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버리면 사람이 보이고 호칭이 보인다

by 자체발광

내 눈과 귀에 들어오지 않은 호칭, 지칭이 더 있겠지만, 여기까지만 살펴봐도 이 나라의 언어가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피부에 와닿는다. 호칭과 지칭에서 여성을 인격체로 보지 않고 대상화했음을 보았다. '여자 : 남자' 혹은 ‘남자 : 여자’라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고 '사람 : 여자'로 대비시키니까 일관성은 기대할 수 없었고, 대등함은 남의 나라 얘기가 되었고, 엉망진창으로 얽혀서 복잡하기만 하다. 남과 여에 해당하는 호칭과 지칭이 서로 대응이 되지 않고, 여성차별과 나이가 적용된 위와 아래라는 상하구조에 입각해 호칭과 지칭을 부여하면서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마구잡이로 만들어졌다는 인상을 낳았다. 이렇게 호칭과 지칭이 남녀 간 대칭을 이루지 못한다는 건 사회에서 남자와 여자에게 기대하는 바가 다르다는 얘기이며,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직시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살펴봤지만 남성을 나타내는 지칭들은 남성과 여성을 다 포함하는 ‘총칭’인 반면 여성을 나타내는 지칭들은 ‘여성만’을 나타낸다. 총칭은 남성의 필요에 따라 여성을 포함하냐 배제하냐가 결정되었다. 이미 ‘子(아들 자, 사람 자.)’에서 봤지만 아들은 곧 사람이고 사람은 곧 아들이므로 딸은 아들과 대등한 존재가 아니었다. 딸도 사람이라는 뜻을 담아야 아들과 대등한 존재가 되는데, 앞에서 살펴본 대로 한자에는 애초에 딸이라는 한자조차 없기 때문에 게임이 되지 않는다. 딸은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사람’이 될 수 없는 운명을 가졌다.

한국말은 나이 빼버리고, 형제자매 서열 매겨서 줄세우는 체계를 벗어나 형이든, 언니든, 누나든, 오빠든, 동생이든 개인이 개인을, 서로가 서로를 대등하게 바라보지 않는 이상 비인간적인 언어라는 불명예 타이틀을 안고 가야 한다. 한글이 과학적인 문자라고 목에 힘을 주지만 정작 한국말은 여성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인간적인 언어라는 사실도 호칭과 지칭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엄마 뱃속에서 먼저 나온 형, 언니, 누나, 오빠는 자신들이 원해서 일찍 나온 것도 아니고, 동생(?)은 자신이 원해서 늦게 태어난 것도 아니다. 아무도 자신의 의지로 먼저 태어나고, 늦게 태어난 게 아닌데 이런 태생적인 점에 의미를 부여해서 사람을 줄세우는 건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얘기다. 태어난 순서가 가지는 의미에 의문을 던지지 않다 보니 호칭, 지칭 문제는 남녀갈등 문제로만 도마위에 오르내린다. 서열 문화가 워낙 뼛속까지 스며들어 있다 보니 출생순서는 문제로 표출이 되지 않는 데 비해 여성 비하, 여성 차별이라는 점에서만 호칭과 지칭이 불려 나오다 보니 더 반발이 심한 걸지도 모르겠다. 이런 글을 쓰고 있다고 했을 때 내 주변반응만 해도 밥 먹고 할 일 더럽게 없네, 왜 어그로 끌고 있냐였다. 인생을 이렇게밖에 살아오지 못한 내 잘못이니까 나 개인 문제로 치부하고 진도 나가자. 파고보면 출생순서와 여성 비하/차별이 담긴 호칭과 지칭은 개인을 주체적인 존재, 독립된 인격체로 보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그러면 이제 호칭체계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렇게 엉터리인 이유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영어에서


brother가 남자↔남자 / 여자→남자

sister가 여자↔여자 / 남자→여자


이 방식처럼 ‘부르는’ 사람이 여자냐 남자냐는 신경쓰지 않고, ‘불리는’ 사람이 남자냐 여자냐만을 주목하고, 상하를 구별하지 않는 호칭인데 비해 兄弟와 姉妹는 각각 ‘brother’s elder brother+brother’s younger brother’, ‘brother’s elder sister+brother’s younger sister’ 조합만 반영이 되어 있고, ‘sister’s elder brother+sister’s younger brother’와 ‘sister’s elder sister+sister’s younger sister’ 이 조합들은 반영이 되어 있지 않은 데다가 지칭과 호칭이 일치하지/짝이 맞지 않는다. 지칭은 한자로 되어 있고 호칭은 한자로 되어 있지 않아 여기서부터 박자가 맞지 않는다. 압권은 여기에 출생순서까지 더해져 위와 아래를 따지다 보니 총체적 난국이다.


兄과 弟는 brother가 brother를 부르는 말이고, 姉와 妹는 brother가 sister를 부르는 말이다. sister가 sister를 부르는 말, sister가 兄이나 弟를 부르는 말이 兄弟姉妹에 들어있지 않다. 그것도 엄마 뱃속에서 탈출한 순서에 입각한 일방향 호칭이라는 점에서 쌍방향 호칭인 brother, sister랑 성격이 달라진다.


영어에는 형, 언니, 누나, 오빠라는 호칭은 없고, 형제자매라는 지칭도 brother와 sister 두 단어로 설명이 다 된다. 위와 아래를 구분하지 않고, 불리는 사람의 성별에만 입각해 만들어진 말이다. brother는 남자가 남자를 가리킬 때, 여자가 남자를 가리킬 때 사용하고, sister는 여자가 여자를 가리킬 때, 남자가 여자를 가리킬 때 사용하기 때문에 한국말의 '형제자매'라는 말에 딱 떨어지는 말이 아니다. 형제자매누가 부르냐누구를 부르냐위냐 아래냐 이 세 가지를 계산해야 한다.


