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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 Mar 07. 2022

30대의 터널엔 비상구조차 없다 (4)

#수험생활 9

이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학원이 있는 대학동이나 신림 근처 자취를 고민했다. 30년이 넘게 부모님과 떨어져서 지내본 적이 없었던 나는 가끔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이번이 좋은 기회임은 틀림없었다.

그러나 당시 일했던 대학교에서 나의 호의(음료수를 줬을 뿐이다. 평소에 일을 하면서, 혹은 사람을 만나면서 고마움의 표시나 격려의 의미 등으로 음료수를 주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런 오해를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를 오해한 한 남성의 위협적인 행동들로 한동안 악몽에 시달리고 있던 때이기도 했다. 같이 일하던 분들의 배려로 사무실 중간 문에 카드키를 달기도 하였고, 사무실 전화도 한동안 받지 못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그래서 보안이 괜찮은 곳 위주로 자취방을 알아보았는데, 복도나 공동현관에 CCTV가 있거나 공동현관에 별도의 번호키가 설치되어 있어도 동네 특성상 밤길이 무서워 보이는 곳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랑 같이 살자.”


전혀 예측하지 못한 때에 남자 친구에게 프러포즈를 받았다. 일련의 사건 때문에 내가 혼자 자취한다는 것이 불안했던 것인가 싶어서 “갑자기 왜? 자취하는 게 걱정되어서 그런 거야?”라고 물었다. 그러나 남자 친구는 내가 노무사 공부를 시작할 때쯤부터 나와의 결혼을 생각했다고 했다. 수험생활은 수험생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기다리고 견뎌내는 것이 쉽지 않다. 수험생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도 참아야 하고, 멘탈이 흔들리고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 사람을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빠질 것이다. 그런 수험생활을 시작하는 사람을 보고 결혼을 생각했다니 정말 희한한 일이다.


친구 결혼식 뒤풀이 때 열띤 토론을 벌였던 친구들은 모두 허무해했다.

“결혼식 와서 사진 찍을 때부터 느낌이 왔다니까. 그렇게 신중한 사람이 여자 친구의 친구 결혼식에 와서 같이 단체사진을 찍는다? 이건 결혼 생각이 없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

“괜히 우리끼리 토론했어. 햇님이 남자 친구도 뒤풀이에 데려다 놓고 같이 얘기할걸 그랬어.”

내 수험생활을 놓고서는 의견이 갈리던 친구들이 프러포즈를 받았다는 이야기에는 한마음으로 축하해주었다.


2차 시험을 본 후에 양가 부모님께 말씀을 드릴 계획이었으나 시험 전에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과 결혼을 약속했다고 선언해버렸다.

엄마는 나에 대한 숙제가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취업이나 시험 합격 등을 통해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좋은 사람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이라고 하셨다. 퇴사를 하고 수험생활을 하기로 결심한 이상 당분간 두 숙제는 해결될 수 없다고 하시면서. 그래서 곧 숙제 하나는 해결이 될 것이라고 귀띔을 해드리고 싶었다. 아빠도 근래 친구 자녀 결혼식에 여러 차례 다녀오시면서 딸이 공부를 하다가 혼기를 놓치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하셨던 모양이었다. 아빠와 엄마는 아직 실물도 보지 못한 내 남자 친구를 무척이나 반가워하고 고마워하셨다.



직장생활을 병행하면서 응시한 첫 2차 시험은 대부분의 과목은 문제의 절반은 건드리지도 못할 정도로 준비가 부족했다. 1차 시험 후 두 달여간의 시간 동안 2차 시험을 대비하는 수험생들을 위한 '동차반'이라는 커리큘럼이 있어서 해당 강의는 모두 수강했지만, 중요도가 높은 쟁점이나 빈출 되는 쟁점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시험에 나올 수 있는 모든 주제를 커버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수험 과목 대부분은 내가 전공한 법학과목인 덕분에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막연하게나마 알 것 같았고, 사례형 문제가 낯설거나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늘 시간에 쫓겨 공부했지만 강의를 들은 후 책을 보면서 이해하고 암기하는 과정이 재밌었다. 그만하면 내가 수험생활을 계속해도 될 이유와 합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2차 시험 이후 9월부터 결혼 준비를 시작했고, 퇴사 계획을 직장에 통보하였다. 직장생활과 공부, 결혼 준비를 모두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결제해놓은 인강은 다 듣지도 못한 채 한 해가 끝났다. 해가 바뀌고 나는 ‘무직’ 상태가 되었고, 3월에 결혼식을 올렸다.




