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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젠틀리 Sep 08. 2024

두 번째 신혼여행

분명 셋째 딸은 얼굴도 안 보고 데려간다 했다. 한국 내 한정인가.  누구보다 빠르게 결혼할 거란 예상을 깨고 나의 결혼은 볼일이 급한 나무늘보의 전진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다양한 인종과 환경의 사람들과 어우러져 자란 나는 과연 어디에서 인연을 만나 사랑하게 될까 궁금증을 가득 안고 기다렸다.


취업으로 한국에 나오게 되었을 때 무뚝뚝한 경상도남자 말고 다정한 서울남자를 만나라 지인들은 조언했다.


하지만 운명은 나를 상남자의 고장 경상도로 인도했고 대구에서 나고 자란 순도 100% 경상도 남자를 만나 지난봄 웨딩 마치를 울렸다.



감사히도 나의 경상도 남자는 매사에 다정하고 세심했다. 결혼식을 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에 계신 아빠의 부고소식을 들었을 때도 모든 절차를 사려 깊게 함께해 주었다.


장례식 참석을 위해 미국에 가야 했고 그곳에 두고 온 상처들을 마주할 생각에 발걸음이 무거웠다.


남편은 아버지 가시는 길 후회 없이 잘 보내드리고 좋은 추억도 만들고 오자며 날 다독였다.

 

미국에 도착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장례와 관련된 많은 일정을  보았고 슬프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의 무게를 느꼈다. 어려운 걸음이었지만

아빠의 마지막을 배웅해 드리러 온 것은 참 잘한 일이었다.


곧 한국 귀국을 앞두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할까

조심스러웠지만 아빠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해봤다.

이제 막 결혼식을 올린 딸과 사위가 함께 처음 밟는 미국땅에서 좋은 추억도 만들어가길, 이 시간이 선물이 되길 바라진 않았을까.     


우린 그렇게 용기를 내어 두번째 신혼여행을 떠나기로했다. 경황이 없는 중에 큰 부담 없이 갈 수 있을, 본가에서 차로 3시간 반 거리인 뉴욕을 택했다.


뉴욕은 나에게 의미 있는 추억들이 많은 곳이기도 해 배우자가 생기면 꼭 함께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언제 가보게될까 막연했는데 이렇게 가보게되는구나. 아빠가 하늘에서 보내준 결혼선물 같았다.




뉴욕에 데려다줄 버스가 정차하는 정류장에 일찌감치 도착한 우리의 단출한 여행 계획을 되짚어 본다. 뮤지컬 관람과 자유의 여신상 인증샷 남기기. 나머지는 시간과 상황에 맡기기로 했다.


출발시간에 맞춰 모습을 드러낸 2층짜리 메가버스. 지정석표를 구매한 사람들이 먼저 탑승을 하고 자유석표를 가진 사람들이 빈자리를 찾아 앉는 시스템이었다.


2층은 3시간 반동안 멀미에 시달릴 수 있다는 언니의 조언을 주의 깊게 메모한 우리는 1층에 남은 마지막 좌석을 사수했다.



버스가 출발하자 이 좌석이 왜 남아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좌석 밑 부분이 헐겁게 고정되어 있어 버스의 움직임에 따라 의자가 앞으로 또 뒤로 밀려 올라갔다 내려왔다. 좌석 간의 간격도 매우 좁은 편이라 비행기 이코노미석 파트 2의 느낌이었다.


"Are we there yet?" "아직 멀었어요?"를 외쳐대는 만화영화 슈렉 당나귀가 빙의되어 계속 시계를 재촉하면서도 마음만은 충분히 행복했다.


학창 시절의 즐거운 기억들로 가득한 곳에 갈 수 있어서. 남편에게 미국여행의 추억을 선물할 수 있어서.        


언니가 챙겨준 간식거리들을 야무지게 챙겨 먹고 정신없이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뉴욕 도로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우리의 두 번째 신혼여행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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