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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사가 신효인 Aug 20. 2022

내가 확실하게 망하는 이유

날 사랑하는 건, 어떻게 하는 거지?


정말 잘하고 있는데,
왜 그렇게까지
너 자신에게 엄격하게 굴어?
그런 널 보면 가끔은 속상해



친구들이 내게 가끔 하는 말이다. 그렇다. 나는 나 자신에게 한없이 냉정하고, 꽤나 엄격하다. 스스로 아직은 부족하고, 안주해서는 절대 안 되고,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강박이 자리 잡은 이유는, ‘나는 방심하면 망한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잘한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아주 확실하게 '망한다'. 그동안 살면서 한 많은 경험들이 이 명제가 참이라고 증명해주었다. 그중 일상에서 일어난, 작은 사건 몇 가지를 적어보려 한다.


대중교통을 편하게 이용하지 못하는 나를 위해 아빠께서는 내가 23살 때 중고차 한 대를 사주셨다. 2002년식 수동 SUV였다. 내게 소중한 첫 차라서, '호연이'라고 차에 이름도 붙여줬었다. 호연이가 내 발이 되어줬던 3년 동안 정말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차를 산지 한 달만에 도로 한가운데에서 타이밍 벨트가 끊어지고, 엔진이 망가져서 견인이 됐었다. 전방주시를 소홀히 했던 뒤차가 고속도로 정체 구간에서 호연이를 냅다 들이박아서 차는 반파되고, 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오래된 연식의 호연이를 고쳐가면서 3년 간 거의 매일 탔던 나는 차 수리에 꽤나 빠삭해졌고, 운전에 아주 능숙해졌다.


더 이상 수리가 불가능해진 호연이가 결국 폐차되고, 내게 자동식 새 차가 생겼다. 꽤 오래 수동만 몰다가 자동을 몰아보니 운전이 정말 쉽고 편했다. 신차라 기능도 많았고, 차 크기도 호연이 보다 살짝 작아져서 주행도, 주차도 이전보다 훨씬 수월했다.


쉽다
편하다
수월하다

고 느낀 게 문제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새 차를 몬 지 한 달이 됐을 때의 일이다. 오래된 건물의 좁은 주차장을 나오다가, 회전각 계산 미스로 건물 벽에 붙어있던 철 구조물에 부악- 차를 긁었다. 으아악..!!!


당시 얼마나 속이 쓰렸는지, 가히 말로 다 표현이 안 된다. 좀만 더 주의했으면 안 할 수 있었던 실수를 한 것에, 새 차에 상처가 난 것에 너무 속이 상했다. 건물에 피해를 입히지 않아서, 도색만 벗겨지고 차가 찌그러지지는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방심한 나 자신에게 화가 났고 실수를 용납하기가 힘들었다. 왜 좀 더 꼼꼼히 살피지 않고, '이 정도면 될 거야'라고 생각했던 거지?! 


그리고 바빠서 한동안 요리를 못하다가, 멸치 볶음과 메추리알 장조림을 한 날이었다. 자주 요리했던 반찬이라 레시피를 안 보고 후다닥 만들었음에도, 맛이 좋았다. 원체 손이 커서 음식을 한 번 할 때 많이 하는 편인데, 가족들 입에도 맞았는지 하루 만에 반찬이 동이 났다. 기분이 좋았던 나는 며칠 뒤 멸치를 새로 사다가, 멸치 볶음을 한 번 더 했다. 저번보다 더 맛있게 하고 싶은 맘에 풍미를 더한답시고 다진 마늘도 조금 더 넣고, 간장도 '이 정도면 될 것 같은데'에서 안 멈추고 약간 더 넣어보았다. 이번에도 맛있을 거라고 확신하면서.


결과는.. 짰다.. 하하.


새로 산 멸치가, 집에 있던 멸치보다 훨씬 짰다. 이미 짠 멸치를 볶으면서 간장을 평소보다 약간 더 넣었으니, 반찬이 짤 수밖에. 차라리 약간 삼삼했던, 이전 멸치 볶음이 더 나았다. 간을 시작하기 전에 멸치를 먹어봤어야 했는데, 멸치의 짠 정도를 확인했어야 했는데 너무 안일했다. 나도 모르게 '저번에 후다닥 대충 만들었을 때도 맛있었는데, 뭐. 이번에는 마늘도, 간장도 조금 더 넣었으니 훨씬 맛있겠지.'라고 생각했다. 손이라도 좀 작든가. 그 많은 멸치를 냅다 짜게 볶아버린 내가 싫었다. 엄마, 아빠 모두 맛있게 드셔주셨지만 이전에 비해 망한 '멸치 볶음'이 되어버린 건 확실했다.


