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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젠틀리 Sep 01. 2024

아빠가 남기고 간 선물

My Father's Legacy


생애 처음이다. 하루 만에 준비해 장거리 비행길에 오르는 건. 발목 끝을 살랑살랑 간지럽히는 얕은 시냇물에서 느껴지는 그 연약한 강도만큼  잔잔히 밀려오는 막연한 불안함. 무언가 빠뜨리고 가는 건 아닌지 자꾸 되짚어봤다.


마음이 급한 우리를 기차역까지 데려다준 택시도 뭐가 그리 급했을까. 우리가 짐을 내리기 무섭게 트렁크를 연 채로 급하게 출발해 버렸다. 슬리퍼를 신고 전력질주로 택시를 따라잡아 트렁크를 닫는 데 성공한 남편은 엄지발톱이 들려 피가 나는 부상을 입고 만다. 긴 여정이 시작되는데 다친 발톱이 아프고 불편할 거란 생각에 속이 상해 두 눈썹이 하늘 끝까지 올라갔지만 남편은 괜찮다며 방긋 웃어 보였다.

 


KTX를 타고 공항철도도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벌써 피곤했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수화물 체크인을 하고 탑승게이트로 향했다. 우리가 선택한 (사실 급한 구매라 선택권은 없었지만) 항공사는 츤데레에 가까운 쿨한 서비스의 미국 델타항공이었다. 우리 좌석 구역이 호명되길 대기하며 입국심사 시 남편이 잘 대답할 수 있도록 연습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길고 길었던 비행을 함께 해준 두 끼 식사와 간식거리들


아주 오랜만의 장거리 비행. 꼬박 13시간 반을 날아 우리의 환승지인 애틀랜타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바쁜 걸음으로 수화물을 찾아 최종목적지로 보내지도록 담당자에게 맡기고 두 번째 비행기에 올랐다.



두 시간을 더 날아 드디어 최종 목적지 볼티모어에 도착했다. 새벽 1시가 다되어 공항은 한산했고 실물로는 처음 보는 형부가 우릴 마중 나와있었다. 조용하고 캄캄한 도로를 20분쯤 달려 큰언니집에 다 달았을 때 잔디밭을 서성이고 있는 사슴 두 마리가 시야에 들어왔고 "Welcome to America! 미국에 온 걸 환영해."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잠들었을 조카 스카일러가 깨지 않게 깨금발을 들고 집에 입성 성공. 거의 10년 만에 얼굴을 마주하는 언니지만 낯설지가 않네. 가족은 가족인가 보다. 그동안 서로에게 가지고 있었을 궁금함도 서운함도 굳이 하나하나 확인하는 절차 없이 그저 서로를 반가워하며 받아주었다.




용기 내어 미국에 걸음 한 이유, 아빠를 만나러 가는 날이 밝았다. 장지에 모시기 전 고인의 얼굴을 직접 보고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는 viewing을 위해 funeral home (영안실과 장례식장 사이 느낌의 공간)을 찾았다.


작별인사를 위해 마련된 공간에 입장하기 전 장례지도사는 우리에게 몇 가지 안내사항을 전달했다. 아빠의 몸이 소독이 되어있으니 만지거나 뽀뽀를 해도 된다고. 다만 몸이 차가울 테니 놀라지 말라고.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고 아빠를 모신곳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 앞쪽에 얼굴을 제외한 몸 전체가 흰 천으로 싸매여있는 아빠가 누워있었다. 두 눈을 감고 아무 말 없이 누워있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게 이제야 실감이 났다.


요리해 먹는 일도 군것질하기도 좋아해 늘 통통했던 아빠의 두 볼이 홀쭉해져 있었다. 떨리는 손을 뻗어 차디찬 볼을 오른쪽 또 왼쪽 차례로 쓰다듬으며 다른 한 손으론 내 눈물을 훔쳐내며 하늘에 기도를 올렸다.  


'하나님, 아빠의 영혼을 의탁합니다. 평생을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했던 그 마음, 의의 길을 걷고자 했던 그 진심만은 아버지께서 아시오니 이 길 인도해 주시고 고달팠을 마음을 위로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옵소서.'


 



아빠, 아빠랑 이렇게 헤어지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어요.

아빠의 인생의 마지막 나날들을

함께하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요.  

하지만 아빠도 잘 아시지만 딸들 중에서도

유난히 마음이 여리고 또 여린 딸이라서

살기 위해서 한국으로 떠나갈 수밖에 없었어요.

  

돌아보면 아빠와 얽힌 상처도 많지만

아빠를 향한 고마움도 커요.

언어도 서툴고 문화도 낯선 미국이란 땅에서

한 두 명도 아니라 다섯 자녀의

가장으로 살아간다는 무거움에

삶이 얼마나 고달팠을까요.

한국에서 이룬 모든 걸 내려놓고 시작한 길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많이 허무하셨지요.


그런데 아빠, 아빠의 그 희생이

헛되지 않았노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아빠가 저와 자매들에게 남겨주신 유산은

돈으로 살 수도 가치를 매길 수도 없을 만큼

소중한 것들이니까요.


가장 낮은 자리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던

아빠의 걸음을 옆에서 함께 걸으며

우리에게 일어났던 많은 일들을

눈물로 소화해 낸 날들이 모여


'세상엔 내가 감히 다 상상치 못할

다양한 아픔과 사연이 존재하는구나.'

타인을 귀하게 여기며

그들의 슬픔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깊이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해 주었지요.


존경받아 마땅한 선생님들을 몇 분이나 만나

오랫동안 마음에 새기고 싶은

학문이상의 가르침을 받을 있던 것도 

다양한 문화와 경험이 살아 숨 쉬는

이 크디큰 나라로의 이민을 도전해

실행에 옮긴 아빠의 용기 덕분입니다.


이 모든 것이 마음밭에 양질의 거름이 되었으니 

앞으로 더욱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

스스로에게만이 아니라

세상에 이로운 사람이 될 테니 지켜봐 주세요.


아빠, 좋은 아빠를 경험해 본 적이 없어

막막해하셨고 우리를 아프게도 했지만

그런 결핍을 굽어 살펴주시는 하나님께서

때에 따라 값진 경험들과

좋은 사람들을 우리 인생에 보내주셨고

그 손길과 순간들이 모여 딸들을 성장시켜 주었어요.  

그러니 평안히 쉬실 수 있길 바라요.     

사랑합니다.

  

  

아빠가 떠나가신 자리, 그  삶을 이어갈 아빠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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