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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소망 Oct 17. 2022

상담은 상시가능, 등록은 상시 불가능

미숙은 아들 택규 때문에 매일 편두통에 시달리느라 잠을 자지 못한다. 10평도 안 되는 월세 방에서 시작해, 공인중개사 일로 남편과 자수성가해서 이제 경제 적인 걱정은 없어졌다.

50평이 넘는 집에, 외제차가 세 대, 뷔똥이, 귀찌 같은 정도의 명품은 어렵지 않게 살 수 있었다.


문제는 하나뿐인 아들놈이었다. “엄마, 요즘 명품 하나 없으면 학교 쪽팔려서 못가, 애들이 X나 무시한단 말이야” 라는 말에 금지옥엽인 외동아들이 친구들에게 무시당할까 하나씩 사주기 시작한 명품이 문제였을까? 택규는 고등학교 삼 년 내내 양아치에 가까운 친구들하고 돈 걱정 없이 술 마시고, 담배피고, 하지 말란 짓은 하고 돌아다녔다.  공부는 해본적도 없기에 대학은 당연히 떨어졌고, 스무 살이 되자마자 도망치듯 군대에 갔다.


그리고 일년 반 뒤 전역을 했지만 돈 잘 버는 부모덕에 하고 싶은 것 하나 없는 한량이 되었다.  남들 다 일 하는 한 낮에 실컷 자고 오후 세네 시쯤 일어나 아침인지 점심인지 저녁인지 알 수 없는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씻고 단장하는데만 두시간, 삐까뻔적한 명품시계를 차고 스포츠 카를 끌고 나간다. 그의 돈냄새를 맡고 달라붙은 친구인지 거머리인지 모르는 놈들과, 강남역이나 홍대 이태원 클럽을 골고루 방문하여 피끓는 청춘들과 밤새 몸의 대화를 나눈뒤, 날이 밝아 미숙이 출근한 오전 7시 이후에나 들어왔다. 그렇게 전역후 일년반을 택규는 매일같이 그렇게 살고있다. 한심한 아들 때문에 머리 끝까지 화가난 미숙의 남편은 몇번이고 규호의 신용카드와 차키를 빼앗았지만 미숙은 안타까운 마음에, 안된다는걸 알면서도 남편몰래 카드와 차키를 쥐어주며 적당히 놀고 들어오라고 했다. 하지만 이미 손에 한도 없는 블랙 신용카드와 똥파리 눈색깔 같은 형광초록색의 슈퍼카를 손에 쥔 택규에게 자제력을 기대하기란 어려웠다.


아들놈 생각만 하면 걱정이 태산이지만, 부동산 일은  태산보다도 높았다. 미숙이 오랜시간 공들였던 매물은 바로 광명슈퍼였다. 오래되고 허름해서 볼품없지만 불과  정거장 앞이 서울인 경기도 초입에 구연역 바로 , 향후 재개발되면 비싼 값에 되팔  있는 자리, 그렇게 팔라고 팔라고 해도 노친네 부부가 워낙 강경해서 말도  꺼냈었다. 특히 주인 할아버지가 가게를 얼마나 애지중지하는지 ‘파세요 ‘자만 나와도 불같이 화를 냈었다. 그런데 작년 갑자기 노친네 두분이 연이어 돌아가셨고, 슈퍼는 하나뿐인 외동딸에게 상속되었다. 딸은 부모님이 워낙 오래 하신 슈퍼라 당장 팔기가 망설여진다며 생각해 보겠다고 했고, 미숙은 그렇게 간간히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1년을 기다려왔다. 마침내 딸은 미숙에게 슈퍼 매매를 요청했고, 보는 눈이 있는 투자들은 너도나도 사겠다고 미숙에게 연락을 해댔다. 일은 순조롭게  풀리는 듯했다.   외손녀가 판을 깨기 전까지는


여보세요? 윤사장님죄송해서 어쩌죠? 아무래도 슈퍼    같아요. 저희 딸이 거기에다 영어학원을 차린다고 해서요죄송합니다.”


