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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브로 Nov 28. 2020

출산의 고통보다 더 한, 입덧의 세계(2)

첫째 때 입덧을 하면 과연 둘째도, 셋째도 똑같이 입덧을 할까?

기다리던 둘째의 임신 소식을 알았을 때,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아기집을 확인하고 곧 입덧이 시작될 것이란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신에게는 아직 일주일이란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라는 마음으로 일주일 간 먹고 싶은 음식을 미리 실컷 먹어뒀다. 5주 차가 되자 울렁울렁 메스꺼운 느낌이 심해지기 시작하더니 6주 차에는 토덧과 양치덧이 본격적으로 활개를 쳤다.


아침에 눈뜨고 일어나면 우선 화장실 변기로 달려간다. 자는 동안 이미 음식이 다 소화된 뒤라 위가 비어있으니 노란 위액과 초록색 쓸개즙을 게워낸다. 위액이 역류하는 건 마치 레몬 한 개를 통째로 어금니로 씹어 먹고 레몬을 올리는 느낌이다. 위액이 닿은 치아가 다 녹아 뽑힐 것처럼 시리다. 변기를 부여잡고 많이 올릴 땐 당시 넷플릭스에서 방영하던 스릴러 <킹덤>에 나오는 좀비가 된 기분이었다. 토하고 난 뒤에도 개운 하다기보다는 얼굴에 피가 쏠려 사람의 몰골이 아니다. 고문이 따로 없다. 눈, 코, 입 구멍이란 구멍으로 다 물이 나오고 하루의 시작인 아침부터 이미 진이 다 빠져버린다.


통근거리가 버스로 왕복 세 시간 거리로 늘어났지만, 회사의 셔틀버스가 있었기에 버스에서 잠들면 그나마 출근은 어렵지 않았다. 다행히 동료들과 나가 점심식사도 함께 할 수 있는 정도의 컨디션이었다. 둘째는 첫째에 비하면 입덧의 강도와 빈도가 달랐다. 공복을 피하기만 한다면 첫째 임신 때 비해 잘 먹었고 덜 토했다. 문제는 양치였다. 양치를 하려고 칫솔만 입에 넣으면 역한 치약 냄새와 함께 30초를 넘기지 못하고 구역질이 올라왔다. 한 번 올라온 구역질은 참을 수 없이 결국 음식을 다 토해내고야 말았다. 개운함은커녕 도리어 찝찝함만 남기는 양치시간이 너무 힘들었다.


둘째 때도 하루에 다섯 번 정도는 화장실 변기로 달려갔지만 첫째에 비하면 이 정도는 견딜만한 수준이었다. 그나마 음식을 먹을 수 있고, 홀스를 입에 물고 버스에서 잠들면 그럭저럭 회사도 다닐 만했다. 이 정도만 가능한 생활에도 태아에게 참 고마웠다. 12주가 지나니 입덧은 자연스럽게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사라졌다.


셋째로 올수록 입덧의 강도는 약해졌다. 셋째는 먹덧에 가까워 공복을 피해 잘 먹어주기만 하면 크게 나를 힘들게 하진 않았다. 대신 먹고 싶어서 먹기보다는 공복을 피하기 위해 계속 뭐든 먹어줘야 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샤워를 하려고 하면 급격히 컨디션이 나빠져 매일 저녁 8시도 전에 잠들었다. 이때 나빠진 컨디션을 잠재울 타이밍을 놓치면 토덧으로 이어졌기에 이 시기에 잠을 정말 많이 잤다. 시간이 지나 나이를 조금 더 먹은 것 말고 나의 체질이나 몸은 그대로인데 아이에 따라 입덧의 강도가 다른 점이 신기하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입덧의 세계이다.


임신 중 입덧은 전체 임산부의 70~85%에서 발생할 정도로 흔하다. 입덧이 나타나는 정확한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진 않았으나, 진화상으로는 태아를 보호하기 위한 반응이라고 한다. 추가로 임신에 의한 호르몬 분비 상태의 변화도 큰 원인으로 추정된다. 그렇기에 주변의 임신 소식을 전하는 임산부를 만나면 축하에 이어 입덧으로 고생하지 않길 걱정하는 마음이 앞선다. 입덧이 없다면 정말 축복받은 일이고, 입덧으로 고생 중이라면 시간이 약일뿐이다. 어떤 것도 권하지 않고 가능한 푹 쉬며 어서 입덧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려 주는 수밖에 없다.


