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신혜 Jun 15. 2018

20대의 초상

 우연히 나의 20대를 보낸 동네에서

오혜 책방에서의 워크숍 첫날.
아침 일찍 일어나 몸을 풀고 보이차를 마셨다.
집에서 나와서는 자유로와 외곽 순환고속도로를 이용해 갈현동에 도착했다.
요즘은 날이 좋아 좀 걷고 싶은 심산으로 책방 앞 골목 말고 미리 물색해둔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와 걸었다.
 거리상으로는 주차장과 서점이 가까이 있었는데 한 번에 가는 길은 없어서 큰길로 나와 다시 오르막 골목을 걸어야 했다. 날이 따스해 걷기가 좋았다. 서울은 벌써 봄이 완연했다.
도착하고서도 시간이 남았다. 따뜻한 바람과 햇살이 좋으니 좀 더 가까이하고 싶어 책방에서 나와서 기지개를 한껏 켜고 큰 숨을 쉬었다.

책방 맞은편 주택에는 벌써 목련의 꽃봉오리가 맺혀있었고, 작은 꽃봉오리 하나까지 기억에 남길 바라는 마음에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가슴이 뛰었다.

다시 책방으로 들어가 있으니 사장님이 보리차를 주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둘 같이 수업을 듣는 분들이 도착했다.
난로를 중간에 두고 둥글게 둘러앉아 자기소개도 했다.
‘이제 나도 나이가 많은 쪽으로 앞서 가는구나‘ 생각한다.
듣고 싶었던 요가 워크숍이 줄줄이 개강하고 있고, 와중에 독립출판 워크숍을 듣다니, 관심이 있어 신청은 했지만 수업이 가까워 올수록 자신도 없고 불안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언제 그랬냐는 듯 편하고 즐거웠다.
2시간여의 수업이 끝난 뒤 나는 일전에 더 둘러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던 아쉬움에 다시 책방을 둘러보았다.

책방 오 혜는 좋아하는 요가원을 닮아있다.
서너 군데의 독립서점에 다녀온 것이 전부지만, 요가 수업이나 요가원에서 느끼듯 이끄는 사람에 따라 공간의 에너지가 모두 다르다. 따뜻한 공간이다.
책방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지만 앞으로 매주 한 번은 오게 될 것이고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사장님이 문을 닫지 않으신다는 전제하에- 올 수 있기에 여유를 주고 싶어 졌다.
어린 시절에 아껴먹던 왕눈깔 사탕처럼 먹고 숨겨놓고를 반복하는 소중한 마음인 것이다.
요리조리 보고 싶은 마음을 애써 거두고 책방 사장님이 펴낸 대표적인 책과 일전에 눈여겨보았던 그림엽서를 샀다.
사장님께서 인터뷰하고 펴낸 인도어 잡지를 선물로 주셨다.
책방에서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에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사 나와서는 천천히, 일부러 빙 둘러 골목과 주택을 좀 더 걸었다. 족히 20년은 돼 보이는 목욕탕과 슈퍼, 오래된 집들 사이 골목을 걷노라니 괜한 감상에 빠져들었다.
     
20대의 초상,
     
전에는 왜 그리도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했을까.
집안 경제의 악화로 어렵사리 구한 불광동의 반지하 집과 그곳의 사계절을 모르던 곰팡이들,
시시때때로 출몰하던 곱등이와 그보다 징그럽던 변태들.
늘 대화의 끝은 다투기 일쑤였던 엄마와 나.
딴에는 슬프고 지독했던 사랑들이,
그 구질구질함이 싫었을까.
     
떠올린 추억은 아련하기만 하고
지난날의 서슬 퍼런 칼날은 어느 새에 무뎌진 것인지 살갗에 닿는 감각이 그다지 예리하지 않았다.
그 날에 떠오른 20대의 초상은 따뜻하기만 했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내사랑> 을 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