오마이갓. 이게 도대체 무슨 호랑말코 같은 시츄에이션인가. 내가 얼마나 공들인 매물인데 하루아침에 취소를 하다니… 그리고 뭐? 거기 다가 뭐를 차려? 학원? 외손녀가 아직 어려서 세상 물정 모르는 것 같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거기다 이렇게 입지도 안 좋은 곳에 학원? 분명 얼마 못가서 쫄딱 망하겠지. 그리고 엉엉 울면서 다시 나한테 팔아 달라고 해도 그때는 흥! 하고 못 본 척하리라. 그렇게 온갖 망상으로 복수를 꿈꾸던 그녀는 곧 광명슈퍼에 대해서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렇게 두 달 뒤, 미숙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을 하러 구연동으로 차를 몰고 가고 있었다.

“네~ 오늘 경남빌라 보러 오시는 분 맞으시죠? 지금 구연역에서 내리셨어요? 그니까 거기서 내리셔서 앞으로 쭉 걸어오시면 네? 뭐가 보여요? 광명슈퍼요? 맞아요! 광명슈퍼 방향으로 쭉 내려오세요. 저도 금방 갈게요.”

미숙은 운전하면서 전화를 할 때면 왠지 모르게 자신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는 걸 느꼈다.

“아휴ㅡ. 목 아파… 광명슈퍼 앞이라고 했으니까… 잠깐만 광명슈퍼?”

미숙은 잊고 있었던 광명슈퍼 모습이 번뜩하고 떠올랐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학원을 한다고 했으면 진작 간판이 바뀔 법도 한데 아직도 슈퍼라니…그 사람들이 나한테 팔기 싫어서 괜히 학원을 한다고 거짓말을 했는지 의심도 들었다. 그녀는 집을 보여주고 돌아가는 길에 슈퍼에 들러 확인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라탄으로 촘촘하게 엮은 은은한 테이블 조명이 아래, 여자 세 명이 6인용 테이블에 앉아 있있다. 유린은 왼쪽 벽면에 걸려있는 과자와 요쿠르트를 잔뜩 꺼내어 테이블에 내려 놓으며 말했다.

“지민이 어머님, 시후 어머님, 그리고…세라 어머님이 좀 늦으시네요. 금방 오실 것 같은데 간식 좀 먹으면서 좀 기다릴까요?” 유린이 말했다.

“아 나 정말 다이어트 해야 하는데…유린 쌤 때문에 살을 못 뺀다니까?” 예빈 엄마가 두둑한 뱃살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자기 아가리어터구나?” 현서 엄마가 말했다.

“아가리어터? 그게 뭔데?”

“아니 그것도 몰라? 쌤도 외국에서 오래 살다 와서 모르죠?” 현서 엄마가 신조어 장인이라도 된 것 마냥 으스댔고 엄마들과 유린은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아가리랑 다이어터에 합성어잖아. 합해서 아.가.리.어.터!  말로만 ‘다이어트 해야지, 살빼야지’ 하면서 실천은 안 하는 사람 말이야. 뭐 요즘엔 꼭 다이어트 아니라도 어떤 일을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안하고 말로만 하는 사람들한테도 쓰더라.”

하하하하하. 현서 엄마가 얄밉게 말하는데도 성격좋은 예빈 엄마는 웃어 넘겼다. 덕분에 유린과 평상시 조용한 서연 엄마도 슬쩍 미소를 보였다.

한 바탕 웃고 난 뒤에 서연 엄마가 새우깡과 홈런볼을 먹기 좋게 중앙으로 밀어 넣으며 말했다.

“저…. 쌤 궁금하게 있는데요…. 내년이면 저희 서연이 유치원 보내야 되는데, 엄마인 제가 영어를 너무 못해서요… 단어도 너무 모르고…단어장 좋은 것 좀 추천해주세요.”