#진정한 터널의 시작은 퇴사였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결국엔 꼭 해낼 거야.”

내 친구 써니는 언제나 내 선택을 응원해준다. 어디에서도 자리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나를, 항상 끊임없이 도전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라 말해준다. 저 말을 들을 때마다 ‘용기’로 포장된 나의 방황이 의미 있는 일이 된 것 같아 안심이 된다. 그런 써니와 같은 말을 매일 같이 해주는 남자 친구가 이제 가족이 되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의 퇴사를 '용기' 있는 선택이라 말한다. 그럼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직장생활을 쉽게, 편하게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다들 그 힘든 걸 견뎌내고 있는 거고, 결국 난 버티지 못해서 나왔을 뿐이야. 회사에서 버텨내고 있는 게 더 대단한 일이야.”


퇴사를 하고 결혼식까지 마친 후 학원의 정규 커리큘럼 중 GS2기부터 합류할 수 있었다.

GS는 ‘group study’의 줄임말로, 강의를 듣고 모의고사를 응시하면 같은 수업을 듣는 수험생들 내에서 등수를 매겨서 자신의 상대적 위치를 알 수 있게 하므로 일종의 group study로 보고 명칭을 지은 것 같다. 공인노무사 학원가에서는 GS0기, 1기, 2기, 3기 총 네 번의 순환으로 커리큘럼이 구성된다. 따라서 나는 절반의 커리큘럼만 따라가게 된 셈이다.


신혼집에서 많은 식물들을 키우고, 죽였다. 이제는 생명력이 강한 식물만 수경재배로 키우고 있다.

전업 수험생이자 주부로서 4~5개월은 금방 흘러갔다. 평일에는 공부를 하면서 틈틈이 집안 살림살이를 정리하고 저녁이면 남편의 퇴근시간에 맞춰서 밥을 했다. 주말이 되면 하루 종일 학원에서 지냈다. 토요일엔 오전, 오후, 저녁 세 과목의 모의고사를 보고 강의를 들었다. 밤 10시 30분이 되면 남편이 차로 데리러 오거나 야식을 준비해두었다. 그리고 저녁 6시 안에 수업이 끝나는 일요일에는 저녁을 먹고 남편과 청소를 하였다. 알차게 짜인 하루하루가 빠르게 흘러갔다는 것은 그 시간이 그리 힘들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내 마음의 불안은 다른 곳에서 싹트고 있었다. ‘무직’이라서 신용카드 하나도 내 이름으로 만들 수 없었고, 홈페이지 회원가입을 하는 사소한 일에서도 내가 소속된 카테고리가 없음을 확인받았다.

대학 동기들을 만나거나 친구 결혼식에 가면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대학 동기들은 대부분은 변호사가 되었거나 대기업이나 공기업 법무팀에서 일을 한다. 이직이나 승진, 결혼 등에 관하여 대화를 나누다 보면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기준이 많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수입도 높아지다 보니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고, 결혼할 사람에 대한 기준이 어느 정도 정해져가고 있었다.

특히 결혼식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안부를 묻다가 "그래서 지금 어디서 일한다고 했지?"라는 질문을 받으면 "요즘 퇴사하고 공부하는 중이야."라고 대답은 하지만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대학시절 내내 방황하던 친구들도 뒤늦게라도 로스쿨에 입학해서 공부를 하거나 번듯한 직장에 취업을 했고, 학창 시절 철없이 말썽을 피우던 동창들도 작은 가게를 차리거나 사업을 하면서 성실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도대체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https://brunch.co.kr/@shining-star/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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