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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사가 신효인 Jul 29. 2022

어서 오세요. 어떤 고민 때문에 오셨나요?

20대 우리의 우당탕탕 청춘 고민상담소


내 친구들은 이따금씩 고민을 들고서, 내게 와 똑똑- 노크를 한다.


무슨 일인가 내심 걱정을 하면서, 친구에게 안부를 묻는다. 이번 글에는 같이 고민을 바라보고, 뜯어보고, 씹어 맛도 보고, 결국 끝내주게 소화시키는 우리의 평소 대화를 일부 담아보려 한다.




카카오톡 대화 A.

친구) 나 오늘 정신적으로 되게 힘들었는데, 그 스트레스가 몸에서 나타난 거 있지? 이런 적이 처음이었는데, 네 생각이 많이 나더라. '나보다 훨씬 더 섬세한 효인이는 이런 걸 자주 겪었겠네. 어떻게 혼자 감내해왔던 거지?' 하고.


나) 너는 너 힘든 와중에, 또 내 생각을 해주냐! 무슨 일 있었어?


친구) 나 요즘 인간관계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 받아. 직접적으로 날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닌데, 부쩍 눈치를 많이 보는 건지, 예민해진 건지..


나) 섬세해졌구나.


친구) 그런가 봐. 원래는 보여도 모른 척 넘어가기도 하고 안 보고 싶으면 안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게 안 돼. 하나하나 더 깊숙이 보이고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나) 그런 스스로가 낯설겠다.


친구) 맞아. 낯설어. 내가 오버하는 건가, 혼자 그렇게 느끼는 건가 또 고민하고.. 통찰력이 생긴 거라면 좋은 거긴 하지만, 안 보이던 게 보이고 안 느껴지던 게 느껴지니까 너무 스트레스받아. 점점 예민해져서 진짜 몸에 병 생길 것 같아.


나) 낯선 건 꽤나 불편하지. 남의 시선을 신경 안 쓰다가, 쓰게 되면 진짜 불편할 거야.


친구) 하.. 진짜 그래. 예민해지니까, 불편한 게 너무 많아졌어! 그래서 요즘엔 '아 몰라.' 하면서 혼자 속으로 남 탓 해. '왜 날 불편하게 만들어. 네가 이상한 거야.'하고.


나) 그런 거 좋아. 사서 눈치 보고, 네 몫 아닌 것까지 신경 쓰고 그러지 마. 혹시 특별한 문제나 사건이 있었는데, 그냥 덮어버리고 넘어간 적은 없어? 널 예민하게 만든 계기가 분명 있었을 텐데.


친구) 음.. 사건이 있었어! 사건이 생긴 지는 사실 좀 됐어. (중략) 문제를 일으켰던 사람한테서는 스트레스를 그렇게 많이 받지 않았고, 나름 잘 해결했던 것 같아. 그런데 그때 이후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예민하게 많은 걸 캐치하게 되는데 그게 계속 스트레스야.


나) 그랬구나. 음.. 사회 생활 하면서 네가 이래저래 힘든 상태인가 보다. 사회 초년생들이 많이 겪는 고충인 것 같아. 학생일 때와는 달리, 사람들을 '일' 때문에 만나기 시작하면서, 인간관계의 의미가 달라지더라. 그 인간관계를 대하는 나의 태도도 이전과 달라지고.


친구) 맞아!


나) 그러니까 '이전에는 내가 이렇지 않았는데' 싶은 게 생길 수밖에. 갈등이 일어난 상황이 '일'일 경우에는 이게 당장 내 밥줄이고 미래이다 보니, 부당해도 참고 넘겨야 할 때가 생기잖아. 이렇게 '진짜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인간관계보다 '가짜 나'를 만들어내야 하는 인간관계에 자주 노출될수록, '가짜 나'를 만들어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예민해질 수밖에 없지.


친구) 맞아! 그래서 더 스트레스받나 봐. 가면을 자꾸 써야 해서. 가면이 많아져서 더 스트레스받나?


나) 그럴 수도 있지. 그래서 나도, 만났을 때 내가 '나'일 수 있는 사람들만 자꾸 찾게 되더라고.


친구) 그치. 그리고 그냥 '나' 자체가 스스로 용납이 안 될 정도로 싫어질 때가 있어. 내가 너무 별로라고 느껴져.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너무 신경 쓰이고. 요즘 자주 그래. 예전에는 이런 고민은 자고 일어나면 까먹었었는데...