“인터넷 보니까 레커스 단어장이 베스트 셀러던데…그게 정말 좋아요 쌤?” 예빈 엄마도 거들었다. 현서 엄마는 뭐니뭐니 해도 ‘최강보카’라는 단어장이 최고라면서 당장 서점에 가서 사라며 자신 있게 말했다. 한참을 단어장에 대해서 한마디씩 보탠 엄마들은, 유린을 쳐다봤다.

“글쎄요… 영어공부에 목적에 따라서 좋은 단어장은 다 달라요. 우선 서연이는 내년부터 유치원에 가고 예빈이는 초등학교 그리고 현서네 어머님은 아이가 벌써 고등학생이죠? 아이들에 나이는 다 달라도 어머님들의 공통된 목표는 집안에서 간단한 대화를 영어로 하는 것 맞으시죠?”

세 엄마는 격한 긍정에 신호로 고개를 필요이상으로 끄덕였다. 유린은 말을 이어갔다.

“그렇다면 단어장은 세 분께 크게 도움이 안 될 수도 있겠어요. 레커스에서 나온 영어 단어장은 주로 토익 같은 영어 시험에 필요한 단어들이 많아서 ‘업무, 회의, 제안하다, 협업하다’ 같은 사무적인 단어들이 많고 최강보카라는 단어장은 주로 학사나 석,박사 논문에 나오는 단어들로 ‘폭발하다, 통치하다, 경제불황, 정복하다’ 라는 단어들이 많죠. 이런 단어들은 우리가 가정에서 그것도 아이들과 쓰는 말과는 너무 거리가 멀어요.”

“세상에. 전에는 못 느꼈는데 쌤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네요.”

유난스러운 현서네 엄마는 죽이 잘 맞는 예빈이 엄마를 붙잡고 호들갑을 떨었고, 살림뿐만 아니라 노트까지 정리여왕인 서연이 엄마는 메모지에 꼼꼼하게 받아적었다.

“그럼 단어장을 안 사면 뭘로 공부 해요?” 현서 엄마가 큰 목소리로 물었다.

“우선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을 영어로 공부해보세요. 아이들하고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은 아마 주방일 테니 거기부터 시작해보죠. ‘국자, 계란 후라이 할 때 쓰는 뒤집개, 서랍, 선반, 삼겹살 구워 먹을 때 쓰는 집게’ 같은 단어부터 말이예요. 이런 단어들은 어머님들이 평상시에 가장 많이 쓰는 물건인데도 영어로 잘 모르시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이렇게 일상생활과 밀착 되어 있는 단어들을 외워야 아이들에게 “국자 저기 있어!” “엄마 집게 좀 가져다 줄래?” 같은 말들을 영어로 할 수 있게 될 거예요. 저런 말들을 평상시에도 매우 자주 하는 말이고 활용도가 높아서 엄마도 아이들도 만족감이 높아요.”

세 엄마는 무릎을 탁 치며 감탄했다.

“정말 그렇네요. 오늘은 주방, 내일은 거실, 모레는 화장실, 그 담엔 아이방, 안방…정말 공부할 단어 천지네요.” 서연 엄마가 노트에 계속 적어가며 중얼거렸다.

“우리 집은 물건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공부하려면 몇 년은 걸리겠어요! 단어장 살 필요 없었네! 호호호.” 현서 엄마가 말했다.

“서연이 엄마는 워낙 미니멀리스트라 물건이 별로 없어서 공부가 금방 끝나겠어!” 예빈 엄마가 말하자 서연 엄마는 ‘그렇네… 그럼 그 담엔 뭘 공부해야지?’ 라는 얼굴로 유린을 봤다.

