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배송 가는가?”
“안녕하세요. 어르신.”
윤기사가 하늘색 유니폼과 흰색 모자를 쓴 노부부에게 인사를 건넸다.
노부부는 직원들이 물건만 빼내고 버린 파지로 가득 찬 핑크색 이동색 트롤리를 끌고 왔다. 하역장에 있는 초대형 쓰레기통에 쏟아내기 위해서였다.
“일 좀 어떠세요?”
“맨날 똑같혀. 나이 많아서 PD뭐시깽인가 그 기계 쓸 줄 모른다고 청소만 시키고. 물류 놈들 아무 데나 상자 버리는 거 다 걷어 와야지, 옘병 화장실에 똥오줌 싸질러 놓은 거 치워야지. 칵칵 가래랑 침 뱉는 오살 놈들은 쌧바닥을 뽑아서 신발 밑창으로 깔아야 정신 차릴 것이여.”
구수하다 못해 어질 해지는 전라도 할머니의 욕 폭탄에 윤기사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건 그라코. 문자? 그런 거 보내는 데는 얼마나 들랑가?”
“문자 보내시게요? 한 글자당 얼마 이렇게 받는데 맨날 가격이 올라요. 지금은 얼만지 제가 확인해 보고 알려드릴게요.”
“그랴.” 할아버지가 마지막 남은 파지를 모두 쏟아내며 말했다.
“어디다 보내시게요.”
“어디긴 어디야 이 육시랄 자식노무 시키들이지.”
“예? 자식들이 왜요. 금지옥엽 하셨잖아요.”
“이 호랑말코 같은 놈들이 노력을 헐 생각을 안혀고, 다 늙어빠진 우리만 믿고 있덩께. 제사상이라고 어디서 개밥 같은 걸 차려놓고 부자 되게 해 달라, 건강하게 해 달라, 시험 합격하게 해 달라, 좋은 신랑, 신붓감 만나게 해 달라. 이제 허다허다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 쫓아가서 조상들에게 정성을 들인다고 몇백만 원을 빚지고, 저번 제사 때부터는 음식도 없이 그 뭐시냐 젊은 사람들 쓰는 콤퓨타 노...노”
“노트북이요?”
“맞으. 그거. 거기다 제사상 사진 올려서 절을 하면서 우리는 아부지, 어무이 생각해서 제사란 제사는 다 드렸는데 오히려 빚만 생겼다면서 우거들 탓을 한당게. 얼마 있음 우리 고손자가 돌이여. 그놈 무사태평 기원하며 돌반지까지만 딱 보내주고 이제 니들이 열심히 좀 해서 먹고살라고 문자 보낼 거여.”
“보통 어르신들이 하는 것처럼 꿈에 찾아가는 걸 하지 그러셔요.”
“아서. 그거 쪼~까 나가려고 새삼 옷 차려입어야지, 깊게 곯아떨어질 때까지 몇 시간은 기다려야지. 그냥 문자 한 통 보내주고 기둥 뒤로 갈랑게.”
그때 상자가 가득 담긴 카트를 끌고 희숙이 걸어왔다. 청록구슬이 알알히 박힌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인 안경테가 오늘따라 유난히 달랑거렸다.
“어머 어르신들도 계셨네요. 건강하시죠? 저 윤기사님 이거... 잘 좀 부탁드려요. 가다 망가지지 않게요. 워낙 잘하시는 거 알지만 노파심에요...”
“그럼요. 안전하게 잘 전달하겠습니다.”
희숙은 바빠서 먼저 간다며 쏜살같이 하역장을 빠져나갔다.
바쁘다는 것은 왠지 핑계인 듯 보였지만 말이다.
“옴마. 뭔 실이야 이렇게 만타냐.”
할머니가 윤기사 앞에 놓인 상자들을 보며 말했다.
“명주실, 털실, 극세사실, 수세미실, 이건 또 뭐시여 마... 마크라메실? 우리 집 새끼들도 골 때리지만 저 집 새끼도 만만찮은가 보제?”
윤기사는 매년 희숙의 아들에게 택배를 전달하고 있었다. 희숙의 남편과 아들이 사는 동네가 그의 관할구역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윤기사가 운전도 부드럽게 하고 택배 상자도 함부로 던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론 더욱 그를 신뢰했다. 가끔은 윤기사를 아들처럼 대하기도 했는데 그것은 정말 어쩌다 한번뿐인 일이었고, 되려 소은이나 수민 같은 어린 여자들을 보면 도와주고 챙겨주고 싶어 어쩔 줄 몰라했다.
사람들은 희숙이 살아생전 딸 가지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희숙은 항상 정신이 없었다. 이 사람도 딸 같고 저 사람도 딸 같아서 도와주고 챙기느라 관리자임에도 불구하고 잔실수가 많았다. 전산에 입력하는 물건의 수는 항시 틀렸으며, 물건을 엉뚱한 곳에 두고 오는 일 또한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태평양 같은 오지랖의 그녀가 가장 최우선시하는 일이자 그녀가 물류센터에서 계속 일하고 있는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지상에 있는 아들 장가보내는 일이었다.