나) 그럴 때 있지. '내가 이렇게 별로인 사람이었나'라고 느껴지는 날. 근데, 그 생각은 진실이 아니라는 거 꼭 잊지 마!


친구) 맞아. 그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아야지. 너랑 이야기하다가 지금 깨달은 게 있어. 난 원래 환기가 되게 빠른 편인데, 예민해진 탓에 들어오는 정보량이 갑자기 확 많아지면서 환기가 잘 안 되는 중인 거 같아.


나) 그럴 수 있겠다.


친구) 그래도 전과 좀 달라진 건, 스트레스받았을 때 혼자 삼키지 않고 이렇게 떠들 수 있게 된 거!


나) 그거 엄청 중요해! 그때그때 잘 풀어야 해. 담아두면 곪아. 그거 습관 되면, 나중에는 속 곪는 줄도 모른다.


친구) 이렇게 얘기하고 나면 내가 스트레스받는 원인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기도 하고, 환기도 빨리 되고.


나) 웅웅 여기다가 자주 이야기해.


친구) 나 지금 진짜 행복해! 있지, 그리고 나 요즘 스터디 다니면서 나의 부족한 점을 엄청 많이 발견해. (중략) 자존심도 상하고, 스스로한테 짜증도 나고. 그래도 배울 게 많아서 좋기도 해.


나) 처음이잖아. 처음부터 완벽할 순 없어. 너는 과정에 있는 거야! 네가 네 자신을 정면으로, 똑바로 바라보는 것만큼 멋진 과정이 또 어딨어. 아주 잘하고 있는 거야. 채워나가면 돼. 사람이 무언가를 배우거나, 시도하거나, 목표로 나아갈 때 '내가 이번에 꼭 이뤄내 보리라' 하고 굳게 다짐하지만, 당장 눈앞에 뭔가 그럴싸한 결과가 안 보이거나 확신을 주는 건수가 없으면 금방 지치고 포기하게 되잖아. 그런데 너는 꾸준히 걸어 나가고 있는 대단한 사람이야. 넌 너의 그릇을 아주 잘 채워나가고 있는 것 같아. 기특해 내 새꾸.


친구)  흐엉엉ㅠㅠ 나 울어ㅜㅜ 어쩜 이래? 맘이 한결 좋아졌어.



카카오톡 대화 B.

친구) 아 효인아아!!! 나 뭐 먹고살지? 어제 하루 종일 남들과 비교를 했어. 나는 할 줄 아는 게 뭘까?


나) 세상에.. 마음이 너무 깊은 곳으로 내려갈만한 고민인데..? 너는 할 줄 아는 게 엄청 많지. 움 너무 많지만,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해보면! (친구의 장점과 재능 한 바닥 가득 나열하기_생략) 어떤 점에 대해서 비교를 많이 했어?


친구) 음.. 내 직무 특성상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아닌 일'의 경계가 확실하잖아. 그동안 나는 내 역할을 충실하게 했고, 또 내가 업무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최근에, 내 포지션에 대한 고민이 생겼어. 오늘 내 일을 끝내고 사무실을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은 진짜 정신없이 바쁜데 나는 더 이상 도울 수 있는 게 없는 거야. 그 상황 속에서 문득 '회사가 나를 도움이 되는 직원이라고 생각할까?' 싶더라고. 다른 사람들은 다 필수인력인 것 같은데, 나는 잠깐 필요할 때 빼고는 없어도 될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리고 이것저것 많이 맡아서 일하는 직원과 날 비교하게 되더라고. (중략) '나는 어디에 도움이 되는 걸까? 사람들이 내가 이거 한 걸 알기는 할까? 나는 잘하고 있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면서, 하루 종일 남과 나를 엄청 비교했어. 그리고 뜬금없지만, 너무 못생긴 나.


나) ...........? (이마를 탁 치는 짤을 보내고) 할말하않... ※ 할말하않: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를 줄여 이르는 말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_우리말샘)


친구)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못생겼어. 난 능력도 없고, 못생겼어!!!!