“아! 집안에 있는 물건들을 다 외우셨다면 학교나 학원에서 쓰는 단어들을 영어로 외워보세요. ‘시험, 평가, 등급, 준비물, 수업자료’ 같은 말들이죠. 아이들하고 학교나 학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영어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됩니다. 또 어머님들은 주로 마트나 문화센터 쇼핑몰 같은 곳에서 진행하는 행사나 세일 기간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 편이니까 그런 단어들을 외우시면 엄마들끼리 차 한잔 마시면서 수다를 떨 때도 영어 단어를 활용해 볼 수 있을 거예요.”

세 엄마는 박수까지 치며 좋아했다. 그리곤 단체 카톡방을 만들어 내일부터 주방에서 쓰는 단어들을 공유하자고 약속했다.


슈퍼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에 곳에 주차를 해놓고 미숙은 빠른 걸음을 재촉하며 슈퍼로 걸어갔다. 노친네 부부가 슈퍼 입구에 MSG 미원을 속옷 빨래 집게에 덕지덕지 걸어 놓을 치운 것 빼곤 슈퍼의 외관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비어 있던 아이스크림 냉장고는 꽉 차 있고, 뽑기 기계에도 알록달록한 구슬들이 한 가득이었다. 평상도 깨끗이 닦여 있고, 커피 자판기에 불도 빨갛게 들어와있다. 간판도 여전히 ‘광명슈퍼’ 그대로였다. ‘다른 사람이 인수해서 계속 슈퍼를 하나보지? 학원 차린다는 건 다 거짓말이었구나… 여편네… 팔기 싫으면 그냥 팔기 싫다고 하지…’ 미숙은 빈정이 팍 상해버려 입을 삐죽거렸다. 그 순간 미숙에 또래로 보이는 여자 두 명이 슈퍼를 향해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시우 엄마, 그거 뭐였지?”

“으이구, 그새 또 까먹어? 캔 아이 해브!”

“아 맞다, 맞다. 알았는데… 또 까먹었네... 나이는 어쩔 수가 없나봐… 캔 아이 해브, 캔 아이 해브”

아줌마들은 너나 나나 할 것없이 같은 말을 반복하며 정면 한 번, 하늘 한 번을 반복해서 보고 있었다. 여자들은 슈퍼 앞에 있는 미숙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슈퍼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티쳐, 하이! 하왈유!”

미숙은 영어를 잘 하진 못했지만, 티쳐, 하이, 하왈유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라고? 진짜 여기가 영어 학원이라도 된단말이야? 슈퍼가 아니고?”

미숙은 문에 살짝 다가가 염탐이라도 하듯 귀를 기울였다. 안에서 세상 이보다 재밌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듯 깔깔거리며 난리가 났다. 미숙은 안에 상황이 더욱더 궁금해졌다. 도대체 공부를 어떻게 하고 있길래 저렇게 다들 신났는지 궁금해서 참기가 어려웠다. 아니, 어쩌면 나도 좀 들어가서 같이 배우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미숙은 귀를 조금 더 가게 쪽으로 바짝 붙여서 무언가 좀 더 큰소리가 나길 기대했지만 간간이 들리는 웃음소리 말고는 도무지 수업내용은 들리지 않았다.

“영어 배우러 오셨어요?”

“으악!!!!!! 깜짝이야!!!!!!!!!!!!!!” 미숙은 다이어트를 선언하곤, 새벽에 냉장고 뒤져 비빔밥을 양푼에 가득 비벼 먹다 걸린 사람처럼 뒤로 나자빠졌다.

미숙에 뒤에는 한땀한땀 직접 손으로 뜬 것 같은 모자와 손가방을 든 혜정이 서 있었다. 품이 넉넉하고 통풍이 잘되는 소재에 단정한 원피스와 가지런히 빗어 하나로 묶은 머리 모양이 그녀의 뜨개질 솜씨만큼 차분하고 단아해 보였다.

“놀라셨어요? 죄송해요, 전 그냥 학원 입구에 서 계시길래…”

“학원이요? 여기가 정말 영어 학원이라고요?”

