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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사가 신효인 Dec 11. 2022

손이 차가워서 행복한 선생님입니다

아이들의 온기로 나는 겨울


완연한 겨울 날씨이다.


평소 손발이 차가운 나는 겨울에 손이 얼음장이 된다. 내 손이 내 몸에 닿는 게 싫을 정도로 차갑다. 화장할 때 약지를 사용해서 아이섀도우 바른 영역을 정리하는데, 비교적 따뜻한 얼굴에 닿은 손 피부 때문에 저린 느낌이 들기도 한다. 차가운 물에 들어갔다가, 바로 따뜻한 물에 들어갔을 때 드는 그 느낌. 내가 이 구역 엘사다.


추운 이맘때가 되면 나의 차가운 손과 관련된 따뜻한 에피소드가 일하는 곳에서 종종 생긴다. (필자는 부업으로 초등학생들이 다니는 어학원에서 차량 동승자로 일을 하고 있다.)


2학년부터는 발육이나 행동에서 제법 초등학생 티가 난다. 자기주장이나 과시가 강해지고, 챙김을 받으려 하기보다는 자기가 이것저것 하고 싶어 한다. 본인이 이제  컸다고 생각( 착각)하기 시작하는 나이인  같다. 학교나 학원에 1학년 동생들이 생겨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경계에 있는 1학년은 (당연하지만) 유아 느낌이 물씬 나고, 선생님을 많이 따르고 의지한다. 갑자기 와서 양손을 번쩍 들며 안아달라고 하기도 하고, 배가 아프다며  무릎 위에 앉아서는 수다를 한참 떨며  쓰다듬을 즐기다 가기도 한다. 오늘 이거 했어요 저거 했어요, 이거 먹었어요 저거 먹었어요 쫑알쫑알 알려주며  리액션을 반짝반짝한 눈으로 기대하고 있는  보고 있노라면  귀엽다. 이렇게 아직 유아 티를 벗지 않은 1학년 친구들은 차를 오르내릴 때도, 달리는  안에서도 이래저래 손이 많이 가고 신경  것도 많다.


겉옷을 입혀주거나, 안전벨트 차는 걸 돕거나, 벗겨진 마스크를 고쳐 씌워주거나, 눈앞을 가릴 정도로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해주거나, 버스에서 오르내릴 때 손을 잡아주다 보면 아이들 몸에 내 손이 어쩔 수 없이 조금씩 닿는다. 그래서 1학년 아이들은 내 손이 차가운 걸 알고 있다. 월수금 1교시 하원을 나와 함께 하는 친구들 중에 나의 손난로를 자처하는 1학년 2명이 있다. 그중 버스에서 내 옆에 앉는 동동이(애칭)는 내 손이 꽤나 차갑다는 걸 처음 인지한 날, '선생님 손 되게 차갑네요. 저 손은 어음~청 따뜻하다요-.' 하더니 내 손을 터억 잡고는, 그 채로 집까지 갔다. 내가 이 구역 환승연애 해은님ㅎ


그 뒤로도 동동이는 학원에서 차가 출발하면 자기 손을 내게 스윽 내민다. 그 고사리 같은 손을 말없이 건네는 동동이를 보면, 만감이 교차하곤 한다. 내가 돌봐주어야 할 정도로 어린 이 아이가 이렇게 타인을 위할 줄 안다는 게 너무나도 인상 깊고, 평소 대단한 말썽꾸러기가 가진 따뜻함에 감동받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이 이런 맛에 자식을 키우실까?


동동이가 내 손을 잡고 가면, 윤이(애칭)는 그 모습을 보고 뒤에서 꼭 이 말을 한다. '선생니임- 저 손 마사지할 줄 안다요-.' 그러면서 내 손을 달라고 조그마한 손을 불가사리 마냥 펼쳐서는, 안전벨트 때문에 의자에서 떨어지지 않는 몸을 나와 가까워지려고 힘껏 앞으로 뺀다. 다행스럽게도 나에게는 손이 두 개가 있어서 오른손은 옆의 동동이에게, 왼손은 뒤쪽 윤이에게 준다. 그러면 경쟁이 붙어서 둘이 내 손을 열심히 주물러댄다. 아기들이라 압이 없어서 마사지는 아니고, 그냥 내 손=슬라임 이런 느낌...?ㅎ 그런 아이들 덕분에 내 손은 따뜻해져 가고, 손을 양쪽에 내어주느라 트위스트 된 내 허리의 안부는 오리무중이 된다 하하하하. 아이고 허리야. 어쨌든 고맙고, 예쁘고, 귀여운 1학년들이다.


학원 근처에 살아서 학원 버스를 타지는 않지만, 집에 가기 위해서는 학원 앞 차도를 건너야 하는 초등학교 3학년 친구가 있다. 학원 앞 도로에는 신호나 속도/주정차 단속이 없어서, 불법 주차된 차도 많고 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도 많다. 그래서 하원 버스에 오르기 전에, 나는 그 3학년 친구 손을 잡고 꼭 함께 길을 건너준다. 그런지 2년이 되었다 보니 이제 그 친구는 수업이 끝나고 교실에서 나오면서 눈으로 날 찾고, 내가 보이면 손 잡자고 자연스럽게 자기 손을 뻗는다. 최근에 내 손이 부쩍 더 차가워져서, 손을 잡기 전에 '준아(애칭), 선생님 손 차가워. 미안.' 하고 손을 잡았다. 그 친구는 '괜찮아요'라고 하더니, 내가 차도를 살피고 길을 건너주는 동안 내 손을 조물조물했다. 추운 날씨에 차가운 손을 잡기 싫을 법도 한데, 개의치 않고 내 손을 덥석 잡고는 온기를 나눠주는 아이가 참 고마웠다.


아이들이 어쩜 이럴까 싶다. 어른 못지않게, 속이 참 깊다. 겉에서 슬쩍 보면 내가 아이들을 돌보는 것 같지만, 나도 아이들에게 챙김 받고 사랑받는다.


사실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이 쉽지는 않다. 머릿수도 많고, 그 안에 매일 전쟁을 치러야 하는 아이도 있고, 돌발 상황이나 긴급 상황이 생길 때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하고, 또 교육서비스업이다 보니 내가 소모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이 일을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건, 함께 일하는 좋은 분들과 아이들 그리고 오늘 적은 이런 에피소드들 덕분이다. 매일매일이 행복한 건 아니지만, 순간순간에 번지는 행복들이 이어져 지금껏 올 수 있었다. 감사하다.


나는 이번 겨울도 손이 차가워서 행복한 선생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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