엄마가 되는 길은 처음이 아닌 두 번째도 세 번째도 쉽지만은 않다. 임신 소식과 함께 곧이어 연달아 이어지는 입덧 시기를 나 혼자서는 결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가장 가까운 남편의 배려가 매우 큰 힘이 된다. 내 몸이 내 마음 같지 않아 속은 울렁거리고 체력은 현저히 떨어질 때, 남편을 향한 미안함과 고마움의 감정은 오히려 더욱 커졌다. 주말이면 나보다 먼저 일찍 일어나 아침을 차려 주고, 공복기엔 속이 더 안 좋아지니 시간 맞춰 간식을 챙겨 주고, 힘들면 침대에 누워 쉬라며 나 대신 첫째와 둘째를 살뜰히 챙기는 남편에게서 크나큰 동지애를 느꼈다.


어느 날은 한참 입덧 중이던 내게 다섯 살 첫째가 달려와 “엄마, 나 아빠랑 약속했어요!”라고 말했다. ‘무슨 약속? 엄마 말 잘 듣기로?’ 정도를 예상했던 내게 첫째는 “첫 번째, 엄마가 화장실에서 토하면 물 가져다 주기! 두 번째, 엄마가 쉬고 싶어 할 때는 언제든 잘 수 있게 내가 도와주기!”라고 이야기했다. 엄마의 갑작스러운 몸의 변화에 아이가 당황하지 않게끔, 남편이 차분히 얼마나 잘 설명을 해줬으면 아이가 내게 와서 이렇게 이야기 하나 싶어 감동받았던 기억이 난다. 힘든 시간을 함께 견뎌내면서 아기가 태어나도 이 남자와 함께라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으리란 근거 있는 자신감과 믿음이 굳건해졌다.


입덧을 모르고 겪으면 하루하루 버티기가 정말 힘이 든다. 뭔가 ‘내 몸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정말 입덧이 끝나긴 하는 걸까’ 하는 불안이 온통 나를 감싸기도 한다. 그러나 이토록 괴로운 시간에도 분명 끝은 있다. 임신 초기라는 위험한 시기에 아이가 잘 자라주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며 버티다 보면 끝이 없어 보이던 입덧도 결국엔 지나간다. 나와 아기만을 생각하며, 앞으로의 긴 여정 중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한 시간들을 잘 헤쳐나갈 모든 예비엄마를 응원한다. 비록 먹을 수 있는 게 거의 없어 힘은 안 나겠지만 그래도 조금만 버티다 보면 입덧 또한 하루라도 빨리 곧 지나가길.

9주차(좌)에서 13주차(우)로 폭풍 성장한 셋째의 초음파 사진


허은실 시집 <나는 잠깐 설웁다> 中


익숙하던 것들이 먼저 배반하지

그러므로 어느 날

밥냄새를 견딜 수 없게 되는 것

너의 멜로디를 참을 수 없게 되는 것
 
검은 행에 변종의 언어가 파종될 때

냉동실에는 수상한 냄새들

친밀한 너를 혐오한다

 
다른 살을 맛보고 싶어

맹목적으로 아밀라아제
 
가자 하니 어디로

석유를 마신 듯 이글거리는 내부여

종일 배를 탔으니 어디로 갈까
 
별을 낳기 위해

중력을 거부해야 하므로

소화되지 않는 말이

밑구녕이 거꾸로

치밀어올라오고
 
벚나무 수억의 유방 부풀어

가렵다

접신한 듯

미열에 들뜬 나무들

제 몸을 게워놓는다
 
들썩이는 치열

나는 나로부터 멀다

헝클어지는 지문

불화로부터 별의 머리카락은 자란다

습성은 문득 낯선 얼굴

 
이후는 다시 이전이 될 수 없다
 
킁킁, 이 냄새는 뭔가
 
 -입덧-


시인의 언어로 풀어낸 '입덧'시에 매우 공감한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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