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치가 날고, 고래와 바다조개가 올라오던 옛날의 한강과 서울 이야기
우리 아버지는 1948년생 서울토박이로 예전의 서울과 한강 모습을 잘 기억하고 계신다. 1950년대 ~ 60년대의 서울 이야기를 듣다보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살아오신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아마도 급속한 경제화 속에서 한강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해왔나보다. 아버지의 생생한 증언으로 옛날의 한강 이야기를 들어볼까. (이하 하단은 가족 간 실제 호칭인 ‘아빠’로 통일)
나는 요즘 한창 관심사인 환경에 대한 동시를 쓰고 있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 여기저기 소감을 듣고 있는데, 역시나 가장 편한 것은 가족이다보니 부모님께도 동시를 읽어보고 소감을 말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한창 엄마와 대화를 하고 있는데 아빠가 갑자기 방문을 열고 들어와 말씀하셨다.
"환경에 대한 시라면 예전 한강 이야기도 좀 넣지 그러니?"
"한강? 예전의 한강은 어땠어요?"
그렇게 문을 열게 된 대한민국 서울의 자연과 한강 이야기,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진솔하고 흥미진진했다.
"한강이 예전에는 날치가 날고, 모래를 발로 조금만 들춰도 하얀 조개가 나오곤 했다. 나 어릴 때 한강 물을 길어다주는 물장수도 있었어. 바다에서 고래가 올라오기도 했지. 한 번은 신문에 고래가 제1한강교에 걸려서 죽은 게 나오고 그랬다. 그때 참 많이 가난하고 배고팠던 시절이지만, 환경 자체는 굉장히 깨끗하고 좋았어. 한강 모래사장에서 해수욕하는 사람도 많고, 한강에서 빨래하는 사람들도 많았지. 시냇가도 참 아름답고 붕어가 노닐고 그런 게 많았다. 한강에 그렇게 아름다운 것들이 있었지."
아빠는 아련한 옛날을 그리듯이 이야기하셨다. 어린 시절 그렇게 하루에 한 끼도 못 먹고 굶은 날이 많았다며 고생담을 한가득 풀어놓으셨던 날이 부지기수였지만, 오직 환경에 대해서만은 아름다운 자연을 한껏 누리던 경험을 갖고 계셨달까.
"서울에 있는 골짜기마다 남자들끼리, 여자들끼리 모여서 목욕도 하고 해수욕도 하고 그랬지. 그렇게 맑았다. 물고기들이 있고, 조개도 있고, 옛날에 그렇게 아름다웠지."
"참, 봉천동 산에는 설탕만 타면 사이다 같은 탄산수가 나오는 샘물도 있었다. 봉천동이 어디냐고? 사당동 부근에 있어. 그래서 사람들이 물 길으러 엄청 많이 왔었다. 시냇물도 흐르고 그렇게 아름다웠어. 서울 변두리는 참 자연이 맑고 아름다웠어. 한강에서 조개 잡아다가 국 끓여먹고 그랬지. 모래사장이 그렇게 깨끗했다. 언제냐고? 가만있자, 내가 어릴 때니까 1950년대 후반~60년대 이야기야."
한창 재미있게 듣던 중 한 가지가 궁금해졌다. 가만, 한강에 날치가 날아? 날치가 어떤 물고기더라? 바로 스마트폰을 열어 사진을 찾아보았다. 아니, 이렇게 신선하고 멋진 물고기가 있다니! 마치 지느러미가 양 날개처럼 우아하게 뻗어있는 모습이 정말 바다 위를 나는 것 같았다.
▲ 바다를 나는 날치(Flying fish) © 핀터레스트
"오호, 한강에 날치가 날아? 아빠, 한강에 그런 물고기도 있었어요?"
"어릴 때 한강에서 나는 날치를 봤지. 환상적이라고 생각했어. 눈앞에서 물고기가 날아가는 것을 보니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영화처럼 이상한 나라에 온 것 같았다. 날치가 수십 마리씩 떼를 지어 날아다녔어."
"한강에 그런 물고기가 살았다니, 아니, 물고기에 날개가 달려있다니 정말 신기해요."
"한강에서 여름에는 해수욕이 열려. 그러면 헤엄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아. 사람 없을 때 아침 일찍이나 저녁에 물가로 가면 물고기들이 있거든. 그쪽에 지나다보면 종종 날치가 물 위를 나는데 신비한 풍경이 벌어져. 한 번은 한강에서 수영을 하고 올라오는데, 날치떼가 내 옆으로 지나가더라고. 이상하다, 신기하다 했어. 진짜 엄청나게 신기했지."
"와, 사진 보니까 날개 같은 지느러미도 반짝거리고, 물빛도 반짝거리고 예뻤을 것 같아요."
