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파도가 전한 바다의 목소리
추운 기운이 가시지 않은 속초. 회색빛 하늘에서 이따금 빗방울이 떨어졌습니다. 오랜 만에 찾은 동해는 잔뜩 찌푸린 채 절 맞았습니다. 맑은 하늘과 푸른 바다를 떠올린 기대와 달리, 우울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풍겼습니다. 올해 첫 바다와 만남인데…, 좀 아쉽더군요. 맑은 날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쉴새없이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면 한참 서 있었습니다. 잿빛에서 시작된 파도는 파란 빛깔로 일렁이다가 해변을 만나 하얗게 부서지더군요. 바위가 부서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성난 파도 앞에 주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크고 무거운 파도 앞에 온몸이 움츠러들더군요. 바다가 마치 "내게 다가오지마!"라고 외치는 것 같았죠.
시간이 흐르자 바다의 진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오랜 만이야. 잘 지냈어?!" 파도는 바다의 성난 목소리가 아니라 절 반기는 격한 인사였죠. 모래사장으로 스며드는 파도가 친근하게 느껴지더군요. 그렇게 또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며 바다와 만난 추억들을 떠올렸습니다. 날씨가 어떻든 바다는 언제나 절 반기는 친구였죠. 지금 어디에 있든 한 번 떠올려 봐요. 당신과 바다가 함께 쌓은 추억에 담긴 이야기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