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는 7개의 도서관이 있고, 이웃 도시에 1개의 도서관이 있고 1개의 도서관을 짓고 있는 중이다. 읽고 싶은 책이 있을 때마다 전화기에 8개의 도서관별로 적어놓고 주로 2개의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는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는 '책두레'를 이용하고, 이웃 도시 도서관까지는 버스를 타고 가서 빌려온다. 읽고 싶은데 8개의 도서관 중 아무데도 뜨지 않는 책은 그 다음으로 먼 이웃 도시까지 검색을 해서 적어만 놓고 거리가 있다보니 한 번도 빌리러 가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면서 꼭 읽고 싶었던 책을 찾던 중 원래 찾던 책은 못 찾고 대신 그 도서관에서만 눈에 들어온 책이 있었다. '그래, 올해는 도서관 하나 더 뚫어보는 거야!' 이런 심정으로 명절을 얼마 앞두고 기차를 타고 그 도서관 방문을 감행했다. 가는 김에 그동안 적어만 놓고 침흘리던 책들까지 덤으로 빌려왔다.
한 권이 유독 두꺼운 데다가 하필 명절이 끼어서 시간을 꽤 날린 덕에 일주일 연장까지 했는데도 다 못 읽은 책이 있었고 반납기간이 다가와서 재대출을 하기로 작정했다. 그 와중에 아이가 지난 번에 거기까지 간 김에 사다달라고 했는데 사오지 못했던 간식을 이번에는 꼭 사다달라고 부탁을 했다. 지난 번에는 주말에 다녀왔더니 줄이 길어서 못 사고 그냥 왔는데(성심당 줄은 그보다 더 길어도 잘 기다렸는데, 그 줄은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 이번에도 주말에 방문하면 또 못 사고 올 게 뻔해서 반납 날짜를 당겨서 평일에 가기로 했는데 하필 가려고 했던 날 어제(2025. 02. 07.) 눈이 내리고 있었다. 밖을 가리키면서 눈이 내리는데 꼭 가야겠냐고 했더니 가야된단다.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으면 간식을 사든 못사든 주말을 강력하게 밀었을텐데, 그다지 많이 내리는 눈도 아니어서 갈까 말까 갈등을 하다가 주말에 가면 또 줄 때문에 그냥 올 게 뻔해서 강행을 해버렸다.
우산을 들고 나갔는데 가서 보니까 거긴 눈이 내리지 않은 건지 다 녹은 건지 눈이 안 보였다. 버스를 한 번 갈아타야 되는데, 환승 정류장에서 시간표를 보니까 운행 횟수가 얼마 안 돼서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다. 3정거장 거리라 지난번처럼 버스를 포기하고 걸어가기로 했는데 문제는 날씨였다. 그동안 겨울날씨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추운 거 모르고 겨울을 나고 있었는데 어제는 시베리아 벌판이 따로 없었다. 집에서 고작 40분 거리인데 서울에서 겪었던 날씨 뺨쳤다. 어제가 추운 날씨이긴 했지만 출발할 때는 그렇게까지 추운 줄 몰랐다. 다리를 건너서 하천까지 통과하고 나니까(그 하천이 얼어 있는 걸 처음 봤던지라 다리 건너다 말고 풍경 사진까지 몇 장 찍었다.) 따뜻한 남쪽 나라가 따로 없었다. 언제 추웠냐는 듯 바람도 없고 딴세상이었다.
