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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심산책자 Nov 19. 2022

설렘을 주는 공간, 지베르니

지베르니를 추억하며

지베르니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명당자리가 있다. 그곳에 앉으면 화가 모네가 직접 가꾼 연못의 전경이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이유는 그곳 벤치에 앉아보면 바로 알 수 있다.


파아란 하늘에 잔잔한 구름이 흘러간다. 연못을 휘감아 능수버들이 바람결에 살랑살랑 춤을 춘다. 하늘, 구름, 능수버들이 연못 위에 비친 모습은  다른 장관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그곳 벤치는  틈이 없다. 나도 살짝 비껴 서서 한동안 차례를 기다렸으니까.


생각해보니 지베르니와 나의 인연은 역사가 깊다. 모네와의 인연이라고 해야 하나. 대학 때 ‘미술의 세계’라는 교양을 들었다. 딱히 그림을 좋아했던 건 아니었는데, 왜 그 수업을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수업을 계기로 ‘인상주의’와 모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모네의 생가를 보러 가야겠다거나 한 건 아니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대학을 졸업하고도 몇 년이 지난 후 친구를 만나러 LA 여행을 가게 됐다. 여행지에 가면 정원 구경이 필수 코스인데, 그곳에서 ‘게티센터’라는 정원을 방문하게 됐다. 그리고 다시 모네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됐다.


그곳에서 만난 정원 해설사(정원 해설사가 따로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로부터 정원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풍경에 취해 해설사의 말을 건성으로 듣고 있는데, ‘모네’와‘지베르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순간 귀가 쫑긋했다. 그 순간 다음번 여행지는 ‘지베르니’라고 결정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 후 지베르니에 도착했다.


그날의 햇살.

그날의 초록.

그날의 reflection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베르니의 연못 전경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던 벤치에 앉자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왔다.

“아! 행복해”

살면서 ‘행복’이란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은 적이 있었나! 스스로도 놀랐다.


여행지에 가면 떠나오기도 전에 그리워지는 곳이 있는데, 내겐 지베르가 그랬다. 여름의 지베르니를 봤으니 봄의 지베르니, 가을의 지베르니, 겨울의 지베르니가 궁금해진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세 번은 더 이곳에 와야 하지 않겠나!


나는 왜 그토록 설렜을까?

왜 나도 모르게 행복하다는 말이 나왔을까?

살면서 오래도록 마음에 품은 것들은 시간이 켜켜이 쌓이면서 그 크기도 함께 자란다. 그러니 지나간 세월만큼 그 감흥의 강도가 함께 커졌던 것일 테지.


우리 삶에는 아주 작은 우연들이 만나 그것을 필연으로 만드는 순간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마치 이런 느낌과 같다.

‘나는 이곳에 올 수밖에 없었어.’

‘그건 오래전부터 그렇게 결정되어 있던 일이야.’


그곳에 가기까지 10년이란 세월이 필요했고,

당장 쉼이 필요하다는 자각이 필요했으며,

수업에서 만난 모네, 게티센터에서 만난 해설사, 그리고 때 마침 파리로 돌아간 친구가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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