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궂은 망각이여
오늘 치료의 목표는 이중모음을 정확히 발음하는 거다.
도로를 준비하고 자동차를 출발선에 올려 놓았다.
출발점은 '오', 도착점은 '애'다.
오---------애
오------애
오---애
오-애
오애
왜!
역시 자동차 덕택인가. 아이가 적극적으로 연습하고 이중모음을 잘 따라 해서 다행이라 여겼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이중모음을 못해서 열심히 연습해 놓았더니 갑자기 단모음을 이상하게 발음한다.
"돼쥐"
'돼지'의 첫 음절인 '돼'가 이중모음이라, '지'까지 이중모음으로 동화되는 거라 생각했다.
그래, 아직 그럴 수 있지. 이제 막 배웠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다독였다. 그런데 진짜는 지금부터였다.
"봐쥐" (바지)
"픠좌" (피자)
.
.
.
바지는 잘 했었잖아...
아뿔싸. 이중모음을 하도 연습해서 그런지 단모음까지 전부 이중모음화 하는 것이었다.
누군가 학습도 복리의 법칙을 따른다고 했다. 그런데 초반에는 아무래도 그 법칙이 도통 적용되지 않는 듯하다. 쌓여야 할 지식의 양에도 넘어야 할 선이 있는 모양이다.
'하나를 알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다.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아이들에게는 하나를 알려 주면 둘을 까먹는다. 그나마 하나씩이라도 부지런히 알려줘야지 시간 지나면 다 말짱 도루묵이다.
물론 나도 도저히 안 배워지던 게 있었다. 대학생 때 알바를 하던 카페에서 음료 레시피가 그렇게 안 외워졌다. 학교 시험 공부를 할 때는 몇십 페이지도 달달 외웠던 것 같은데, 음료 레시피가 적힌 A4 두 장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웠다. 주문이 좀 자주 들어오는 음료를 겨우 하나 외웠다 싶으면 다른 걸 까먹었다.
카페 알바를 몇 달을 했는데, 끝까지 안 외워지는 탓에 주문이 들어올 때면 종이를 보고 만들었고 알바를 그만두자 그날로 머릿 속에서 말끔히 잊혀졌다. 프렌차이즈 카페의 음료 레시피를 잘만 배워 놨다면 집에서도 얼마나 맛있는 음료를 만들어 먹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나마 망각의 영향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다.
바로 최대한 다양한 방식으로 학습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걸 이렇게 배우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경험상 가장 확실한 배움의 절차는 '이해하고, 표현하고, 해보는 것'이다.
우선 배울 것에 대해 설명을 듣거나 읽는다.
다음엔 그것을 내가 직접 말로 설명해보거나 글로 써본다.
할 수 있다면 직접 경험해본다.
그리고 경험을 기록으로 남겨서 재확인한다.
내가 학창시절 열심히 공부하던 시기에 했던 방식이다. 물론 주로 벼락치기를 해서 써먹을 일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저렇게 배울 수만 있다면 확실히 더 기억에 잘 남았다.
지금은 이것을 언어치료에서도 적용한다. 다양한 학습의 경험이 모두 관련 정보로 저장되어서 나중에 지식을 꺼내 써야 할 때에 기억의 인출을 위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우리 지난 번에 공원에 가서 뭐 했지?"
"공원에서 이거 주웠잖아!"
"가을에 볼 수 있는 거."
"빨간색, 노란색, 주황색 나뭇잎."
"낙, 낙, 낙 자로 시작하는 말~"
이렇게 단계적으로 힌트를 제시하면 대부분은 기억해낸다.
그리고 하나 더 좋은 방법이 있다. 오감을 활용해서 기억하는 것이다.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과 같은 다양한 감각으로 학습을 도울 수 있다. 정형화된 학습지나 그림 카드만으로 배우는 것은 기억하기에 효과가 좋지 않고 일반화도 어렵다.
또 아이들마다 상대적으로 발달한 지능이 있다. 강점이 있는 지능을 활용하는 편이 더 도움이 된다. 어떤 아이는 노래로 만들어서 듣고 부르는 게 좋고, 어떤 아이는 직접 만지고 만들어보는 게 효과적이다. 어떤 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활동에서 친구들을 보고 훨씬 잘 배운다. 아이별로 더 발달된 감각과 지능을 골라서 학습하게 하면 효과가 눈에 띄게 좋아진다.
결국 얄궂은 망각에 대비하는 비책은 뇌의 최대한 여러 곳에 저장하는 것이다. '이 중에 하나는 남겠지' 하며 말이다.
카페 알바에서 음료 레시피는 어떻게 기억하면 좋았을까. 음료 만드는 절차를 글로 외울 게 아니라 전부 직접 만들어 보고 내가 '먹어 보았으면' 분명 기억할 수 있었을 거라고 우기고 싶다.
'바지'를 '봐쥐'로 발음하던 친구는 결국에 이중모음을 떼는 데 성공했다. 아주 귀엽게도 자기가 잘 발음해 놓고도 본인이 놀라서 "오..."라고 스스로 감격스러워 했다.
"바지" 딩동댕!
"돼지" 딩동댕!
"오...나 왜 이렇게 잘 하지!"
사실 예견된 일이었다. 처음엔 어려워도, 결국은 배울 수 있다.
처음 언어치료실에 왔을 때 한 마디도 못하던 아이가 시간이 지나면 재잘재잘 수다쟁이가 되어 잠시도 쉬지 않고 말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 초반엔 "우리 애 말할 수 있을까요? 언제쯤이면 할까요?"하며 불안해 하시던 부모님들은 어느새 "말이 너무 많아요. 질문도 너무 많아요. 다 대답해줘야 할까요?"라고 진 빠져 하시기도 한다.
처음엔 누구나 하나를 배우고 둘을 까먹는다. 그래서 무언가 배우려면 까먹을 수 없을 때까지 계속 반복해야 한다.
때로는 양으로 승부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더라도 이 중에 하나라도 남는 게 있겠지 하는 심정으로 때려 넣는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잃어버리는 지식보다 남기는 지식을 늘려가며 배움을 이어간다.
그러다 보면 언제인지 모르게 하나를 배우게 된다. 열심히 달리다가 뒤돌아보면 '어느새 이만큼 왔구나' 싶은 게 배움의 묘미인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묘미는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다는 점이다. 아무리 해도 모르는 게 남아 있다. 그렇게 했는데도 배워야 할 게 또 생긴다. 정말이지 배움은 평생이다.
평생에 걸친 꾸준함과 인내심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배움이란 '구도의 길'이라 할 만 하다.
도를 닦는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더딘 배움의 길을 걷고 있는 모든 이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말을 배워가는 아이처럼
하나를 배우고 둘을 까먹다가,
어느 날 하나를 배우고 둘을 기억해서는
몰라 보게 발전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그날이 오면
한 번 말해보면 좋겠다.
"오... 나 왜 이렇게 잘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