에는 선명한 멍자국이 남았다. 다음날 일어나서 보니 마치 곧 터질 것 같은 시퍼런 풍선 같았다.
산후 6개월에 밤중 수유를 끊기 전까진 모유가 찰 때마다 유방이 무겁게 불어났다. 친정엄마가 모유 양이 적었대서 나도 그럴까 걱정했는데, 유방의 사이즈와 모유의 생산량은 상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 모유 양은 아기가 필요한 것보다 많았다. 모유가 부족하면 마음이 아프고, 모유가 많으면 유방이 아프다. 모유 양이 많다고 좋기만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아기의 수요와 모유의 생산이 딱 맞아떨어지는 지점에 도달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데 이것은 100% 직수(유축이 아닌 직접 수유)를 할 때 가장 빨리 달성된다. 유축기는 젖양을 늘리고 싶은 산모가 전략적으로 사용하거나 복직을 해야 해서 젖이 찰 때 아기에게 직접 물리지 못하는 산모가 사용하는 도구이지, 나처럼 젖양이 많은 산모가 젖을 빼내는데 쓰는 도구가 아니었다. 빼내는 만큼 더 무서운 속도로 넘치도록 생산해내기 때문이다. 산후 백일쯤이 돼서야 비로소 젖양의 생산이 아기의 수요와 맞아져 평화롭게 수유를 할 수 있었다.
모유수유를 하고 나면 가슴이 작아지거나 축 처진다더니 산후 8개월에 단유를 할 때까지 임산부 브래지어를 잘 착용해주고 산전 산후로 근력 운동도 꾸준히 해주었기 때문에 심한 가슴 처짐이나 작아짐 없이 임신 전 가슴 사이즈와 모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래도 임신 중 유방의 크기와 기능의 변화는 임신 중기부터 단유 할 때까지 가장 장기간으로 나에게 불편함을 안겨주었던 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