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처음이다. 하루 만에 준비해 장거리 비행길에 오르는 건. 발목 끝을 살랑살랑 간지럽히는 얕은 시냇물에서 느껴지는 그 연약한 강도만큼 잔잔히 밀려오는 막연한 불안함. 무언가 빠뜨리고 가는 건 아닌지 자꾸 되짚어봤다.
마음이 급한 우리를 기차역까지 데려다준 택시도 뭐가 그리 급했을까. 우리가 짐을 내리기 무섭게 트렁크를 연 채로 급하게출발해 버렸다. 슬리퍼를 신고 전력질주로 택시를 따라잡아 트렁크를 닫는 데 성공한 남편은 엄지발톱이 들려 피가 나는 부상을 입고 만다. 긴 여정이 시작되는데 다친 발톱이 아프고 불편할 거란 생각에 속이 상해 두 눈썹이 하늘 끝까지 올라갔지만남편은 괜찮다며방긋 웃어 보였다.
KTX를 타고 공항철도도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벌써 피곤했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수화물 체크인을 하고 탑승게이트로 향했다. 우리가 선택한 (사실 급한 구매라 선택권은 없었지만) 항공사는 츤데레에 가까운 쿨한 서비스의 미국 델타항공이었다. 우리 좌석 구역이 호명되길 대기하며 입국심사 시 남편이 잘 대답할 수 있도록 연습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길고 길었던 비행을 함께 해준 두 끼 식사와 간식거리들
아주 오랜만의 장거리 비행. 꼬박 13시간 반을 날아 우리의 환승지인 애틀랜타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바쁜 걸음으로 수화물을 찾아 최종목적지로 보내지도록 담당자에게 맡기고 두 번째 비행기에 올랐다.
두 시간을 더 날아 드디어 최종 목적지 볼티모어에 도착했다. 새벽 1시가 다되어 공항은 한산했고 실물로는 처음 보는 형부가 우릴 마중 나와있었다. 조용하고 캄캄한 도로를 20분쯤 달려 큰언니집에 다 달았을 때 잔디밭을 서성이고 있는 사슴 두 마리가 시야에 들어왔고 "Welcome to America! 미국에 온 걸 환영해."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잠들었을 조카 스카일러가 깨지 않게 깨금발을 들고 집에 입성 성공. 거의 10년 만에 얼굴을 마주하는 언니지만 낯설지가 않네. 가족은 가족인가 보다. 그동안 서로에게 가지고 있었을 궁금함도 서운함도 굳이 하나하나 확인하는 절차 없이 그저 서로를 반가워하며 받아주었다.
용기 내어 미국에 걸음 한 이유, 아빠를 만나러 가는 날이 밝았다. 장지에 모시기 전 고인의 얼굴을 직접 보고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는 viewing을 위해 funeral home (영안실과 장례식장 사이 느낌의 공간)을 찾았다.
작별인사를 위해 마련된 공간에 입장하기 전 장례지도사는 우리에게 몇 가지 안내사항을 전달했다. 아빠의 몸이 소독이 되어있으니 만지거나 뽀뽀를 해도 된다고. 다만 몸이 차가울 테니 놀라지 말라고.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고 아빠를 모신곳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 앞쪽에 얼굴을 제외한 몸 전체가 흰 천으로 싸매여있는 아빠가 누워있었다. 두 눈을 감고 아무 말 없이 누워있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게 이제야 실감이 났다.
요리해 먹는 일도 군것질하기도 좋아해 늘 통통했던 아빠의 두 볼이 홀쭉해져 있었다. 떨리는 손을 뻗어 차디찬 볼을 오른쪽 또 왼쪽 차례로 쓰다듬으며 다른 한 손으론 내 눈물을 훔쳐내며 하늘에 기도를 올렸다.
'하나님, 아빠의 영혼을 의탁합니다. 평생을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했던 그 마음, 의의 길을 걷고자 했던 그 진심만은 아버지께서 아시오니 이 길 인도해 주시고 고달팠을 마음을 위로해주시고 사랑해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