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꽃, 살구꽃에 이어 벚꽃이 피고 있다. 벚꽃 하면 빠지지 않는 얘기가 벚나무 원산지가 일본이냐 한국이냐는 논쟁이다. 물론, 몇 년 전에 결론은 났다. 흔하게 볼 수 있는 벚나무는 왕벚나무인데 그 왕벚나무의 원산지를 두고 일본에서는 일본이 원산지다, 한국에서는 한국이 원산지다 한일 간에 이 논쟁이 꽤 길었다. 한국에서는 왕벚나무가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했고, 일본에서는 원래 일본에서 자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는 이 논쟁을 알게 된 지가 몇 년 되지 않았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원산지 논쟁을 따라가 보려고 이것저것 찾아보지만 같은 사실을 놓고도 사람마다 다르게 써놓아서(심지어 반대로 쓴 글도 있다.)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르겠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2005년 산림청이 일본 벚나무의 DNA를 추척해서 제주 왕벚나무와 같은 종임을 밝혀냈다'고 써놓았는데, 또 누군가는 '2005년 산림청이 일본 벚나무의 DNA를 추척해서 제주 왕벚나무와 다른 종임을 밝혀냈다'고 써놓았다. 이런 거 몇 번 만나면 찾아볼 의욕이 사라진다. 그래서, 결과만 취하기로 했다. 일본의 왕벚나무랑 제주도의 왕벚나무는 별개 종이라는 거. 벚나무의 원산지를 따지자면 네팔이 원산지라는 거. 구글에서 한중일 논쟁을 다룬 글에 중국 사람이 히말라야 산맥에서 벚꽃 화석이 발견되었으니까 벚꽃은 중국이 원산지라고 댓글을 달아놓은 걸 봤는데, 어떤 나라 사람인지 거기에 히말라야가 왜 중국 거냐는 반박 댓글을 달기도 했다.
대둔산에도 왕벚나무 자생지가 있어서 한국의 왕벚나무를 제주 왕벚나무라고 이름 붙이는 건 문제가 있지만, 일본도 똑같이 왕벚나무라고 하니까 제주 왕벚나무라고 이름을 지은 거 같다. 대구에도 제주에서 건너간 왕벚나무가 3그루 있지만 그건 애초에 제주도에 왕벚나무 군락지가 있음을 세계에 알린(1908년) 프랑스의 에밀 타케(Emile Taquet) 신부가 심은 거란다. 에밀 타케 신부는 제주의 식물을 전 세계에 알린 식물분류학자로 특히 제주의 왕벚나무를 유럽 학계에 처음으로 보고했고, 그 답례로 제주 농가에 온주 밀감 14그루를 들여와 재배하게 해서 제주의 감귤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제주일보). 에밀 타케 신부는 식물학 책을 읽다보면 종종 등장하는 이름이다. 한일 간에만 원산지 논쟁이 있는 줄 알았는데 Washington D.C. 벚꽃축제를 찾아보다가 한중일 간 삼국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중국 사람들은 벚나무가 중국이 원산지고 중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주장한다. 한국에서는 중국을 의식하지 않았고 중국에서는 한국은 상관없다고 두 나라 다 일본하고만 원산지 논쟁을 벌이고 있는 거였다.
국가 간 논쟁은 그렇다치고, 명색이 왕벚나무 자생지가 제주도라고 주장하는 나라에서 여의도의 벚나무는 95% 정도가 일본 왕벚나무이고 제주 왕벚나무는 한그루도 없단다. 제주도에서도 왕벚나무 유전자 검사를 해본 결과 제주 자생이 아니란다. 일본에서 역도입된 종이 대부분이란다.
Washington D.C.에서도 벚꽃축제를 한다는 걸 최근에 알게 돼서 구글을 찾아봤더니 그냥 축제도 아니고 National Cherry Blossom Festival이란다. 내 기억에 학교 때 영어 교과서에서 Washington D.C. 포토맥 강가에 심어진 벚꽃나무 사진을 봤던 거 같다. 그 벚꽃이 일본에서 건너갔다는 건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National이라는 말에 꽂혀서 이것저것 찾아봤다. 놀라운 역사가 숨어 있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학교 때 배운 가쓰라 태프트 밀약에 등장하는 필리핀의 초대 총독을 역임한 육군장관 윌리엄 태프트(William Howard Taft)랑 일본의 수상 가쓰라 타로(桂太郞)가 도쿄에서 만나 일본은 조선을 지배하고, 미국은 필리핀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상호 승인하는 밀약을 맺었고(어떤 글에서는 구두 언약을 맺었다고 쓰여 있다. 학교 때 '가쓰라 태프트 밀약', '가쓰라 태프트 조약'이라고 배운 기억이 나는데, 미국 교과서에는 이 내용이 등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구글에는 Taft–Katsura meeting, Taft–Katsura agreement, Taft-Katsura Memorandum이라고 나온다. 찾아보니 미국에서는 이건 그냥 말로 한 언약이기 때문에 공식적인 역사는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가쓰라 태프트 밀약 이후 대한제국은 을사늑약으로 외교권 박탈과 함께 통감부가 설치되었고, 태프트를 일본으로 보냈던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는 러일 전쟁을 종결시킨 공으로 1906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조선 지배를 승인해준 감사의 표시로 4년 후 태프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태프트 대통령한테 일본이 선물해 준 벚나무들이었다. 두 강대국끼리 남의 나라를 놓고 거래를 한 후 우정의 표시로 벚나무를 선물했던 거다.
