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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여운 Apr 29. 2024

금사빠 북클럽

책연과 필연 사이

이번 이야기는 책방 답사를 넘어 책방 순례라고 부르며 시작하고 싶다. 가장 성스러운 마음으로 꾸준히 찾아 다니고 있으니 감히 그렇게 불러도 되지 않을까?


이 인연의 시작은 서점에서 일하면서 글쓰기 수업을 들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출근하기 전에 시간을 내어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모임에 참여했다. 같은 이야기에 밑줄을 긋고 서로의 글에 함께 울고 웃으며 관계라는 게 반드시 만나온 시간에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걸 새삼 일깨워주는 만남이었다. 우리는 글을 통해 자신의 일부를 나눈 것이다. 책연(冊緣)이고 필연(筆緣)이다. 서로 완전한 타인이었던 우리는 그때 만난 인연으로 2년이 넘도록 공간만 옮겨 왔을 뿐 여전히 우정을 쌓고 있다. 그리고 진심으로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고 있다. 꾸준히 지치지 않고.  


바로 그때 그렇게 만난 글벗 중 한 사람이 동네책방을 낸 것이다. 그것도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방이다. 이름도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책의 제목에서 따와서 <돌멩이수프>로 지었단다. 그녀 역시 <다시 태어난 지구>라는 그림책을 내고 환경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다. 그곳에서는 새들이 머무는 숲의 소리가 난다. 돌숲 돌숲 돌숲! 그리고 우리 글벗들 중 몇몇은 여전히 이곳 동네책방에 모여 함께 책을 읽는다. 돌숲지기의 넉넉한 다정함과 필살의 유머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기댈 수 있는 틈을 내어준다. 그 덕분에 다들 집 근처 가까운 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법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오는 것이리라. 돌멩이 수프의 솥단지가 식지 않는 힘이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는 걸 안다. 서점에 일하면서 나는 가장 단순하고도 위대한 착각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하루종일 서점에 있으니 책을 좋아하고 꾸준히 읽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구나 생각하기 쉽다. 병원에 가면 세상에 아픈 사람만 가득하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의외로 책을 잘 안 산다. 그림책은 더더욱! 실제로 여기저기 책방을 다녀보면 현실적으로 힘들고 어렵다는 것은 기본이었다. 지방에 들를 일이 있을 때마다 그 지역 책방을 검색해서 찾아가 보면 그사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책방들도 있었다. 순수하게 책만 팔아서는 먹고살기 어렵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독서모임, 북토크, 글쓰기 수업 등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꾸준히 병행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프로그램을 개설해도 모객 또한 쉽지 않아서 지인들의 품앗이가 필요한 것 또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정말 사랑해서 행복하기 때문에 힘듦에도 환하게 웃는 얼굴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다녀보면서 공통적으로 발견한 풍경이다. 좋아하는 공간에서 좋은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자신의 철학과 사랑, 꿈과 의미가 그곳에 있으니 비록 힘들지만 어떻게든 해내며 또한 행복할 것이다.




책방 일이 얼마나 고된지 아는 탓에 나는 그녀에게 늘 마음이 쓰인다. 그리고 그녀 덕분에 내가 마음 붙이고 다닐 수 있는 책방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지 모른다. 그곳에 가면 늘 책을 읽는 아이들이 있는데 부끄럽게도 가장 크게 떠드는 손님이 바로 나다. 반갑고 좋아서 그래. 너무 좋아서. 돌숲세권으로 이사 가고 싶다며 농담처럼 말하는 우리들은 일명 금사빠 북클럽이다. 어제는 <마틸다>를 사랑했다가 오늘은 금세 <원더>의 어거스트와 사랑에 빠진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의 제제를 함께 구하고 <로스트 웨일>의 리오를 한 마음으로 안타까워한다. 우리는 언제든 어떤 책이라도 금방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는 다들 풍요 속에 빈곤을 살고 있다. 넘치는 관계 속에서도 정작 외로움에 허덕이고 쉴 틈 없이 움직이는데도 충만함을 맛보기는커녕 바닷물을 들이켠 듯 늘 목마르다. 적당히 가면을 쓰고 잔뜩 부풀려 무장을 해봐도 불안과 자존심은 감춰지지가 않는다. 얽히고설키고 지치고 다치고 지못해 형식만 남은 부담스러운 관계들 속에서도 바로 여기 유난히 빛나는 평등하고 안전한 방탄과 완충의 공간이 있다. 책을 사이에 두고 만나는 우리는 친목 모임도 아니고 맘카페도 아니다. 오롯이 책 이야기로만 가득 채워도 늘 시간이 모자라는 꽤나 지적인 모임이다. 서열도 없고 패거리즘도 없다. 선을 넘는다 싶으면 얼른 책으로 다시 돌아오면 된다.    


"잘 들어 갔어요?"

  

책방에 다녀가면 항상 잊지 않고 나의 안녕한 귀가를 챙기는 돌숲지기 그녀의 온기가 좋다. 공간은 주인을 닮는다지. 이 책방에 나는 부디 오래도록 다니고 싶다. 순수하고 천진한 마음을 들고서. 여러 곳도 필요 없다. 이곳 한 곳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 모두는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이다. 이 별들이 서로 만나고 헤어지며 소멸하는 것은 신의 섭리에 의한 것이다. 이 신의 섭리를 우리는 '인연'이라고 부른다. 이 인연이 소중한 것은 반짝이기 때문이다. 나는 너의 빛을 받고, 너는 나의 빛을 받아서 되쏠 수 있을 때 별들은 비로소 반짝이는 존재가 되는 것.
- <최인호의 인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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