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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 Feb 24. 2022

30대의 터널엔 비상구조차 없다 (3)

#수험생활 8

 직장은 보수적이긴 하지만 업무체계가 있었던 대기업이었고, 인사업무는 내가  놓지 못했던 법학과 연결되어 있었다. 회사 내의 법규범인 취업규칙이나 노사  계약인 단체협약을 매일 같이 들여다보아야 했으니 말이다. 대학교에서는 업무를 인수인계해  사람도, 업무 관련 문의를 해도 제대로 알고 답변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전표처리부터 행사 기획, 홍보 등등 다양한 업무를 맡게 되면서 정말로 '잡무' 하게 되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적응하며 버텨보자고 다짐하였다. 폭풍과 같은 20대 후반을 보내고 나니 어딘가 적을 두지 않은 채 지내는 삶이 얼마나 불안정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비록 비정규직이었지만 관행적으로 재계약이 체결되는 곳이었고, 소박한 연봉이었지만 그래도 밥벌이는 한다는 생각에 안정감이 들었다.

다시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썼던 글, 교수님 책에 남아 있는 나의 다짐.

하지만 제 버릇 개 못 준다더니, 그 다짐이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초반 한 학기 동안에는 업무에 관해서 전화를 해서 물어보기도 하고 불친절한 답변이 오면 직접 찾아가서 설명을 다시 들으면서 스스로 업무 매뉴얼을 만들어나간다고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한 학기만 해보니 업무 루틴을 금방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 업무들이었기 때문에 방학부터는 점차 직장생활이 단조롭게 느껴졌다.


때마침 같이 로스쿨을 준비했던 수리가 나에게 공인노무사 시험을 준비해보자고 권유했다(언젠가 이 친구에게 너 덕분에 시작을 할 수 있었다고, 정말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노무분야 전망이 괜찮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노무 전문 변호사를 목표로 노무사 공부를 고민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전 직장에서 인사팀 내에 법학과 출신이 나밖에 없으니 다음 공인노무사 교육과정의 대상자는 내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단지 퇴사를 만류하기 위해서 꺼낸 이야기였는지, 그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으나 무기력한 회사생활을 끝내고 싶었던  나에게 그리 매력적인 제안은 아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내 노무사가 흔한 일은 아니었으나, 국내 그룹사들은 사내 노무사를 육성하기 위하여 그룹 연수원에 공인노무사 관련 강사들을 초빙하여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상반기 3개월가량 얼굴이 보이지 않던 법무팀 대리님이 내가 퇴사한 후 공인노무사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룹 연수원에서 노무사 강의를 들으며 시험을 준비했었던 것이다.

단조롭던 내 일상에 던져진 돌은 내 마음을 계속 울렁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로스쿨 입시와 변리사 시험, 두 번의 실패를 경험하고 나니 쉽게 결단이 서지 않았다. 목표가 생기면 이를 실행하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았던 지난날들과 달리 또다시 무언가를 도전해도 되는지 망설여졌다.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이미 갖고 있는 것조차 온전히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터널을 벗어나기 위한 비상구로 여겨졌던 취업 준비조차 이제는 또 다른 터널임을 잘 알고 있었다.


구 남자 친구(현 남편)는 회사를 다니면서 업무와 관련된 자격시험을 준비했다. 한두 달 가량은 주말마다 스터디 카페에서 데이트를 했다. 나는 책을 가져가서 읽다가 한 번씩 남자 친구를 쳐다봤다. 그때 내 머릿속에는 '부럽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일을 하면서 성장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업무 관련 공부를 하면서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나는 일을 통해서 소속감과 정기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지만, '성장'이라던지 '발전'을 꿈꿀 수 없는 자리에 있었다. 남자 친구는 그런 내 심정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지나가는 말로 했던 공인노무사 시험 이야기를 남자 친구가 먼저 꺼냈다.

노무사 수험서적을 직접 구경하려면 신림동 수험가에 있는 서점에 가야 했는데, 간 김에 노무사 학원에서 상담을 받기로 하였다. 학원 상담 선생님은 학부 전공이 무엇이었는지,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지(이전에 인사 관련 업무를 했었는지), 공부시간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지 등을 물어보고는,

"법학 전공을 하셨고, 인사 업무를 해보셨으니 노무사 수험 과목에 대한 부담은 없으시겠어요. 다만 직장인 중 합격한 분들은 대부분 육아휴직을 활용하신 분들이에요. 시험 직전에 절대적인 공부시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사실상 합격이 어렵다고 봐야죠."

이라고 말씀해주셨다. 휴직이 불가능한 계약직에게는 결국 시간 확보를 위해서 퇴사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한 친구의 결혼식날, 한 동네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온 덕분에 친한 몇몇 친구들과 같이 뒤풀이를 하였다. 대학입시 재수생활부터 로스쿨 입시 준비, 취업 준비, 변리사 시험 준비를 모두 지켜본 친구들이었다. 공인노무사 시험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가 결혼 뒤풀이 자리는 순식간에 수험생활을 시작해도 되는가에 대한 토론의 장으로 바뀌었다.


"햇님아, 나는 네가 고생하는 거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직장 생활하면서 월급 받으면 친구들이랑 맛있는 것도 먹고, 예쁘게 차려입고 좋은 곳도 놀러 가고 그렇게 지내는 모습이 제일 편해 보였어."

"무언가를 도전해보겠다고 마음먹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 그 용기부터가 대단한 거고, 특히 너라면 꼭 해낼 거야."

