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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심산책자 Oct 21. 2022

우리는 시처럼 만났다

내가 멘토님의 블로그를 들락거리게 된 건 2년 전 즈음이다. 그녀가 시에 관한 좋은 책을 발견했다며 그 감상을 적었다는 블로그 글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특별한 계기가 있다. 그녀의 경우 대학시절 복학생 선배가 읽던 시집이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간 시에 대한 감상은 시 예찬론자인 나의 마음과 똑 닮아 있었다.


‘시는 감각적이고, 깊은 의미를 담고 있으면서, 사람의 마음을 무너뜨리고 때론 일으켜 세운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상징적인 언어로 농축하고 농축해서 만든 짧은 시어 속에 오만가지 감각과 감정을 꾹꾹 눌러 담고, 때로는 쇠방망이처럼 묵직한 깨달음도 숨겨놓을 줄 아는 시인들의 언어 다루는 능력에 감탄한 것도 그즈음부터 인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마음의 결이 비슷한 사람에게 끌리게 마련인가 보다. 내가 그녀와 알게 된 건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 다니던 회사에는 여성 리더들이 많지 않았는데, 그녀는 몇 안 되는 리더들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었다. 그분과 급격하게 친해진 데는 책과 시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한몫했다.


그녀를 너무 편하게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땐 나의 미숙함을 많이도 들켰었다. 창피한 일이지만 당시 난 회사생활에 불만이 많았다. 그때 만난 인연들에게 얼마나 불평불만을 많이 늘어놓았을지를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다. 아니나 다를까 과거 이야기를 하던 중 멘토님은 촌철살인 한 마디를 날리셨다.


“그때 넌 말이지. 굉장히 화가 많이 나 있었어.”


참고로 그녀는 팩폭을 잘한다. 그런데 난 그녀의 직설화법이 싫지 않다. 단순한 문장엔 숨을 곳도 도망칠 곳도 없지 않나! 내 생각에도 당시의 나는 화가 많았다. 그리고 내가 화를 내는 이유는 늘 정당했다. 성장에 대한 갈급으로 포장되었고, 정의로운 나로 장식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권리를 호소하는 동안 난 정작 성장할 수 없었다. 지쳤고 피로했고 때로 무기력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녀와의 대화가 시를 닮아 가기 시작했다. 시처럼 밀도 있었고,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얼얼할 때도 있었지만, 안도가 되고 위로가 됐다. 그녀의 말은 수년이 지난 후 에야 온전히 이해되기도 했다. 마음이 어지러워 정리되지 않는 날 오롯이 혼자가 되는 시간에 조용히 펴 들게 되는 시집을 닮았다. 그 속에서 유난히 반짝 빛나는 한 문장 같다.


우리는 평일 늦은 저녁 3시간 남짓의 대화를 주고받았고, 그녀가 특유의 유쾌함이 묻어나는 소리로 웃으며 새로운 화두를 던지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거 아니? 생물학적 나이가 가져다주는 희망이 있어.

지금은 이해가 안 되겠지만 곧 알게 될 거야.”

나는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화답했다.

“내년 이맘때 또 뵐 수 있는 거죠?”

떠나기도 전에 다시 와야겠다고 다짐하는 여행지가 있듯, 헤어지기도 전에 다시 만날 약속을 하고 싶어지는 사람이 있다. 내게 그녀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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