"그랬지. 그런 날치가 한두 마리도 아니고 떼로 다녀. 그리고 그때는 내가 어릴 때라서, 물속에 들어가잖아. 그럼 물이 맑으니까 모래가 쫙 보이거든. 그럼 큰 대합들이 죽 널려져 있어. 모래 위로 한두 개씩 하얀 대합들이 띄엄띄엄 있었어. 그럼 그걸 건져다가 불에다 구워먹으면 참 맛있었지. 우리 또래 친구들이랑 가끔씩 구워먹었어. 갓 물에서 잡아올린거니까 진짜 맛있었다. 어릴 때 즐거웠지. 여름에는 되게 상쾌하고 좋았어. 그러니까 한강에 자주 갔지."
"나도 한강 근처에 있는데 요즘 못 가네. 언제 날 풀리면 가봐야겠어요."
"요새는 옛날이랑 많이 다르잖아. 옛날에는 하류 쪽에 댐이 없었거든. 여름에는 바다에 사는 조개들이 한강까지 올라왔어. 올라온 바닷조개들이 한강에도 서식하고 그랬어. 아까 말했지만 고래가 올라오기도 했지. 어릴 때니까 모든 게 신기하잖아. 한강에 친구들이랑도 가고, 나 혼자 가기도 했어. 아참, 아빠 어릴 때 석빙고도 가봤어."
"석빙고? 옛날에 얼음저장고였다고 하는 곳이요?"
"응, 석빙고. 옛날에 친한 친구 녀석이 있었는데, 친구 아버지가 석빙고에서 일하셨어. 한겨울에 1월달쯤 톱들을 가지고 한강에 가서 얼음을 잘라. 한강 얼음이 상당히 두껍고 크다. 한강변에 석빙고가 있었는데 한강 얼음을 잘라다가 석빙고에 쌓아놔. 석빙고에 얼음이랑 겨를 켜켜이 같이 쌓아서 저장해놨다가, 여름에 그걸 빙수 가게에 팔거든."
"와, 냉면과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민족답네요. 그땐 주로 빙수로 먹었구나."
"응, 석빙고 들어가면 아저씨들이 켜켜이 얼음을 쌓아두고 일을 하는데, 그 안이 상당히 추워. 친구 아버지가 거기서 일하셨거든. 친구가 가보자고 그래서 가봤었어. 겨울에 한강에서 얼음을 잘라서 쌓아놨다가, 여름에 파는 거야. 한강에 석빙고가 여러 군데 있었어. 나 초등학교 다닐 때야. 요샛말로 하면 초등학교지, 예전에는 국민학교였으니까. 국민학교 3학년 때인가 그랬지. 그땐 노상 한강에서 살았다. 나 어릴 때니까 19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초반 정도야."
"아직도 석빙고 흔적은 남아있더라고요. 언덕 같은 곳에 동굴처럼 있잖아요. 아빠, 다른 이야기도 해주세요."
"응, 또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 신길동에는 논들이 많았어. 겨울에는 친구들이랑 미꾸라지 잡으러 가는 거야. 미꾸라지하고 붕어들이 논에 살아. 논에 가면 논물을 가두는 곳이 있어. 그러면 먼저 거기를 진흙 같은 걸로 막아. 그리고 물을 푸면 붕어가 많지. 그럼 붕어를 좋아해서 가져가는 친구들이 있어. 나는 그럼 그걸 다 친구들한테 줬어."
"1950년대, 60년대면 한창 우리나라가 가난했을 때라 겨울에 배고프잖아요. 붕어 가져가면 요리해 먹을 수 있으니까 좋았을 텐데. 아빠는 옛날에도 추어탕이나 비린 생선 안 드셨구나."
"응, 나는 그런 거 잘 안 먹거든. 그래도 겨울에는 먹을 게 부족하니까 친구들이랑 미꾸라지랑 붕어 잡으러 다니고 그랬지. 삽으로 논을 파면 논바닥 흙 속에 미꾸라지들이 막 나와. 그럼 그걸 잡아서 또 친구들에게 다 나눠줬어. 친구들은 가져가서 추어탕 끓여먹고 그랬지."
"하하, 아빤 안 먹고, 아빠 친구들 계 탔네! 담에 또 재밌는 이야기 해주세요."
아빠의 어린 시절 대한민국이 어려웠던 이야기를 주로 듣다가, 옛날 서울의 자연과 한강 이야기를 들으니 새롭고 신선했다. 비교적 늦둥이에 속하는 나는 이런 오래된 옛 시절 이야기가 익숙하지만, 요즘 태어나는 아이들은 잘 모르는 듯 하다. 나중에 누군가 옛 서울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면 아빠의 이야기를 들려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