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
새 학기가 밝았다. 언어치료에 오는 아이들도 새 학년이 되어 새로운 교실에서 학교생활을 시작할 것이다.
새 학기에는 피할 수 없는 관문이 있다. 바로 자기소개다. 학기 초반에 잘 적응하고 친구와 대화도 틀 수 있게 자기소개를 연습하기로 했다.
자기 이름을 또박또박 써넣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잘하는 것과 어려운 것 등을 말해보았다. 자기소개서에 차근차근 잘 대답해나가던 아이가 막힌 건 다음 질문에서다.
나의 꿈은 무엇인가요?
"준이는 꿈이 뭐야?
"제 꿈은 하늘에서 음식이 떨어지는 꿈이에요."
"하늘에서 음식이 떨어졌으면 좋겠어?"
"아니, 엄마랑 동생이랑 길을 가는데 음식이 떨어진 거에요."
잠을 자면서 꾸는 꿈을 생각한 게 분명했다. 아이에게 꿈의 다른 뜻을 설명해주었다.
"밤에 자면서 꾸는 꿈 말고, 다른 꿈이 또 있어.
꿈이 뭐냐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말하는 거야.
선생님도 꿈이 있어.
선생님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어."
무심코 말해놓고 머쓱했다. 나이 서른이 넘어 장래희망을 말하다니. 그것도 초등학생 앞에서. 누가 들었으면 어떡하지 부끄러움이 스치려는 찰나, 아이가 세상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선생님, 작가가 하고 싶으세요?
그럼 작가를 하세요!"
얼떨결에 꿈을 이루라는 명령을 듣고 순간 흠칫했다. 너무나도 간단명료하지만, 누구도 해준 적이 없었고, 나조차도 할 용기가 없었던 말이었다. 작가란 꿈에 퍽이나 진심이었던 모양인지 속수무책 뭉클해진 마음에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내 속도 모르고 아이는 해맑게 말을 이었다.
"대신 저한테 수업을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세요.
제가 수업을 할게요.
제가 선생님 하고, 선생님은 작가를 해요!"
순수한 아이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선생님을 위해 수업을 대신 해주겠다는 마음이 고마웠고, 아이가 워낙에 퀴즈 내는 것을 좋아한다는 걸 알기에 더욱 사랑스러웠다.
'그래, 너는 네가 하고 싶은 수업을 하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글쓰기를 한다면 둘 다 좋겠구나.'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알아차렸다. 그게 정답이라는 것을. 각자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모두가 행복한 길이다.
나는 언어치료사다. 아동 발달센터에서 언어발달 지연이 있는 아이들이 언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한다. 내 직업을 소개하면 보통 이렇게 말한다.
"의미 있는 일을 하시네요!"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네, 보람 있고 재미 있어요!"
실로 보람 있고 재미있는 일이다. 나날이 말이 늘어가는 아이들을 보면 정말이지 뿌듯하고, 나를 믿고 아이를 맡겨 주신 학부모님들의 감사 인사에 사명감과 자부심을 느끼곤 한다. 매일 아이들과 웃으며 즐겁게 일할 수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그러나 내게도 남몰래 간직해온 꿈이 하나 있다.
꿈이란 것은 본질적으로 결핍을 나타낸다. 이미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일들을 꿈이라 하지는 않는다. 꿈이란 지금은 갖지 못하였으나 미래에 갖고 싶은 어떤 것이다. 언어치료사인 나의 꿈은 작가가 되어 글을 쓰는 일이다.
나의 학창시절 꿈은 방송 PD였다. 비록 참담한 소식이 난무한 현실이라도, 희망적이고 이상적인 세상을 보여주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그 꿈을 위해 대학에서 사회학, 신문방송학을 복수 전공했다. 하지만 전공생 때 링거를 맞아가며 밤을 새우면서 이 삶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판단했다. 그래서 포기했다.
애석하게도 어릴 적 꿈을 포기하고 선택한 직업에서 나의 자아가 충족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에는 퍽 당혹스러웠다. 언어치료사로 일하는 것은 내게 보람과 기쁨을 주었지만, 아직 말을 잘 못하는 어린아이와 좁은 치료실 안에서의 하루하루는 영혼의 자유를 주지는 못했다.
나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언어치료사로서의 일상은 순탄했으나, 어쩐지 해야 할 숙제를 미뤄둔 것처럼 마음이 온전히 편한 날이 없었다. 나의 꿈은 불 붙이지 않아도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한 번도 타오른 적은 없지만 내내 잔향을 풍겼다.
그래서 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나만의 기록으로 차곡차곡 쌓아왔다. 언젠가부터 새로운 꿈이 자라났다. 나는 글을 써서 메시지를 전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졌다.
그러나 내겐 이미 택한 길이 있었다. 언어치료사로서의 삶을 포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수고로웠던 대학원 생활, 아직도 남은 학자금 대출, 공들여 쌓은 지식과 노하우들, 이 모든 것을 수포로 돌릴 수는 없었다. 해맑게 웃어주는 정든 아이들을 뒤로 하고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할 자신도 없었고, 지금의 행복을 잃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하게 언어치료 중에 아이가 내게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말해준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는지 지혜를 알려주었다. 신통하게도 아이는 '레버리지'를 하라고 일러주었다. 레버리지란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는 일은 위임하고, 반드시 내가 해야만 하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개념이다. 즉 아이는 다른 사람에게 일을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주고, 나는 가서 내 할 일을 하라고 한 것이다.
퇴근 후 아이의 말을 곱씹어 보며 생각했다. 언어치료는 다른 치료사들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언어치료를 하면서 내가 깨달은 바는 나만이 전해줄 수 있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가 치료를 하면서 깨달음을 얻었던 순간, 감동을 받았던 순간을 글로 써보기로 말이다.
언어치료사로서 아이들에게 언어를 가르치지만, 반대로 아이들을 통해 인생의 가르침을 얻기도 한다. 어린아이의 말과 생각을 관찰하는 언어치료사의 시선으로 아이들이 가르쳐준 지혜를 공유하고 싶다. 내게 도움이 되었듯 다른 누군가에게도 위안이 되길 바라며.
"내 꿈은 우주비행사가 되는 거에요!"
"그래, 우주비행사를 하자!"
아이는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우주선을 타는 것이 멋지다고 말했다. 자기소개 연습이 끝나고 아이에게 우주선 장난감을 꺼내주었다.
오늘 아이는 자기소개를 연습했지만, 아마 학교에 가면 연습했던 것의 절반도 말하지 못할 테다. 그렇지만 낯선 친구들 앞에서 자기 이름만 자신 있게 소개해도 잘 한 거다. 처음이니까.
나 또한 서툴 것이다. 아마 전하고 싶은 이야기의 절반도 채 전하지 못할지 모른다. 하지만 전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위로를 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글을 쓴다. 언어치료사인 내가 작가가 되는 것은 우주비행사가 되는 꿈만큼이나 어려워 보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꿈이란 본래 확률이 아닌 희망이 아니던가.
내 인생에도 새 학기가 밝았다. 자신의 꿈은 우주비행사라고 당당하게 밝히는 아이의 마음을 본받아, 조금 어색하더라도 용기 내어 이렇게 자기소개를 해보고 싶다.
"안녕하세요.
현직 언어치료사이자,
장래 작가지망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