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성공과 새로운 도전
"왜 그래, 조심해! 무너질 것 같애!"
아이는 이미 손을 허공에 높이 들어올렸다. 방금 전까지 열심히 쌓은 탑을 제 손으로 무너뜨리려는 찰나였다. 오랜 시간에 걸쳐 겨우 쌓아올린 탑인데. 나는 급히 아이를 말려보려 했다.
"열심히 만들어 놓고 왜 그래. 잠깐만, 잠까..."
와르르 와르르 꽝.
공들여 쌓은 탑은 한 순간에 사라졌다.
"아......"
탄식하는 나와 달리 아이는 꺄르르 신나게 웃고 있었다.
"또 만들어요! 또 해요! 또 해요!"
아이들은 실컷 해놓고는 다 만들어 놓은 걸 꼭 부순다. 열심히 만들어 놓고 부순다. 완성하려고 만든 건지 부수려고 만든 건지 모를 지경이다.
"이든아, 왜 무너뜨렸어? 아깝지 않아?"
아이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탑 쌓기에 집중했다. 사실 왜 망가뜨렸냐는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는 게 당연했다. 애초에 별 이유 없이 그냥 그러고 싶어서, 그게 재미있어서 한 걸테니 말이다.
아이들에게는 부수고 무너뜨리는 것 자체가 재미다. 열심히 만드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지만, 완성한 결과물을 허무는 것 또한 하나의 재미인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행위가 대체로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들고 부수고 만들고 부수는 것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과정에서는 부수는 것 또한 다음에 만들 차례를 위한 의미 있는 과업이 된다.
공들여 만든 것을 허무는 일은 새로 쌓기 위함이다. 바꾸어 말하면, 새로운 것을 해내기 위해서는 이전 것을 버리고 잃는 과정이 필요하다.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일의 진가를 파악하려면, 완성된 탑만 보아서는 아니 되고 전체적인 과정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언제부턴가 나는 과정보다 결과를 보는 어른의 시각을 갖게 되었다. 어른의 시선은 내게 아이의 시선으로 보는 법을 잊어버리게 했다.
우리는 삶이라는 공간에 매일 자신만의 탑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며 살아간다. 눈 앞의 탑은 지금까지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의 집합체다. 그런 점에서 나이를 먹을 수록 새로운 도전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탑을 쌓는 심정으로 해온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까봐 두려워서다. 만약 그리 된다면 여태까지의 인생이 송두리째 날아간 듯 허망할 것이다. 뭔가를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실컷 힘들게 정상에 올려놓으면 또 굴러떨어지는 시지프스의 돌 같은 형벌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공든 탑을 무너뜨리며 신나 하던 아이의 모습은 내게 잊고 있던 사실을 상기시켰다. 인생은 벌 받는 형벌장이 아니다. 세상은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로 심판받는 시험대가 아니다. 그저 내가 그렇게 보았을 뿐이다.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세상은 해볼 수 있는 것들이 무한하고, 해보는 것 자체가 즐거움으로 가득한 놀이터다.
세상은 내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다른 모습이 된다. 시지프스의 관점에서는 모든 언덕이 형벌장이지만, 아이의 시선에서는 언덕도 썰매를 타러 올라가는 놀이동산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일상적인 노동도 생계나 경력을 위한 고역이 아니라, 즐거움을 위해 기꺼이 해내는 과정이자, 하면 할수록 재밌는 놀이와도 같다.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은 과거의 상실과 절망이 아니라 다른 탑을 쌓기 위한 기대이자 설렘이다. 낡은 성공을 끝내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사실을 왜 잊고 살았을까. 아이의 방식대로 쌓아올리고 무너뜨리는 놀이를 함께 해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아이처럼 내 인생의 과업을 즐겨보기로 결심했다.
탑을 다시 쌓은 뒤 아이와 눈이 마주치자 말했다.
"셋 세면 같이 무너뜨리는 거야. 하나, 둘, 셋!"
언젠가 내게도 쌓고 허무는 놀이를 하던 때가 있었다. 비록 오늘의 나는 무너지는 탑을 보며 탄식하는 어른이었지만, 내 안 어딘가에는 그 과정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이 여전히 살아 있다. 그 마음을 되찾는 방법은 목표만 보지 말고 여정을 즐기는 것이다. 결과만 보지 않고 과정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다독인다. 공든 탑이 무너져도 괜찮다. 흔적도 없어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지 모르지만, 내가 아주 멋진 탑을 쌓았었음을 나만큼은 알고 있으니까.
내가 이루어 낸 또는 이루어 갈 성과에만 주목하는 시선을 걷어보려 한다. 오랫 동안 눈 감고 살았지만, 삶의 모든 과정에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눈을 다시금 떠보려 한다. 그리고 사뭇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다. 한때는 알았으나, 지금은 잊혀진 것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