나) '할말하않'이 아니라, 할 말 다 해야겠어. 일단 회사 내용부터 이야기하면,


친구) 넹


나) 네가 잊고 있는 게 있는데, 회사는 상상 그 이상으로 계산적인 곳이야. 회사가 너에게서 뽑아먹을 게 없는데, 절대로 너를 데리고 있지 않아. 그것도 돈을 줘가면서. 세금 내가면서. 일단 너는 이걸 절대 잊어서는 안 돼. 네가 돈을 받고 거기에서 일하고 있다는 건, 회사에서는 너를 꼭 필요로 한다는 뜻이야. 너의 포지션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 회사에 더 도움이 되고 싶어서 고민하는 것 자체로 넌 이미 엄청난 인재야. (업무 관련 이야기_중략) 그리고 이것저것 많이 맡아서 일한다는 그 친구랑 너 자신을 저번부터 계속 비교하는데, 세상은 '전문가'를 필요로 한다고 난 생각해. (업무 관련 이야기_중략) 누구든 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니라, 너만이 할 수 있는 업무를 넌 맡고 있잖아. 한 분야에서 외길을 걷고 있는 네가 길게 봤을 때 더 잘 될 거라고 봐. 여기저기에 발자국 조금씩 찍는 것보다, 한 자리에서 발걸음 계속 쌓고 있는 거 아주 잘하고 있는 거고, 대단한 거야. 그리고 외모 이야기는 말야. 너 진짜 혼날래? 내가 그렇~~~~게 너 이쁘다고 몇 년을 옆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뭐래는 거야 진짜.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예쁜지 또 알려주기_중략) 네가 안 예쁘다고? 장난해?


친구) 세상에는 예쁜 사람들이 넘쳐나는 것 같아.. 나는 개미 발톱...? 일단 위에 보내준 거 마저 읽고 올게.


나) 뭐래 진짜. 웅.


친구) 너는 참 현명해. 그래서 좋아. 알러뷰.


나) 나도 알랴뷰. 근데 너 진짜 예뻐. 항상 느끼는 거지만.


친구) 눈이 단추 구멍인디.


나) 뭐래. 단추 구멍은 개뿔. 뭐 걸리버 옷에 달리는 단추인가 봐?


친구) ㅋㅋㅋㅋㅋ 역시 너의 고민 상담은 유쾌 상쾌 따땃하구만유. 효인 상담소 최고얌.



카카오톡 대화 C.

친구) 효인아아 오늘 내 감정 이야기 함 들어줄랫. 생각이 좀 많아졌어.


나) 무슨 일이야!


친구) 내 성격에 대해서 생각이 많은, '나도 참 문제다' 싶었던 하루였어..ㅎㅎ


나) 오케이. 암 리스닝.


친구) 뭔가.. 상대의 행동 하나하나 신경 쓰는 게, 너무 피곤해. 오늘 일을 하는데 내가 맡은 업무에 대해 큰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 거야. 그래서 팀원들한테 내가 '이러저러해서 이걸 잘 모르겠다.'라고 말했는데, 내가 말한 '이러저러'가 틀린 정보였나 봐. 그러면 '그건 아니고요.'라고 하고 설명해주면 되는데, '아, 그거 아니라니까요?!' 이러는 거야. 그래서 내가 당황스럽고 민망했었어. 그런데 그 뒤로 '아, 그거 아니라니까요?!'가 계속 머리에 맴돌아서 불편하고, 신경이 쓰이는 거야. 물론, 그분이 나쁜 맘먹고 그렇게 말한 게 아니고 요즘 일이 바빠서 예민하다 보니 그런 거라는 거 알지만, 나는 너무 속상했어. 그런데 '아, 속상해.'로 끝나지 않고, 그 일을 시작으로 생각이 점점 깊어지는 거야. '저분이 날 싫어하나? 내가 일을 너무 못하나?' 싶으면서, 이 부정적인 감정이 잘 털어지지 않았어. 그래서 너무 힘든 하루였어. 그 사람이 뱉은 한 문장에 표정이 굳어지는 내가, 표정 관리 하나 제대로 못하는 내가 너무 싫고 속상했어. '내가 아직도 그릇이 참 작고, 어리구나'하고 느꼈어. 요즘 내가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좀 커서 자존감도 많이 내려가고, 우울감도 많이 커졌단 말야. 그래서 이런 작은 타격에도 크게 우울해졌다가, 겨우 회복해. 힝ㅠㅠㅠ


