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난병은 회사에서도 통했다.
나는 공공연하게 가난뱅이, 멋을 모르는 촌스러운 신입사원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매우 잘, 나에 대한 소문을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 했다.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가 사는 방법이었다.
알지만 모른 척, 모르는 건 또 모른 척
그렇게 살아야 마음이 편했다.
덕분에 나는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만들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럭저럭 6개월이 흘러 정직원이 됐다.
100만원 남짓이던 월급이 올랐다.
180만원이다.
여전히 고시원 정도가 내가 살 수 있는 최선의 장소였지만 조금 여유가 생겼다.
고시원 35만원, 학자금 대출 30만원, 휴대폰비 5만원. 이렇게 하고도 110만원이 남았다.
기적 같은 돈이다.
뭘 할까 생각하다가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나!”
“응, 뭐해?”
“나? 나야. 알바 중이지.”
“알바?”
“어, 내가 말 안했었나?”
“몰랐어. 갑자기 왜?”
“갑자기라니 하하 누나도 참. 얼마라도 벌어야지.”
이제 고등학생이 된 동생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나는 짐작도 못하고 있었다.
늘 엄마, 아빠는 각자 닥친 문제들을 해결하느라
자식들에게 관심을 쏟을 수가 없었다. 그 모습에 질린 나는 다르게 살겠다고 큰 소리 쳤는데 지금 이 순간 두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동생은 하교 후에 패스트푸드점에서
오후 6시부터 11시까지 5시간을 꼬박 일했다.
그리고 오후 11시 30분부터 새벽 2시까지
동네 독서실에서 혼자 공부를 했다.
다음 날 새벽 6시에 일어나 교복을 다려 입고 학교에 가는 패턴.
내가 그랬듯이 가끔 차비가 없어서 걸어가기도 했다.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우리는 웃으며 했다.
110만원이 찍힌 통장을 들여다 보는데 하염없이 눈 앞이 뿌얘졌다가 맑아졌다가 했다.
훔치면 다시 눈물이 차올라 뭐라고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누나?”
“어....너 너무 오래 자리 비우는 거 아냐?”
“아냐, 어차피 끝나는 시간이었어. 별일 없지? 얼굴 못 보니까 아쉬워 아주.”
“장난은! 배 안 고파?”
“햄버거 남은 거 먹었어. 괜찮아.”
“주말에 보자. 고기 먹자.”
“우와, 고기? 안 그래도 삼겹살 먹고 싶었는데.”
“응, 먹자. 많이 아주 많이.”
“오, 웬 횡재야! 월급 받았어?”
겨우 삼겹살에 동생은 세상을 얻은 듯한 목소리가 됐다. 정직원이 됐다고 하자 더 목소리가 높아졌다.
“누나, 정말 축하해! 엇, 나 지금 들어가봐야겠다. 토요일에 전화할게!”
“응. 조심히 일해.”
“걱정마셔. 끊는다.”
딸깍.
전화를 끊고 펑펑 울었다.
옆방에서 ‘쾅쾅’ 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사람을 배려할 여유가 없었다.
미안하다고, 시끄럽게 굴어서 정말 미안한데 30분만 나 좀 봐달라고
소리소리 지르면서 막 울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