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계란을 샀다. 아이는 태어나 계란을 먹어본 적이 없다. 계란뿐 아니라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탕, 아이스크림, 초콜릿도 여태 한 번을 먹어보지 못했다. 아이가 가지고 있는 음식 알레르기 때문이다. 아이의 질환으로 나는 새로운 세상을 살아야 했다. 빵을 먹던 손으로 아이를 만져서는 안 되고, 밀가루와 계란이 첨가된 음식은 싱크대에서 허리를 굽혀 먹어야 했다. 양치를 하지 않고서는 아이에게 가벼운 뽀뽀도 할 수 없다. 내 손과 입에 묻은 음식물이 아이에게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밀가루와 계란, 견과류는 우리 집에서 1급 발암물질과도 같다. 어떤 음식은 아이 몸에 닿기만 해도 피부가 부풀어 오르고 아주 조금만 섭취해도 호흡이 곤란해진다. 나는 매 순간 불안과 안도의 숨을 번갈아 쉬어야 했다.
아나필락시스란 용어도 아이가 태어나고 처음 알게 됐다. 아나필락시스는 알레르기 원인 물질이 노출되면 두드러기나 호흡곤란, 혈압저하 같은 비정상적인 과민반응을 일으키는 현상이다. 알레르기 반응 중에서도 가장 심한 급성 증상이다. 나는 아이의 몸이 보내는 신호를 누구보다 빨리 알아차려야 했다. 아이가 조금만 기침을 해도 숨소리를 살펴 들어야 했고 아이가 먹는 모든 음식은 손수 만들어야 했다. 알레르기 음식을 평생 먹지 못해도 좋으니 생명이 위험하지만 않게 해달라고 수없이 기도했다.
매일 아이의 도시락과 간식을 챙기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가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5살까지 보육기관에 보내지 않았고 6살부터는 매일 아이의 도시락을 쌌다. 아이를 기관에 보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입학상담을 할 때마다 아이가 도시락을 먹어도 괜찮은지 반복해서 물어야 했고 아이의 질병 자체로 입학을 거부당한 기억도 있다. 그때 나는 알았다. 존재 자체로 거부와 차별을 당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그 대상이 내 아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아이가 스스로 음식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고 누구에게라도 자신의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 면역치료를 받기로 결정했다. 지켜보는 과정이 쉽지 않고 또 위험한 순간을 목격하더라도 아이가 조금이라도 먹는 음식이 위험하지 않다고 느낄 정도만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가 처음 먹을 계란을 삶으면서도 걱정이 시작됐다. 공기 중에 퍼지는 부유물에 반응이 있으면 어쩌나 불안이 높아진다. 원인을 제대로 알 수 있으면 그나마 낫지만 이유조차 모를 때는 더 괴로워진다. 그러나 의연해져야 한다. 아이가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 나 정말 괜찮을까? 무서워!”
“괜찮을 거야. 혹시라도 가렵거나 반응이 있어도 옆에 의사선생님이 있으니까 바로 약 주실 거야.”
“그래도 무서워.”
두려워하는 아이의 손을 잡고 병원으로 향한다. 아이가 오늘 먹을 계란의 양은 1g. 아이스크림 스푼 하나도 채우지 못하는 양이다. 맥박을 재고 피부 테스트를 하고 흰자와 노른자를 합쳐 1g을 먹는다. 오늘만큼은 코로나의 공포도 한걸음 뒤로 밀려난다. 괜찮아, 괜찮아. 마음속으로 얼마나 되뇌었는지 모른다. 1g의 계란을 먹고 병원에서 20분을 대기하며 다시 맥박을 재고 몸 상태를 다시 확인받고서야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가 갑자기 목이 간지럽다고 한다. 아이의 말 한마디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병원으로 다시 차를 돌려야 하나, 조금 더 지켜봐야 하나 지금 결정해야 한다. 아이의 알레르기 쇼크 증상은 조금만 지체돼도 생명이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목이 간지러운 것 이외에 다른 이상반응이 없고 비상약도 있으니 조금 더 지켜보기로 한다. 다행스럽게도 위험한 응급상황은 없었고 나는 또 놀란 가슴을 한 번 쓸어내렸다.
병원에서 안내를 받은 대로 이제 일주일 동안 매일 1g씩 계란을 먹고 일주일이 괜찮으면 다음 주에는 2g씩 계란을 먹는 치료를 진행하게 된다. 계란 1개가 약 50g이니 아이가 계란 하나를 먹기 위해 나는 얼마나 가슴 졸이며 아이를 지켜봐야 하나 아득해진다. 계란 1g을 먹고도 목이 간지럽고 배가 조금 아프다는 아이에게 이 치료를 계속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다시 생각해 보지만 그래도 희망을 믿어보기로 한다. 너에게 세상 모든 음식을 맛보게 해주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