나) 요즘 회사 때문에 많이 힘들구나. 기분이 좋은 상태였어도, 저런 말투면 타격받았을 거야. 타격받을 만한 정도가 아닌데 네가 예민해서 타격받은 게 아니라, 타격받을 만한 말투였던 것 같아. 가뜩이나 업무가 잘 안 풀려서 답답하고, 또 해내야 하는데 잘 안 되니까 당황스럽기도 하고 그랬겠다. 그 와중에 저런 말투로 한소리 들으면 속상하지. 그분도 참.. 그냥 '그게 아니고요~'하고 알려주면 좋았을 텐데, 왜 남의 귀한 사람한테 저렇게 말했대!!! 그게 아니라고 수십 번 알려줬는데, 또 물어보는 것도 아닌데 말야. 그리고 그런 날이 있지. 뭐 하나에 제대로 걸린 것 마냥 하루 종일 그게 신경 쓰이고, 그것 때문에 기분이 바닥을 치는 날. 나도 그런 날이 있어. 생각이 꼬리를 물고 또 물다가, 그게 길어지면 자기혐오까지 가기도 하고. 잘 안 털어질 만한 일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노력했는데도 잘 안 털어지면 그냥 내비둬. '아, 그래! 너 거기 한 자리 어디 해봐라. 얼마나 가나 보자.' 하고. 관심 주면 줄 수록, 말뚝 박으려고 들 테니까 그냥 냅둬버려. 억지로 털어내려고 하지 말고. 그리고 표정 컨트롤 못한 건 네가 그릇이 작고, 어려서가 아니야. 네 표정 관리가 어려울 정도의 말투였을 거야. 내가 널 알잖아. 네가 얼마나 타인에게 배려심 있는 사람인지. 그런 네가 표정 관리가 안 될 정도였으면, 누가 들어도 기분 나쁠 만한 말투였을 거야. 네 표정이 어땠을지 난 상상도 안 간다 야. 나는 수년 동안 너에게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인데, 네가 그런 표정이 지어졌다는 건 그 사람이 잘 못한 게 맞아. 그럴 만한 일이었어! 기분 나쁜 거 감춰서 뭐할 거야! 감춰질 정도였으면 진즉에 네가 잘 감췄을 텐데, 그 순간 감춰지지 않을 정도의 감정이면 티 나는 게 낫지! '너도 내 표정 보고 어디 한 번 눈치 봐봐라! 왜 말을 그따구로 하냐!' 하고 눈치 줘버려. 잘했어. 티 낼 건 티 내야지.


친구) 요즘 진짜 자기혐오가 견디기 힘들 정도로 크게 와ㅠㅠ 그러다가 화도 나. 내가 왜 그 사람들 때문에 이렇게까지 날 갉아먹고 있나 싶어서. 네 말 들으니까 나 자신을 토닥토닥하게 된다 진짜ㅠㅠ 사회생활은 왜 이렇게 힘들까..? 나만 이렇게 힘든가..? 싶구..


나) 아니야. 사회생활은 모두에게 힘들어. 나는 사회생활하기 싫어서, 안 하잖아. 회사 안 다니잖아. 너는 사회생활 힘들고 하기 싫은데도, 하고 있잖아. 항상 느끼는 거지만, 너 진짜 대단한 거야. 존경스러워. 기특해. 저녁은?


친구) 웅ㅠㅠ 고마워.. 너 보고 싶넹 히히. 나 베이글 먹었지롱~ 너는 밥 뭐 먹었어?



모두가 일상 속에서 한 번쯤은 이런 날을 마주하는 것 같다. 마음이 아주 바닥에 내리 꽂히는 날. 자기 확신은 단 1g도 존재하지 않고, 불안과 걱정 그리고 의심이 가득해지는 날. 마음이 아주 지쳐 버리는 날. 누군가 날 좀 도와줬으면, 지탱해줬으면, 확신을 줬으면 하는 날. 친구들의 그런 드문 날에 나눈 우리의 대화를 일부 담아보았다.


친구들과의 대화를 꺼내, 다시 읽어보면서 문득 우리의 20대가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춘이라는 이 시간도 예쁘지만, 그 속의 주인공인 우리도 예쁘고, 생각도 마음도 고민도 참 예쁘다고 느꼈다. 지금이어서 할 수 있는 고민들, 대화들, 나눌 수 있는 시간들. 너무나 소중하다. 이런 시간을 지나온 우리의 30대는 또 얼마나 멋질까?




힘들 때 언제든 또 들러주세요


항상 곁에,

언제나 이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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