“네. 신기하죠? 밖에만 보면 영락없는 동네 슈퍼지만요.”

“진짜 이 집 외손녀가 하는 거래요?”

“맞아요, 유린쌤이라고 호주에서 유학했고 강남 유명한 어학원에서도 일하셨대요.”

미숙은 적어도 이 집 딸이 자기한테 거짓말을 한 건 아니라는 생각에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그제서야 천천히 슈퍼를 다시 둘러보는데 아이스크림 냉장고, 커피 자판기, 미닫이 문에 각각 작은 안내문이 붙어 있는 게 아닌가?

미숙은 이상한 말이 쓰여 있는 안내문을 가리키며 유정에게 물었다.

“아니 근데 이게 다 무슨 말이예요?”

“아, 그거요? 하하. 선생님이 워낙 특이하신 분이라서요. 영어로 “아이스크림 주세요” 즉 ‘캔 아이 해브 아이스크림?’ 라고 얘기하면 아무 한테나 무료로 주세요. 지나가는 동네 꼬마들도 이 근처 사는 동네주민들도 가끔씩 와서 영어로 물어보고 가져 가시거든요.”

“네? 돈도 안 받고요? 저 커피도요? 아니 그럼 이건 또 무슨 소리예요?” 미숙이 학원 문에 붙은 안내문을 읽으며 물었다.


‘상담은 상시 가능, 등록은 상시 불가능’

 

“누구든 영어 공부를 하다 고민이 생기면 무료로 상담을 해 주신다고요. 하지만 수업을 아무나 다 받아주진 않는 거 같았어요. 상담 후에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돈을 받고 수업을 하시는 거 같아요.”

“별 이상한 학원을 다 보겠네… 선생이 강남에서 돈 잔뜩 벌어서 배가 불렀구만…그래서 그 쪽이랑 저 안에 저 여자들은 다 얼마씩 내고 다니는데요?”

“저희요? 저흰 돈 안내는데요?”

“네? 돈을 안내다뇨? 수업듣는데 돈을 안내요?”

“네, 애 엄마들이니까 자식이랑 남편한테 쓰는 돈 말고는 본인한테 거의 돈을 못 쓰잖아요. 그렇다고 저희가 영어를 뭐 전문적으로 배울 필요까지 없기도 하고요.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씩 선생님이 재능기부 차원에서 무료로 영어공부 시켜주세요. 아이스크림은 기본이고요. 슈퍼 안에 과자랑 요쿠르트도 무한정 내어 주시고 매번 얼마나 죄송한지…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또 선생님이 얼마나 잘 가르쳐 주시는지 너무 재밌어서 저는 맨날 이 날만 기다려요. 아무튼 저는 벌써 10분이나 수업에 늦어서 이만 들어 가야겠어요. 수업 받고 싶으시면 선생님하고 상담 먼저 해보세요. 그럼 이만.”

혜정은 행여 수업에 방해될까 조용히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녀가 열고 들어간 문 틈 사이로 슬쩍 보이는 내부에는, 테이블에 둘러 앉은 아줌마들과 상석에 앉아있는 젊은 여자가 보였다. 미숙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마도 저 여자가 그 영어선생이라는 여자겠지? 그 노친네들 외손녀고?’ 유린은 환하게 웃으며 유정에게 인사 한 뒤, 미숙과 눈이 마주쳤다. 미숙은 유린이 자신을 쳐다보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지만,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목례를 했다. 미숙은 허겁지겁 미닫이 문을 밀어 닫고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방금 본 학원에 적지 않게 충격을 먹은 듯했다. 미숙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뒤늦게 부동산사업으로 졸부가 된 케이스라, 저 영어 선생이란 여자의 자선사업가 같은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으이구,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강남에 으리으리하게 학원을 차려도 모자랄 나이에, 후진 동네에 틀어박혀서 동네방네 다 퍼 주고 앉아있네. 한심하긴…’ 미숙은 혀를 쯧쯧 차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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