기차까지 타고 갔는데 내가 사는 동네에서 빌려 볼 수 있는 책을 빌려오면 안 되니까 도서관에 도착해서 일단 반납할 건 반납하고, 재대출 할 건 따로 빼놓고, 읽고 싶은 책을 찾아서 쌓아놓고 전화기를 켜서 도서관 창 2개를 왔다갔다 하면서 검색을 한 다음 동네 도서관이랑 겹치는 책들은 빼놓고 권 수를 채워서 대출했다. 도서관을 나와 이번에는 다른 길로 걸어오는데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 넘의 교육도서관들은 도시마다 왜 다 교통이 그지같은 데 위치해 있어서 이 고생을 하게 하나.', '정권이 바뀌는 걸 실감할 때가 도서관에 신착 도서가 들어오는 분위기였는데, 이번 정권 때도 책이 더럽게 안 들어왔네. O 대통령 때랑 O 대통령 때가 좋았지.', '나같이 극성을 떠는 독자들만 있으면 작가들은 굶어죽겠다. 프랑스처럼 책을 빌려갈 때마다 작가들한테 일정 금액을 도서관에서 부담해주면 좋겠다(몰랐을 때는 미안한 마음이고 뭐고 없었는데, 한번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다 보니 공짜 독서에 빚을 진 기분이랄까. 그래도 희망도서는 한 달에 3권씩 따박따박 신청한다. 나는 참 편리한 뇌구조를 가졌다.). 밑도 끝도 없는 생각까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전자책 단말기가 처음 나왔던 초창기에 전자책 단말기를 샀다. 정작 읽을 수 있는 전자책은 구경하기 힘들어서 책읽기보다 메모장 기능으로 더 써먹어야 했다. 내가 구입한 단말기는 2탄이었는데 3탄까지인가 출시하고 나서 전자책 단말기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그 회사 전자책까지 같이 닫아버렸고 내 첫 전자책 단말기는 아예 메모장 기능으로만 써먹어야 했다. 시간이 지나고 기종은 다르지만 인터넷 서점에서도 전자책 단말기를 팔만큼 대중화 되고 전자책 도서관도 생기고 했지만, 멀쩡한 내 전자책 단말기는 호환이 되지 않아 써먹을 수 없는 그림의 떡이었다. 그때의 아픈 기억 때문에 전자책 단말기를 새로 안 사고 십 년도 넘게 버티다가 책 보관 문제 해결 차원에서 뒤늦게 '이제 한번 사볼까!' 해서 샀는데, 이번엔 속도도 느리고 전자책 가격이나 종이책 가격이나 거기서 거기라 그럴 바엔 종이책을 사지 뭐하러 전자책을 사나 싶었고, 결정적으로 도서관 전자책은 어차피 이용할 수 없는 단말기였던 터라(구입 전 판단 실수!) 두 전자책 단말기가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전자책은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컴퓨터 화면으로 읽게 되었다.
전자책은 도서관 가기 귀찮을 때 혹은 종이책은 없고 전자책으로만 검색될 때 읽기에 딱이었다. 아무래도 책을 읽는 맛은 종이책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전자책이 좋은 점은 컴퓨터 자판으로 필사를 하기 편하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필사 노트가 따로 나올만큼 필사가 권장되고 있지만 30대 때 필사를 하다가 지쳐서 나가떨어진 이후 도서관 전자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필사 천국을 맛봤다. 컴퓨터 자판으로 필사를 하기가 편해서다. 종이책도 반납하기 전에 컴퓨터 메모장에 필사를 해놓는데 이건 좀 귀찮은 작업이다. 책을 고정하려면 고생 좀 해야해서 독서대를 비롯 고정 도구를 사는 데도 거금을 써보았으나 딱히 이거다 싶은 제품을 만나지 못했는데, 최근에 괜찮은 제품을 만나서 기대 중이다. 종이책과 전자책 두 가지가 다 검색에 뜰 때는 필사를 생각해서 전자책을 대출하느냐 책 읽는 맛을 선택하느냐 기로에 설 때도 있다.
내가 주로 이용하는 전자책 도서관은 한 군데는 구독형 도서관이고, 한 군데는 소장형 도서관이다. 소장형 도서관은 책이 많지 않아서 검색을 하면 뜨는 책보다 뜨지 않는 책이 더 많고, 구독형 도서관은 책은 많은데 보관함에 담아둔 책이 사용 중지된 콘텐츠라 대출할 수 없다고 뜨는 경우가 많아서 제때 읽지 않으면 안녕하는 책이 많다. 그런 책들은 '윌라'나 종이책 도서관을 기웃거려야 하지만 만나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소장형 도서관은 5권까지 대출 가능하고 구독형 도서관은 10권까지 대출 가능한데 구독형 도서관은 대출 권수에 따라 도서관에서 비용을 부담하는 형태다. 다 못 읽었는데 자동 반납이 되면 도서관에 미안해진다. 그래서, 전자책 도서관 두 군데 다 뜨는 책은 웬만하면 소장형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따끈따끈한 신간 서적은 구독형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다. 전자책 도서관에 드나들기 시작했던 초반에는 10권을 초과해 버려서 다음 달을 기다려야 했던 적도 있지만, 책은 역시 손으로 넘기면서 봐야 제맛이라 발품을 팔게 된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왔는데 읽다 말고 책장에 그 책이 꽂혀있다는 걸 알고 나면 울고 싶어진다. 이웃 도시까지 가서 빌려왔을 때는 타격이 정말 크다. 그것도 다 읽고 나서 책장에 있는 책이 눈에 들어오면 괴롭다. 더 괴로운 건 그렇게 빌려다 읽던 와중에 '이 책은 주문해야돼!' 이렇게 꽂혀 버려서 주문을 하려고 서점 사이트에서 책을 고르고 주문 버튼을 누른 순간 이미 주문한 책이라는 문구가 뜨면 그때는 황당 그 자체다. 딱 한 번 빼고! '어머, 나한테 이 책이 있었네! 돈 굳었다!' 이런 적이 있다. 그리고, 이런 내가 한심해서 슬퍼졌다. 이런 사고(事故)를 방지하려고 전화기에 적어 놓을 때 서점 사이트에 접속해서 구매 전력이 있는지 찾아보기도 하는데, 문제는 이 작업을 깜박해버릴 때가 있다는 거.