앞서 소개한 사건들은 경미한 편에 속한다. 이런 크고 작은 경험들이 인생 데이터로 쌓이면서, 난 '안일함'을 아주 경계하게 되었다. 난 방심하는 순간, 망한다. 일상 속 작은 것들도, 인간관계도, 일도. 그래서 실수를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난 항상, 언제나 바짝 긴장되어 있다. 그렇게 살면 인생이 피곤하지 않냐고 내게 묻는다면, 그렇다. 피곤하다. 벅차다. 그렇게 빡빡하게 사는데도, 종종 실수하기도 하고. 하지만, '쉬운 걸 선택하는 순간', '안일하게 생각하는 순간' 망해버린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에, 같은 과오를 반복해서 만들어내고 싶지 않다.


나의 속마음을 꺼내 보이는 것보다, 화내고 짜증 내는 게 더 쉽다. '상대가 뭔가 불편한 게 있을까? 내가 놓친 건 없나? 내가 뭘 배려할 수 있지?' 하며 계속 상대를 신경 쓰는 것보다, 나만 생각하는 게 더 쉽고. 직장 동료가 필요로 하는 게 뭔지 고민해보고 센스 있게 일처리를 하는 것보다, '내가 이 정도 했으면 됐지 뭐. 더 해야 될 거 있으면 말하겠지.'하고 일을 적당히 하고 넘겨 버리는 게 더 쉽다. 누군가의 비밀을 끝까지 지켜주는 것보다, 홧김에 가십거리나 안주거리로 말하는 게 더 쉽고. 설거지하고 자는 것보다, 그냥 자는 게 훨씬 더 쉽다.


쉬운 걸 선택하면 결코 좋은 결과가 따라오지 않았다. 내가 조금 벅차고, 피곤하더라도 어렵게 사는 게 훨씬 좋았다. 편한 건 독이 된다. 이걸 뼛속 깊이 알게 된 뒤로는 실수하지 않고자, 창피하지 않고자, 소중한 걸 잃지 않고자, 망하지 않고자, 주제를 모르지 않고자 내가 나의 '감시자'가 되어 긴장을 놓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이 우주에서 나에게 제일 엄격한 사람이 내가 되고서,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감시자' 역할을 자처했던 건 처음에는 나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함이었으나, 되려 나를 갉아먹기도 했다. 스스로를 과소평가해 자신감이 떨어지거나, 칭찬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자괴감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거나, 번아웃이 오는 경우가 속출했다. 그리고 확인하고 또 확인했음에도 실수를 하게 됐을 땐, 어마어마한 크기의 자책감이 밀려오곤 했다.

 

이렇게 엄격함의 역효과를 겪고도, 내 성향을 버리기가 어려웠다. 이미 고착되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런 내 성향이 분명 도움이 될 거라고, 좀 더 나은 나와 내 삶을 만들어줄 거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겐 변화가 필요했다. 계속 무식하게 채찍질만 할 순 없었다. 안일해지지 않도록 긴장은 하되, 내가 나에게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었다.

 

내게 '너그러움'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지만, 하루아침에 스스로를 대하던 익숙한 방식에서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게 필요한 건, '연습의 시간' 그 이상의 가치였다.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해야 했다. 그래야 나에게 인내도 할 수 있고, 너그러워질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고민을 해도, 내가 날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랑하려 애를 쓰는 건 꽤나 불쾌한 일이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는 변화를 향한 길목에서 맞닥뜨린 가장 크고 높은 벽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제부터 내가 널 사랑하겠노라고 마음먹은 걸로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 자기 자신과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나를 사랑할 거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이건 단순히 '나의 장점'을 생각해보는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장점을 아는 것과 사랑을 하는 건 다른 차원이니까.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를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막막했으나,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제일 문제라고 느낀 부분이 '나의 실수에 스스로 너그럽지 못한 것'이었기에, 실수한 나 자신을 먼저 살펴보기로 했다. 그런 나에게서도 사랑할 거리가 있는지. 그래서 수 권의 일기장을 꺼내 펼쳐보았다. 그 속에서 실수 후 괴로워하는 나를 찾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서 답을 찾았다.




실수할 수도 있지

그렇다고 망한 건 아냐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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