형제자매의 원칙을 따르자면 언니의 남편, 여동생의 남편은 한자로 나타낼 수가 없다. 현실은 형부, 제부라고 부르고 있지만, 문제는 sister끼리는 형(兄), 제(弟)라고 부르지 않는다 사실! 해당하는 호칭, 지칭이 없으니까 편의상 갖다붙인 거지 정석은 아니다. 여성 호칭이 궁할 때는 해당하는 글자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남성 호칭이 여성 호칭을 대신하고 있다. 누나의 입장에서 남동생의 아내 역시 한자로 나타낼 수 없다. 오빠의 아내 역시 한자로 나타낼 수 없다.


형의 아내, 오빠의 아내, 누나의 남편, 언니의 남편... 이런 식의 실체에 접근한 것도 아니고, 일관성을 부여한 것도 아니고, 영어에서처럼 법으로 맺어진(in law)이라는 사실을 주목한 것도 아닌(저울이 기울어져 있으니 '법으로 맺어진'은 눈에 들어올 리 없지 않은가.) 이 어설픈 의미부여가 명절만 되면 불편한 현실을 만들어내는 거다. 결혼으로 맺어진 남녀 관계를 '남편', '여편'으로 보지 않으니까 새언니, 형님, 아가씨, 도련님 같은 돌연변이 호칭도 출현하는 거다. 대등한 호칭, 지칭이 부재한 현실을 끌어안고 가야한다면 형의 아내, 오빠의 아내, 누나의 남편, 언니의 남편... 이런 식으로 실체라도 봐야 한다. 이것도 싫다면 영어에서처럼 ‘법으로 맺어진’ 관계를 따르든가. 물론, 가장 좋은 건 나이 치워버리고 위 아래 따지지 말고 서로를 대등한 호칭으로 부를 수 있는 언어로 거듭나는 일이다.


이 모든 호칭이 제자리를 잡으려면 한국말에서 ‘나이’를 제거해 버리는 수밖에 없다. 兄, 弟, 姉, 妹가 아닌 서로가 서로를 양방향 호칭 그러니까 'you'처럼 대등한 호칭을 사용할 때 한국말도 민주적인 언어라고 명함을 내밀 수 있게 된다. 한국말에서 You가 '너'가 될 수 있는 경우는 '동갑'일 때뿐이다. 한국어에 you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는 건 서열이 존재하는 언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너를 너라고 부르지 못하는 언어, 너와 나가 만나지 못하는 언어, 이걸 의식하지 못하는 한 한국어가 민주적인 언어라는 타이틀을 갖기는 어렵다. 개인을 개인으로 보지 않고 남녀를 가르고, 출생순서에 목숨을 거는 이상 엉뚱한 호칭을 부여해놓고 서로의 정체성을 뭉개버리는 호칭, 지칭 체계와의 작별은 먼나라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언론에서도 일상에서도 한국사회를 수직구조 사회라고 말한다. 수직구조이냐 수평구조이냐는 말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수직이냐 수평이냐는 서열, 계급 같은 어떤 조직의 분위기를 얘기하는 걸로 들릴 뿐 인간관계가 떠오르지 않는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으나 표현의 정확도에 있어서는 의문이다. 수평구조, 수직구조라는 말은 분명 남자가 만들었을 거다. 그것도 회사나 집단에 몸담고 있는 남자가. 수직, 수평이라는 말은 사람에게 쓰이지 않는다. 호칭은 인간관계를 들여다보는 거울이고, 한국사회가 인간관계에서 고민해야하는 부분은 상호존중이냐 상하존중이냐인데 이걸 주목하지 못하고 두루뭉술하게 수직구조 사회이냐 수평구조 사회이냐를 논한다. 난 그저 인간관계가 '상하존중' 사회에서 '상호존중' 사회로 바뀌길 바랄 뿐이다. 일방적 호칭이 쌍방 존중 호칭으로 바뀌길 바랄 뿐이다.


수평사회라는 말은 수직사회이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그런데, 수직사회를 진단하지 않고 결과적인 수평사회만을 논하는 건 무의미하다. 왜 수직사회인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수평적이지 않은 호칭을 손보지 않고 수평적인 사회를 만들 수는 없다. 말로는 수평적인 사회로 가야한다고 얘기하지만 호칭을 건드리지 않고서는 정말 의지가 있는 건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위냐 아래냐에 따라 달라지는 호칭과 지칭을 그대로 두고 수평사회 타령하는 건 공염불이다.


똑같은 인간으로 만나 대화를 하면서 나는 반말로 하는데 상대방이 나이, 직위, 성별 등에 가로막혀 나에게 존댓말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말하는 수평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수직사회, 수평사회를 논하면서 서열에 입각한 호칭을 들여다보지 않는 건 모순이다. 서로 반말을 쓰든가 서로 존댓말을 쓰든가 서로 같은 눈높이의 언어로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인간관계가 훨씬 풍요로워질 거다. 내세울 거라고는 나이, 직위밖에 없는 사람들에겐 힘든 일일테지만. 상대방과 나 사이에 오가는 대화가 상호존중 언어가 아닌 일방적 언어인데 어떻게 수평사회가 손에 잡히겠는가. 언어 그 중에서도 호칭, 지칭 부분을 손보지 않고서는 민주주의니 평등이니 자유니 수평사회니 아무리 읊어대봤자 눈 가리고 아웅이다. 나는 한국사회가 반말, 존댓말 사용 기준이 상대방과 내가 친하냐 친하지 않냐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니라 아무리 친해도 나이가 많냐 적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주목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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