'내가 이걸 어디서 봤더라?' 이런 글귀라도 떠오르는 날이면 그날은 반쯤은 미쳐버린다. 분명 어디서 본 글인데 도대체 어떤 책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는 책장마다 순회를 몇 번씩 한다. 어떤 때는 아이가 "엄마, 왜 그래?" 할 정도다. 어제도 분명 최근에 어디서 본 글귀인데 어떤 책인지 떠오르지 않는 책이 있어서 저녁을 차려주고 서점사이트를 열어놓고 책 찾기에 돌입했다. 아뿔싸! 이미 주문해서 어제 도착한 책 내용이었다.
며칠 전에 남편이 다음 독서모임에 선정된 책이라고 빌려다 달라고 한 책이 있었다. 퇴근한 남편한테 빌려온 책을 꺼내놓고 "나 이 책 전에 읽었다. 근데, 하나도 생각이 안 나!" 이렇게 말하고 나니까 내가 책을 왜 읽나 싶은 회의가 심각하게 밀려왔다.
아이들은 읽은 책을 읽고 또 읽고 또 읽는다. 내 아이는 전화기와 사랑에 빠진 요즘은 한 번 읽기도 바쁜 거 같지만, 전에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오면 반납 날짜가 될 때까지 두 번, 세 번 읽을 때도 많았다. 다 읽은 책을 가져다 놓는 위치를 정해줬는데, 매번 책이 보이지 않아서 엄마가 얘기하기 전에 가져다 놓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한 번 더 읽을 거라서 안 가져다 놓는 거라나. 매번 이런 식이라 결국 포기했고 도서관에 가기 하루 전 날 혹은 당일 아침 아이가 등교하기 전에, 엄마책 반납하러 갈 거니까 다 읽은 거 있으면 그 위치에 가져다 놓고 가라고 하거나 그것도 깜박하면 아이 책이 반납 날짜가 된 날은 학교 간 다음 그냥 몽땅 들고 가서 반납해 버리곤 했다. 읽고 기억도 못하는데 왜 읽나 싶은 회의가 들다 보니 반납 날짜 안에 한 번 더 읽을 수 있는 아이가 부럽기도 했다.
문제는 나는 일단 읽은 책은 다시 읽는 걸 싫어한다는 거다. 필요하면 밑줄 쳐놓은 걸 훑어보는 정도가 다다. 그런데, 새로운 대책이 필요하다 싶어서 올해부터는 'Reading List'가 가능한 북마크를 꺼내 아예 '다시 읽기' 전용 북마크를 하나 만들어 버렸다. 막상 시작하고 보니 이걸 왜 이제야 시작했나 싶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오면 앞서 대출했던 사람이 밑줄을 잔뜩 그어놓거나 그것도 모자라 낙서까지 곁들여놓은 책을 만날 때가 있다. 어떤 책은 정말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자기 생각을 작성해 놓은 책들도 있는데, 읽다보면 낙서랑 밑줄이 집중을 방해해서 결국 주문을 해서 읽었던 책도 몇 권 있다. 내가 낙서를 읽는 건지 인쇄된 활자를 읽는 건지조차 헷갈릴 정도라 정신 건강을 생각해 주문을 해버렸다. 별 의미도 없는 내용에 밑줄이 좍좍 그어져 있으면 무척 신경이 거슬린다. 그것도 내 취향이랑 완전 다른 색깔의 형광펜으로 밑줄이 그어져 있으면 거부감이 상당하다. 문제는 품절인 책은 꼼짝없이 읽어야 되는데 그런 책을 읽고 났을 때는 내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기분이었다.
