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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사가 신효인 Apr 05. 2022

텃세의 대물림을 끊어낸 건 결국엔

과거의 일이 현재의 나를 망치려 한다면


지금 일하고 있는 곳에, 신입 직원분들이 오셨다.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기까지 얼마나 긴장되고 불편한지 잘 알기에, 그분들에게 더 반갑게 인사드리고 상냥하게 대해 드렸다. 내가 다른 곳에서 신입이었던 시절 겪었던 서러움을 혹여 일말이라도 새로 오신 분들이 느낄 일 없었으면 하는 오지랖 아닌, 오지랖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친절을 베풀 때마다, 내 마음속 한편에서 작은 불편함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낯가림과 내향성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내가 외향성을 발휘해서 그런가, 무리해서 그런가 싶었으나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내 마음이지만 이 불편함이 뭔지, 불편함이 생긴 원인이 뭔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다. 정체를 모르니 해결도 불가능했다. 호의를 베풀 때마다 속에서 고개 내미는 불편함을 그저 꾹꾹 눌러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평소 믿고 의지하는 선생님을 오랜만에 뵙게 된 날, 내가 느꼈던 불편함을 솔직하게 말씀드려 보았다. 선생님께서는 내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효인 씨는 본인이 숱하게 겪었던 텃세가 대물림되지 않도록 본인 선에서 끊어내려 애쓰고 있네요. 사회에서 꼭 필요한 역할을 해주고 있어요.

라고 말씀해주셨다. 선생님 말씀을 듣고 깨달았다. 내가 마음 한편에서 느꼈던 그 작은 불편함은, 바로 '텃세를 부리고 싶은 욕구'였다는 것을. 멋지지 않은 내 속내를, 내가 그토록 미워했던 사람들을 닮아있는 나를 발견한 순간 놀랐고 너무나 슬퍼졌다.

선생님 제가 그런 과찬을 듣기엔, 제 마음속에서는 그 불편함과 싸우느라 소용돌이가 쳤는걸요.
자신에게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엄청난 의지가 필요해요. 정말 큰 의지요. 그리고 효인 씨가 받은 게 없어서 그래요. 내가 사랑과 친절을 많이 받아 여유가 많으면 남에게 베푸는 게 어렵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베푸는 건 쉽지 않죠. 효인 씨는 지금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선생님께서는 내가 '받은 게 없음에도, 나누고 베풀 줄 아는 좋은 사람', '악습을 끊어내는 멋진 사람'이라며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고 해 주셨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 기분은 바닥을 쳐버렸다. 그 이유는 '난 받은 게 없는 사람', 그러니까 '나는 사랑과 여유를 충분히 느끼고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에 꽂혔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낮은 기분으로 며칠을 지내고, 주말에 친구들을 만났다.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 불편함의 정체를 알고서 슬퍼진 내 기분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

나는 원래 정도 많고, 사랑도 많은 사람인데 과거의 경험이 내가 그러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게 너무 싫어. 학교 폭력 경험이나 사람들에게서 상처받았던 기억을 지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린 시절로 돌아가 못 받았던 사랑을 다시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나는 평생을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으로, '사랑을 베푸는 게 쉽지 않은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거잖아. 나 너무 슬퍼.

라며 푸념을 쏟아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를 안쓰러운 얼굴로 보던 친구는, 마지막에 '나 너무 슬퍼'를 말하며 울먹이는 나를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눈에 찰랑찰랑 눈물을 머금은 채로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친구는

아, 미안. 미안. 너무 귀여워서ㅠㅠㅋㅋㅋㅋㅋ

라며 마저 웃어댔다. 웃는 친구를 보며 나도 울다 말고 웃음이 터졌다.

그런데 웃음이 터지자마자, 신기하게도 내 근심과 걱정이 순식간에 부질 없어져버렸다. 마치 마법 같았다. 몇 날 며칠을 그렇게 심각했을 일이었나 싶을 정도로, 별일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내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은 것 같아 친구에게 서운하기는커녕, 난 기분이 꽤나 좋아졌다. 그 이유는 내가 이야기하는 내내 나를 바라보는 친구의 눈빛과 표정, 태도에서 사랑을 느꼈고, 두 번째로는 웃음이 터진 친구에서 '내가 너를 이렇게 사랑하는데, 너 지금 너무 쓸데없는 걱정하고 있는 거 아니야?'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심각하게 고민할 일이 아니라는 걸, 내 친구는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수단으로 일깨워 주었다.

세상 슬펐었는데 순식간에 기분이 나아져 뻘쭘해진 나는, 웃으며 눈물을 슥슥 닦고 친구에게

아 왜 웃어어- 나는 심각했는데애-

라고 괜히 칭얼댔다. 친구는 내게

앞으로 사랑을 받을 기간이, 사랑을 받지 못한 기간보다 훨씬 길거야. 뭘 걱정해.

라고 말했다.


사실이었다. 사랑을 받지 못한 시절에 대해 말하는 그 순간조차, 난 친구에게 사랑받고 있었으니까. 과거는 그랬을지 몰라도, 현재는 난 사랑받고 있으니까. 또 이런 현재가 쌓여 친구 말대로 '사랑을 받지 못한 기간' 보다, '사랑을 받은 기간'이 더 길어질 테니까.


기분이 환기되고 나자, '나'와 그 '불편함'이 이전과 달리 새롭게 보였다.

그래. 과거의 나는 사랑과 너그러움을 부족하게 받았을지 몰라도, 지금의 나는 이전의 나보다 훨씬 많은 걸 가진 사람이야. 난 이걸 나눌 수 있는 사람일 거야. 그 불편함도 아마 가진 걸 처음 나눠봐서, 낯설어서 들었던 기분일 거야.


친구들을 만나고 와서 맞은  월요일, 신입 직원분들께 밝게 인사를 건네며  꽤나 괴롭혔던 불편함이  이상 들지 않는  느꼈다. 나의 '현재' 영향을 미치는 '과거' 끊어진 것이다. 오래도록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이었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칭찬격려, 사랑내가 당한 것을 물려주지 않는 강한 사람임을, 또 좋은 사람임을,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임을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을 스스로 믿을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 살지 말고,

과거의 네가 현재를 선택하게 두지 말고


그때보다

좀 더 자란 너를 믿고,

좀 더 나은 너를 믿고,

좀 더 가진 너를 믿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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