"오늘 뒤풀이에 남자 친구 안 데려온 게 이 이야기하려고 했던 거였구나. 지금 결혼 적령기이잖아. 남자 친구는 기다려줄 수 있대? 수험생활 중간에 결혼 문제로 헤어지거나 마음고생하게 되면 어쩌나 그게 벌써 걱정돼."

"햇님이 네가 이것저것 많이 시도해보고 실패도 해봤지만, 결국은 네가 전공 살려서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아. 나는 네가 무슨 선택을 하든 응원해."


친구들은 내가 고민하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날의 주인공인 신랑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면서 열띤 토론이 끝났다.




#30대, 또다시 터널에 들어서다.


남자 친구와 친구들의 응원에 힘입어 일단 직장과 병행하여 1차 시험부터 준비하였다. 부모님이 알면 걱정하실까 봐 몰래 준비를 시작했다. 퇴근 후 부모님이 나를 찾지 않으실 늦은 시간에만 인강을 듣고 공부를 했다. 주말에는 남자 친구와 스터디 카페를 갔고, 혼자 집 근처 카페를 전전하며 공부하기도 했다. 시험까지는 두 달밖에 시간이 없어서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공부를 해야 했다. 수험에 진입할지에 대해서만 거의 1년에 가까운 시간을 망설이다가 애매한 시기에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토요일 오전 시험을 본 후 시험지를 들고 남자 친구를 만났다. 1차 시험은 객관식 시험으로 시험이 종료된 후 2~3시간 뒤쯤 답안이 공개된다. 점심을 먹고 카페에 가서 남자 친구는 답을 부르고 나는 채점을 시작했다(결혼한 후에 다시 본 1차 시험 때에도 남편이 답을 불러주었다. 숫자를 잘못 부를 때마다 내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어서 화를 부르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옆에 있어준 것만으로도 든든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절대평가이기 때문에 가채점을 해보면 합격 여부를 바로 알 수 있었다.


공인노무사 1차 시험은 객관식이고 절대평가(각 과목에서 40점 미만의 과락 없이 평균 60점 이상이면 합격이다.)이었기 때문에 응시자 대비 합격률은 50% 정도이다. 본 게임은 2차 시험이다. 2차 시험은 서술형 문제로 출제되기 때문에 법전에 나와 있지 않은 판례나 학설 등은 온전히 내가 이해하고 암기해야 서술할 수 있다(법학과목 시험시간에는 법전을 지급해주어서 법전을 참고하며 시험에 응할 수 있다. 단, 인사노무관리론이나 선택과목인 경영조직론, 노동경제학 시간에는 법전을 지급하지 않는다.). 즉 문제를 많이 풀어보고 감을 잡으면 금방 합격권에 진입할 수 있는 1차 시험과는 달리 2차 시험은 적어도 이해하고 암기하고 그대로 현출 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응시자 수와 상관없이 합격인원이 300명으로 정해져 있는 상대평가이다. 보통 2차 시험의 응시자 대비 합격률은 10% 안팎이다(처음 진입했을 때는 10% 정도였지만, 현재는 응시자 수가 많아져 7~8%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전력질주를 해도 불합격하는 사람이 90%인 시험에서 공부시간이 확보되지 않는다는 것은 출발점부터가 뒤쳐져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 수험생활을 시작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공부시간 확보를 위한 퇴사는 예정되어 있었다. 다만 언제 퇴사할 것인지의 시기상의 문제만 남아있었을 뿐이었다. 합격이 주는 기쁨은 잠시였고, 또다시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로 홀로 걷게 될 미래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부모님께서 내가 벌여놓은 일을 언젠가 알게 되실 거라면 지금 바로 설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차 시험을 본 날, 집에 들어가자마자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매일 밤 방문을 닫고 뭘 하고 있는 것 같더라니... 주말 아침부터 밖에 나가는 것도 뭔가 있다고 생각은 했어."

라고 엄마가 말씀하셨다. 이 세상 엄마들은 자식 일이라면 기가 막히게 눈치가 빠르다. 우선 직장을 다니면서 2차 시험을 공부해보고, 계속 시험을 준비해야겠다는 확신이 서면 직장을 그만둘 것이라는 말씀도 드렸다. 대학 입시부터 로스쿨 준비, 취업, 변리사 수험생활까지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이었고, 항상 부모님은 내 결정을 존중해주셨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선뜻 "네가 하고 싶으면 해 봐."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으셨던 것 같다.


일단 2차 시험과목 수험서부터 구입하고 동영상 강의를 신청했다. 2차 시험까지는 3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으므로 합격은 기대조차 할 수 없었지만, 앞으로 계속 공부를 해볼 만한 '가능성'이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다시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쉴 틈 없는 공부가 시작되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부모님은 끝내 나의 또 다른 시작을, 그리고 퇴사를 지지해주기로 하셨다.

"이번에는 될 때까지 해봐. 항상 과외하면서 공부한다고, 더 늦으면 취업 안된다고 마음껏 공부 못해본 게 엄마도 늘 마음에 걸렸어. 남들은 공부하기 싫다는 자식 때려가면서 공부도 시키는데, 공부하고 싶다는 자식한테 지원은 못해줄 망정 반대하는 건 아닌 것 같아. 필요하면 학원 근처에서 자취도 하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 엄마랑 아빠가 도와줄게."


퇴사 예정일을 받아두진 않았지만, 부모님의 허락 아닌 허락으로 나의 퇴사는 현실로 다가오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비상구조차 없을 터널 속으로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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