지난주에 이 글을 써놓고 올리려고 기다리던 중에 비슷한 주제와 비슷한 제목을 가진 기사가 얻어걸렸다. 그 기사에서 사서가 밑줄이 쳐져 있는 걸 지적하면 이용자 중에 '밑줄이 쳐져 있으면 다른 사람이 이해하기 편하다'라는 황당한 반응을 보이는 분도 있다는 글을 보았다. 같은 논리로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밑줄 쳐놓은 책도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얘기겠지? 하지만, 세상엔 나처럼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 밑줄이 쳐져 있으면 읽을 맛이 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것 정도는 상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란 기대 이전에, 이건 편하고 안 편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재에 대한 예의 문제다. 나는 내 책도 냄비받침으로 쓴다는 건 생각도 못해봤는데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냄비받침으로 쓰는 사람도 있단다. 분명 딱 그 정도의 지능과 그 정도의 영혼을 가진 사람일 거다. 아니, 내 물건조차 소중히 여길 줄 모르는 사람일 거다. 내 물건이 아까운 줄 알면 남의 물건도 아까운 걸 안다. 어차피 사람 마음이 다 내맘 같은 건 아니다. 세상도 내 상식대로 돌아가는 건 아니다. 그래도 속이 쓰리다.
https://v.daum.net/v/20250211043049600
"빌린 책 냄비 받침으로 쓰고, 밑줄도 그으셨나요?"... 공공도서관 천태만상
밑줄, 낙서 외에 또 만날 수 있는 건 어디서 물건을 산 영수증이라든가 예쁜 북클립 혹은 북마크라든가 뭔지 모를 메모 내용이 적힌 메모지들까지 수두룩하다. 이런 건 제거해 버리면 되니까 애교수준이다. 커피 자국은 기본에다 물을 엎질렀는지 꼭 삶아놓은 것처럼 한 권이 통째로 퍼져있기도 하고, 물에 젖은 얼룩자국이 있는 책은 잊을만 하면 한 번씩 만나고, 책을 접어놓는 취향에 따라 군데군데 세로로 반씩 접어놓은 책, 귀퉁이를 접어놓은 책, 45도 각도로 접어놓은 책을 만날 때도 있고, 페이지를 기억하느라 그랬는지 북마크 형태의 포스트잇이 잔뜩 붙어 있던 책, 뭘 엎질렀는지 낱장끼리 붙어버려서 강제로 떼어내고 읽었던 책까지 별의별 책을 다 만나게 된다. 신착 도서 코너에 꽂혀있는 새로 들어온 책이 물에 홀딱 젖어서 너덜너덜해진 책을 만났을 때의 그 황당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책내용만큼이나 책의 물리적 자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전자라도 가졌는지 나는 책을 지저분하게 유지하는 건 용납이 안 된다. 자기들 책을 그렇게 보는 거야 취향이라지만 도서관의 책을 그렇게 보는 건 만인의 책은 내 책이라는 개념없음이 작용한 탓이다.
어린이 책은 상태가 훨씬 심각하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저학년일 때 빌려다 준 책들은 책의 원래 모습대로 만나지 못할 때가 많았다. 가령, 틀린 그림 찾기, 숨은 그림 찾기가 나오는 부분에 이르면 이미 앞서 빌려간 아이가 동그라미를 쳐놓아서 아이가 실망한 적도 있고, 질문이 있어서 답을 써야 하는 부분들은 이미 답이 적혀 있었고, 순수하게 읽기만 하는 책이 아닌 책들은 대부분 연필, 색연필, 싸인펜 자국이 있어서 건너뛰어야 했다. 심지어 낱장이 사라진 책도 있고, 낱장의 일부분이 찢겨나간 책도 있고, 뒤에 별도로 준비되어 있는 카드나, 종이접기 모형들이나 기타 부록들은 온전히 붙어 있는 경우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종합자료실의 양육 도서에 밑줄이 좍좍 쳐져 있던 책들은 그런 책을 낳은 아이들의 부모가 빌려갔던 게 아니었을까 의심이 들었다. 도서관에서도 내새끼 유일주의를 볼 줄 몰랐다.
도서관에서 책 대출시 보증금 제도를 운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책이 파손되면 도서관에서 보증금을 취하고, 책은 대출자가 갖는 방식이 도입되면 책을 깨끗하게 보고 반납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