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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여운 Apr 12. 2024

영혼의 조각

무늬와 향기


어제는 책벗의 집에 들러 함께 저녁을 먹었다. 남편들도 아이들도 제각각 자신들의 시간을 가지는 동안 우리는 모처럼 오롯이 단 둘이 방해받지 않고 대화를 나누었다.


내 글을 좋아한다는 그녀가 말했다.

(또 심쿵! 나는 감동이 헤픈 사람이다.)


글에서도 그림에서도 핸드메이드 작품에서도 나의 감성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좋다고. 나를 알고서 보니 글도 그림도 나랑 완전히 똑같다고.


영혼의 조각이어서 그렇다.

어느 것 하나 혼이 담기지 않을 재간이 있나.

들킬 수밖에.


독서모임에서 처음 만나서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어 온 열 달 남짓의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를 관찰하고 발견하고 느끼고 어느덧 어느 정도는 알게 된 것이다.


안다는 것이 고향이나 가족, 학력이나 전공, 직업이나 경제력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그런 건 하나도 모르지만 관계에 전혀 지장이 없다. 필요가 없다. 이미 충분하다.

  

대신에 우리는 서로의 손짓과 표정, 주로 사용하는 어휘나 표현법, 말과 행동, 유머 코드와 환한 미소, 어떤 책과 문장 또는 어떤 커피를 좋아하는지 등의 취향과 취미, 누군가는 새 이름을 잘 알고 누군가는 꽃과 나무의 이름을 척척 알려주고 서로가 무엇을 사랑해서 그 분야의 척척박사가 되었는지 등 언제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모르게 서로 스며들어 배어 나온 영혼의 무늬와 향기만을 알 뿐이다.


그것은 느끼는 것일 뿐 뭐라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자신도 모르게 알고 있는 것이다. 서로에게 물든 것이다. 들킨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서로에게 들켜서 좋다. 이 들킴이 좋다.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해서 쉽게 믿고 상처받고 실망을 거듭한데도 나는 또 어느새 좋아하고 있다. 그렇다고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려고 내 마음 흐르는 방향을 거스르는 것이 내게는 더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냥 좋아하고 말지, 들키고 말지.


그런 내가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이 있다. 바로 질문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멋있고 부럽다. 그 곁에 있는 것이 좋다. 그 옆에서 함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다. 나도 내 이야기만 앞세우기보다 상대방을 궁금해하고 먼저 질문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건 마음이나 관심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내향적인 성향 탓이다. 좋아요는 눌러도 먼저 선뜻 댓글을 달지 못하는 것도 그렇다. 대신에 나는 조용히 관찰을 한다. 그리고  나의 좋아요는 백만 스물 두 배쯤 진심이다. 그런 내가 당신 앞에서 말이 많아지고 있다면 좋아한다는 뜻이다. 완전무장해제됐다는 의미이다.


나는 어제도 말이 많았고 오늘 지금도 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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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수다를 나누는 동안 내 대신 남편 작업을 도운 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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