1910년에 처음 기부받은 2,000그루는 곤충과 박테리아에 감염돼서 연구를 위해 목숨을 건진 12그루를 제외한 나머지는 태프트 대통령의 명령으로 불에 태워버렸고, 유감이라는 서한을 받은 일본은 2012년에 3020그루를 다시 Washington D.C.에 보냈다. 그런데, 이 벚나무가 제주 왕벚나무란다. 실제로 미국 농무부에서 유전자 검사를 해봤더니 제주 왕벚나무랑 유전자 서열이 일치한단다. 국립산림과학원에서도 몇 번이나 방문해서 표본을 채취해 와서 유전자 분석을 수차례 실시한 결과 제주 왕벚나무랑 같은 걸로 확인이 됐단다. 그러니까, 일본이 제주도에서 착취해다가 미국에 선물했다는 얘긴데(정확히는 제주에서 왕벚나무를 가져다가 대량 증식을 시킨 다음 3020그루나 기증했다.), 일본이 일본 거라고 우길 수 있는 이유가 대한제국은 일본 식민지였으니까. 이 벚나무들은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반일 감정이 일어서 미국 시민들이 일부(정확히는 4그루)를 베어냈다. 2차 세계대전 동안은 이름도 Japanese Cherry Trees에서 Oriental cherry로 불렸다. 1942년부터 1947년까지는 벚꽃 축제도 취소되었다.
여기서부터가 놀라운 내용이다. 진주만 공격 당시 일본에 대한 반감으로 미국 시민들이 벚나무들을 베어버리려고 했는데 이승만, 서재필 박사를 비롯한 재미교포들이 벚꽃의 원산지가 제주도라고 미국인들을 설득해서 벌목을 막은 덕에 나무들이 살아남았다고 한다. 이승만은 세계 식물 도감을 들고 미국 하원 의원들을 찾아가기까지 했다. 당시 Japanese Cherry Trees로 불리고 있던 것을 이승만 전 대통령이 미국 정부에 Korean Cherry Trees로 고쳐줄 것을 건의했지만 미국은 증거가 부족하다면서 Oriental cherry로 바꿨단다. 언젠가 미국 신문에서 읽었던 기사에는 미국 시민들이 일본의 진주만 폭격에 대한 반감이 커서 Oriental cherry로 바꾸자고 주장했다는 글을 본 기억이 있는데 뭐가 진실인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승만 전 대통령이 못마땅해 하니까 American University 총장의 제안으로 1943년 4월 8일 이승만 전 대통령이 American University에서 열린 임시정부 수립 24주년 기념식에서 하와이의 교민 단체인 대한부인구제회에서 기증한 한국산 왕벚나무 4그루를 식재했다. 사진을 보니 표지석에는 'KOREAN CHERRY TREES'라고 쓰여 있다. 1그루가 죽어서 지금은 3그루만 남아 있다고 한다.
오늘날 Washington D.C. 벚꽃축제를 다룬 글이나 기사를 보면 Washington D.C. 벚꽃축제에는 기모노를 입은 일본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일본 사람들도 일본이 선물로 보내준 벚꽃나무라는 역사를 알고 있어서일 거다. WIKIPEDIA에는 Korean Cherry Trees라는 말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Taft–Katsura 역사도 등장하지 않는다. Oriental cherry라는 말은 한 번 등장하고, 벚나무 종류도 온통 일본어로 되어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그저 일본이 선물해준 정도로 받아들이는 거 같다.
꽃이 무슨 죄이겠는가. 앉아서 당한 역사지만 한국 정부에서 선물한 것도 아닌데 한국산이라고 우길 수는 없지 않은가. 다만, 이런 아픈 역사는 알고 있어야겠기에 벚꽃이 피는 걸 보면서 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벚꽃이 일본 국화라면서 남의 나라 국화인데 대한민국에서 굳이 벚꽃축제를 굳이 즐겨야겠냐, 일본의 식민지 시절을 겪었는데 벚꽃축제가 웬말이냐 한때 이런 시기도 있었다. 벚꽃을 일본의 국화(國花)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일본은 국화(國花)가 지정되어 있지 않다. 황실을 상징하는 꽃 '국화(菊花)'가 있을 뿐이다. 벚꽃은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본의 국민꽃일 뿐이다. 물론 일본 사람 말로는 일본 사람들에게 벚꽃은 일본의 역사, 문화, 정체성과 밀접관 관련이 있기 때문에 단순히 아름다운 나무 그 이상이라고는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역사를 떠나 원래 벚꽃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반짝 피었다가 금방 지는 것도 맘에 안 들고, 잎이 나기 전 꽃이 먼저 피는 이른 봄꽃들은 내 취향이 아니라서다. 거실에서 문만 열면 벚나무 가로수가 하천을 따라 늘어서 있어서 벚꽃이 피어있는 내내 감상을 하다보니까 더 감흥이 없는 거 같다. 벚나무는 꽃보다 가로무늬를 갖고 있는 수피가 더 눈길을 끌었다.
웬만한 나무들은 다 세로무늬를 가졌는데 벚나무나 자작나무는 가로무늬를 가졌다. 아니나 다를까. 팔만대장경판의 반 이상이 산벚나무로 만들어졌단다. 세로로 갈라지지 않고 가로로 갈라지는 성질이 빛을 발했나 보다. 벚나무는 무기, 악기, 가구도 만드는 등 여러 곳에 쓰였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