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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 Nov 10. 2021

결과를 기다리는 마음

#수험생활 2

시험을 본 날로부터 두 달 반이 지난 지금, 까마득하게 멀게만 느껴지던 합격자 발표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일 년에 단 한번 있는 시험을 위하여 매일 똑같은 하루를 보내는 것은 쉽지 않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 공부를 하고 식사를 하고 운동을 나가는 ‘나만의 루틴’을 만드는 것은 단순한 일인 것처럼 보여도, 결국엔 매일매일을 견디고 버티고 참아내는 일이다.

잠이 오지 않아 늦은 새벽에 겨우 잠이 들어도 어김없이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것은 잠을 참아내는 일이다.

집중력이 떨어질 때에도 우직하게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은 불확실함에서 오는 불안함을 견뎌내는 일이다.

계획과는 다른 상황이 닥쳐와도 다시 책상으로 돌아오는 것은 포기하고 싶은 유혹으로부터 버텨내는 일이다.

나 역시 시험을 보는 그 순간까지도 견디고 버티고 참는 것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든 것은 결과를 기다리는 두 달 반의 시간이었다.


아직 시험 문제와 내가 쓴 답안이 어느 정도 기억에 남아있는 2주가량은 불쑥 떠오르는 크고 작은 실수들로 괴로웠다.

시험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는 평소 전혀 하지 않던 실수를 하거나 분명 내가 알고 있는 것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미 내 손을 떠난 답안지는 돌이킬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지만, 아쉽고 허무한 마음에 자꾸 내가 쓴 답안을 떠올린다.

악몽도 자주 꾸고, ‘으.... 으읏…으윽’하는 잠꼬대 소리를 내면 남편이 토닥여준다.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서 심각한 악몽을 꾸고 있다고 판단되면 흔들어 깨우기도 한다.


그동안 자주 못 봤던 가족들이나 친구들을 만나면 반가움은 잠시뿐이고 생각이 더 많아진다.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명절이나 가족행사, 경조사 등에 불참하며 공부를 하지만, 나는 명절에도 항상 전을 부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생신 등 특별한 날이 없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양가 부모님을 찾아뵈었다(그렇게 되면 한 달에 두 번은 주말 시간을 가족에 할애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 전에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 아쉬움이나 미안함이 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서도 그러한 아쉬움이 느껴질 때에는 마음이 더욱 괴롭다.

특히 친구들과 대화하다 보면 내 시간만 제자리에 멈추어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어느덧 30대 중반에 접어들었으니 직장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거나 이직을 하며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도 한다. 나는 합격을 하지 않는 한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수험생 꼬리표만 남을 뿐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라기보다는 더 많은 생각과 걱정을 얻어오는 일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결국 혼자 있는 것이 편해진다.



너무 기대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겸허하게 결과를 기다리자고 매일 마음을 다잡았다.

올해는 시험 이후로 계획했던 입주가 시험 세 달 전으로 앞당겨져서 급하게 리모델링을 준비하였고, 그 바쁜 와중에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나 역시 코로나 후유증으로 체력이 떨어져 시험날까지 골골댔지만, 코로나로 병원까지 가야 했던 남편을 보살피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다.

그럼에도 밥 먹는 시간, 자는 시간을 아껴가며 어떻게든 공부량을 채우고자 애썼다. 생활치료센터의 좁디좁은 화장대에도 굴하지 않고 단 한 번의 결시도 없이 모의고사를 보았고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공부했다.

합격을 기대하기엔 아쉬운 시간이었으나, 좌절하기엔 전력을 다한 시간이었다.



결국 합격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는 또 책상에 앉을 것이다. 다만, 시간이 더할수록 올해처럼 예측하지 못한 사건들이 점점 더 많이, 자주 발생할 것이기에 더 많은 인내심과 용기가 필요함을 알고 있다.


잠 못 이루는 밤, 간절히 빌어본다.

“합격이라는 기적이 일어나게 해 주세요. 합격하지 못한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인내심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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