그의 아들은 희대의 불운아로 불렸다. 대학, 취업, 결혼, 인간관계등의 반복된 실패로 점점 망가졌다. 올해 서른인 그는 밤새 피시방에서 담배와 게임으로 시간을 때우다 날이 서서히 밝아오는 새벽쯤 편의점 플라스틱 테이블에 앉아 깡소주를 마셔대고 택시를 운영하는 아버지가 아침 일찍 출근하고 나면 집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언제까지 인생 그렇게 살 거냐”
“나이가 몇 살인데 아버지 등골 빨아먹냐”
아버지의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서 최대한 마주침을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윤기사는 새벽 배송을 나갈 때마다 부자의 이런 모습을 봐왔다. 희숙이 은근슬쩍 가족 안부를 물어도 근무 규정상 말씀드리기 어렵다 하며 거절했지만, 사실 말해서 좋을 게 없기에 입을 더욱 굳게 닫았다. 최근엔 희숙의 아들이 마약까지 손을 뻗친 듯 보였다. 편의점 테이블을 치우러 나온 주인이 발견해 경찰서에 간 것도 몇 번이고, 길에서 좀비처럼 서 있거나 걸었다. 차도 한가운데서 옷을 다 벗고 돌아다닌 적도 있었다. 덕분에 문신 가득한 그의 알몸이 모자이크 처리된 채 지상파 방송국 뉴스와 포털사이트를 도배한 일도 있었다.
그의 인생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1학년땐 전교 1등도 한 적이 있었는데 가장 중요한 고3 때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기로 한 사람처럼 바보가 되었다. 그동안 공부 한 것을 전부 기억 못 하는 것은 물론이고 수능도 망칠 대로 망쳤다. 대학에 떨어졌고, 재수, 삼수를 해도 결과는 같았다. 당연히 그 때문에 원하는 직장도 연봉도, 원하는 이상형에 여자친구는 꿈도 못 꾸는 다른 의미의 탄탄대로가 열려 점점 포악해지고 공격적인 인간이 된 것이었다.
희숙은 난봉꾼 같은 사람들한테 학을 떼는 인물이다. 물류센터 안에서도 소란을 피우거나 규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직원들을 극도로 혐오하기로 유명하다. 그녀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 놈들 중에서도 빌런으로서 커리어하이를 달성해 나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의 아들이 됐을 줄은. 센터 직원들 중에는 꽤 비싼 금액임에도 참지 못하고 지상에 있는 사람들을 보러 가기도 했는데 (그래서 더욱 돈이 모이질 않았다.) 희숙은 돈을 아끼기 위해 십 년 넘게 한 번도 가지 않았다. 하여 진실을 까맣게 모르는 희숙은 낮이고 밤이고 아들의 결혼을 염원하고 있다. 지푸라기, 노끈, 라탄, 생전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다양한 종류의 실을 보내는 이유는 어떻게든 참하고 예쁜 아가씨와 엮이길 바라는 그녀의 바람이 담아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은 아마 청소팀 전라도 할머니처럼 욕을 할 것이다.
“옘병, 누구 인생 망치려고?”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어?” 환섭이 물었다.
“일단 제가 범인이라는 증거도 없고, 그렇다고 아니라고 입증할 증거도 없어서 보류 중인 상태예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시간의 순서대로 이야기를 하는 수민의 모습은 마치 조선시대의 전기수 같았다. 일반 직원들은 핸드폰도 없고 컴퓨터도 없었기 때문에 디지털 문명이 발전하기 이전 시대처럼 모든 정보와 소식을 입에서 입으로 전할 수밖에 없었다. 일을 잘해서 관리자나 천사가 되면 핸드폰이나 컴퓨터를 쓸 수 있다고 했지만 그마저도 지상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얼마나 답답하고 또 궁금하겠는가?
“그럼 미경 님은?” 혜미가 아기에게 물을 먹이며 물었다.
“의료기기 구역의 잘생긴 관리자님 있잖아요? CCTV에 그분 따라가는 영상이 찍혔대요. 저랑 마찬가지로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 역시 없는 상태고요.”
“우린 수민이 네가 아닌 걸 믿어.” 희숙이 수민의 어깨를 감싸며 토닥였다.
“진짜 범인 제 손으로 꼭 잡고 말 거예요.” 수민이 두 팔을 하나로 모아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옆에 서 있던 환섭이 턱끝까지 다가온 주먹 공격에 화들짝 놀란다. 동그란 원을 만들어 서 있는 사람들이 함박웃음으로 입동굴을 만든다.
“선배님. 어떨 땐 그냥 인생을 바꿔주고 싶다니까요?”
민가엘이 점심으로 나온 소시지 야채 볶음을 집으며 말했다.
선배천사는 신입천사의 넋두리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쩝쩝 소리를 내며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또 뭐가?”
