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일 년에 중턱에 걸쳐진 뜨거운 여름날이었다.
요새 수민이의 기분이 좋아 보이는 날이 거의 없다.
가만있어도 끈적거리는 불쾌지수 때문이기도 했지만, 강민혁 그 자식이 전교에서 제일 예쁘다고 소문난 황진아랑 딱 붙어 앉아 교실의 습도를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삼 개월에 한 번씩 바꾸는 짝꿍 뽑기에서 결국 수민이와 강민혁이 떨어지게 된 것은 다행이었으나 이번에도 나와 짝꿍이 되진 않았다.
운도 더럽게 없는 놈이다 나는.
반장인 정한빛과 짝이 된 수민은 피곤해 보였다. 크게 공부에 흥미를 보이지 않는 수민에게 한 시간 동안 영어 단어를 더 많이 외우는 사람에 소원을 들어주자 같은 공부 내기를 수시로 걸어왔고 결과는 항상 정한빛의 일방적인 압승이었다. 한빛의 소원은 항상 똑같은 것이었다.
“정수민, 이번 일요일날 우리 교회 와라.”
“교회는 왜?”
“달란트 잔치 하거든.”
“싫어. 왜 나야. 다른 애한테 오라고 해.”
“네가 와야 이윤서도, 박혜림도, 고유진도 오지.”
“더 싫어.”
강민혁만큼은 아니지만 정한빛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자꾸 학교 시간 이외에 그것도 주말에 수민이를 교회로 불러내지 못해서 안달이란 말인가. 나도 학교 밖에선 딱 한 번밖에 못 봤는데. 그것도 수민이 머리 하느라 늦어서 정말 영화만 보고 집에 가야 했지만. 아무튼 저 자식은 진짜 순수하게 전도를 하려는 건지. 아님 그건 핑계고 주말에 수민이를 학교 밖에서 보려고 하는 건지. 뭐가 됐든 수민이 옆에 붙어서 계속 집적대는 꼴이 보기 싫다. 하... 내가 수민이랑 짝꿍이 됐어야 했는데.
수민이는 정한빛의 물음에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강민혁을 보고 있다.
그 자식이 다리 깁스 때문에 노트필기를 못한다며 황진아에게 필기를 부탁하고 대신 사과주스랑 딸기우유를 사주는 걸 보고 수민이는 더운지 연신 손부채질을 해대며 교실 밖으로 나갔다.
우리 학교는 남녀 화장실 사이에 공동으로 사용하는 세면대가 있었다. 여러 명이서 한 번에 손을 씻을 수 있게 긴 수돗가처럼 생겼는데 오늘같이 더운 여름날이면 아이들이 물장난을 자주 치는 곳이었다.
수민을 따라 밖으로 나가니 그 애가 수돗가에 물을 한 두 방울 떨어질 정도로 약하게 틀어놓고 손가락 하나를 적시고 있다. 나는 수민이 물장난을 좋아했던 것이 기억나 발소리를 최대한 줄여 세면대로 다가갔다. 가장 가까운 수도꼭지를 틀어 수민에게 살짝 물을 뿌렸다.
수민이 꺅! 하고 비명을 질렀다.
아차 싶었다.
괜히 장난을 친 것이 아닐까 하며 질끈 감은 눈을 떠 그 애를 바라봤다.
이럴 수가.
수민이 나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곧 나에게도 물줄기가 날아왔다.
나도 물을 튀긴다.
수민이 너무 많이 젖을까 최대한 적게.
그냥 몇 방울 정도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