“한 사람은 맨날 죽고 싶대요. 더 살아서 뭐 하냐는데 이게 다 엄마 때문이래요. 엄마가 먼저 죽은 이후로 내 인생이 꼬였다나.”
“뭔 개소리야. 그럼 반대는?”
“잘 살고 싶대요. 돌아가신 아빠가 천국에서 자랑스러워하셨으면 좋겠대요.”
“잘됐네. 걔네 아빠 대신 네가 봤으니. 자랑스러워해 줘.”
“아이참 선배는 농담 그만하시고요.”
“아이참 너는 입 닫고 밥이나 드시고요.”
“사람일 땐 몰랐는데 천사가 되니까 저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더라고요. 멀쩡하지만 죽고 싶다는 쪽과 죽겠지만 어떻게든 살고 싶다는 쪽. 제가 나중에 승진하게 되면 힘이 생기겠죠? 그럼 죽고 싶다는 사람은 몰라도 살고 싶다는 사람들은 좀 도와줄 수 있는 거죠? 그렇죠?”
“꿈깨라. 너나 나나 9급 나부랭이야. 한참은 올라가야 될 거다.”
열정으로 가득한 신입은 선배 천사의 말에 잠시 기가 죽었지만 승진이 되면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도울 힘이 깃털 하나만큼이라도 늘어날 것이라는 상상을 하며 시금치 된장국을 삼켰다.
짧디 짧은 점심시간이 끝나고 근무지로 돌아온 수민.
자신이 놓고 갔던 카트 앞에 누군가 얼쩡 거리고 있다.
“진구 아저씨, 여기서 뭐 하세요?”
진구는 너무 놀라 구경하던 물건을 놓쳐 하마터면 떨어트릴 뻔했다.
그가 보던 물건은 러블리한 프릴이 가득 박힌 여름용 파자마였다.
“이거 어때? 우리 딸이 좋아할까?”
“아~ 그 취준생이라던 따님요? 저보다 두 살 어리다던?”
“맞아. 아주 골칫거리야.”
“왜요?”
“너~무 예쁘고 착해서 골치지. 이건 어때?”
진구가 이번엔 뽀뽀뽀송해 보이는 베이지색 스웨터를 들어 올렸다.
“예쁘긴 한데 따님한텐 안 보이잖아요... 입지도 못하고요.”
“그래도 곧 가을이잖아. 따뜻한 옷 한 벌 해주고 싶어서. 맨날 이거 저거 사니까 비싼 거 살 돈은 없어서.” 아저씨는 비닐에 쌓인 옷을 정성껏 쓸어보고 어루만졌다.
진구는 국제결혼을 했는데 아내가 딸을 낳자마자 집을 나갔다고 했다. 결혼 중개 업체도 찾아가 보고 와이프의 친정이 있는 나라에도 연락을 해봤지만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모른다고 할 뿐이었다. 진구는 망연자실했지만 쉴 새 없이 울고 있는 갓난아기가 우선이었다. 느즈막에 만나게 된 늦둥이딸. 그 작고 꼼지락 거리는 손발가락, 뒤에서 봐도 볼록 튀어나와있는 볼살, 갓 태어난 아기새처럼 아직 듬성듬성 난 머리칼등 어디 한구석 예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날부터 진구는 엄마보다 더 극성인 아빠가 어떤 건지 보여주겠다며 윤아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딸을 혼자 키워 본 아빠들은 알 것이다. 아무리 그렇게 노력해도 아빠가 도저히 도움을 줄 수 없는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처음으로 가슴에 착용하는 속옷을 사야 했던 날도 대형마트 여성용품 코너에서 죄지은 사람처럼 서성 거리던 날도. 하지만 진구는 최선을 다했다. 안면몰수하고 여자라면 누구에게나 도움을 청했다. 처음엔 변태인가 의심했던 사람들도 사정 이야기를 듣곤 흔쾌히 도와주었다.
그런 그가 윤아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이 오고 말았다. 딱 한 건만 더 배달하고 퇴근하자 하고 받은 주문이었는데. 십만 원 이상 배달하면 삼천 원 추가 배달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싱글벙글했는데. 오늘은 꽤 벌이가 쏠쏠하니 우리 윤아가 좋아하는 치킨을 사다 줄 생각에 행복했는데. 그만 만취 운전자의 역주행에 진구는 그대로 공중으로 날아가버렸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딸을 혼자 둔 채로.
“우리 공주한테 너무 미안해.” 진구가 들고 있던 옷을 내려놨다.
“뭐가요?” 수민이 진구가 내려놓은 옷을 다시 예쁘게 정리했다.
“부모 잘못 만나서 힘들게 살잖아. 나같은 놈이 주제도 모르고 결혼은 해가지고... 거기다 뒤지기나 하고.”
“무슨 말씀이세요. 윤아는 좋겠어요. 밤에 뒤척이지 않고 푹 자게 해주는 잠옷, 따뜻한 온기를 오래 머금는 스웨터를 보내주는 좋은 아빠를 만나서요.”
“정말 그럴까?”
“그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