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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여운 Apr 21. 2024

가정식 백반 아니고 책방

책방 답사 2


"가정식 책방 좋아하세요?"


책방이 가정식이라니 조금 생소한 분들도 있을 것 같다. 서점이나 책방의 형태는 의외로 참 다양하다. 나도 서점에서 일하는 동안 서점학교 수업을 들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가정식 책방은 말 그대로 가정집 형태의 공간 또는 대부분 도시 외곽이나 시골에서 주택의 형태를 빌려 운영되는 작은 규모의 서점이라고 하면 적절할 듯싶다.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라기보다는 문화를 파는 곳이라고 해야할까? 요즘은 시간제로 공간대여나 북스테이 형태로 병행하며 운영하는 곳들이 제법 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곳은 거리나 위치를 따지지 않고 시간을 내어 찾아가는 법이니까.  


서점학교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도 서점 일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알았다. 우리 주변에는 관심만 가지면 정말 좋은 콘텐츠의 문화예술지원사업이 의외로 많다는 걸 그때 알았다. 마음을 두어야 그쪽으로 문이 열린다. 서점에 일하는 동안 주말 휴일을 반납해 가며 서점학교 수업뿐만 아니라 평일 출근 전에는 시간을 내어 글쓰기 모임과 그림책 수업까지 참여했다. 물론 전부 무료였다. 그리고 늦은 밤 퇴근하면서는 글을 쓰고. 잠만 조금 덜 자면 가능하다. 우리는 모두 한 자루의 양초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불태울수록 빛난다. 심지에 불을 붙여줄 그 무언가를 찾는다면. 서점에 있는 시간이 내게는 그랬다.




서점학교 수업은 온라인 강의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이미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선배들의 경험과 노하우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철학과 직접 겪은 생생한 현실들을 나누어주는 정말 귀한 내용이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아주 짤막한 몇 분 자리 인터뷰 영상에 푹 빠져들고 말았다.


"여보! 여기는 가야 해. 당장. 롸잇나우!"


그곳은 바로 공주에 있는 <길담서원>이라는 가정식 책방이었다. 남편을 끌고서 가까운 주말에 시간을 내어 영상 속 그분을 직접 찾아 갔다. <길담서원>을 만나러 갔다. 공주의 구 시가지 안쪽 동네의 낡고 오래된 주택이었다. 초록 대문 앞에 우리는 차를 세웠다.


알고 찾아오거나 자세히 살펴봐야만 이곳이 책방이구나 알아차릴 만큼 눈에 띄는 간판이나 이렇다 할 인위적인 표식이 없었다. 낡은 대문 안으로 들어서니 꽃과 풀이 한창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주택이었다. 미닫이 문 안쪽으로 들어서니 그제야 책방의 존재감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터뷰 영상 속에서 뵈었던 바로 그분이 환한 미소로 반겨 주셨다. 그곳을 운영하고 있는 뽀스띠노님과 여름나무님 두 분은 자매라고 하셨다.


사진출처 - 길담서원 인스타그램에서


그저 손님인 듯 자연스레 들어섰다가 너무 반가운 나머지 나는 서점학교 수업을 듣다가 반해서 찾아왔다고 솔직하게 털어놓고 말았다. 뽀스띠노님은 몹시도 부끄러워하셨다. 부끄러움은 잠시 우리는 흔쾌히 마주앉아 한참을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반했던 공간과 철학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서울 서촌에서 <길담서원>을 운영하시다가 이곳 공주의 이 주택을 보고 반해서 다 정리하고 내려오셨다고 했다. 그 용기가 너무나 멋있게 느껴졌다. 이런 게 진정한 로망이구나.


뽀스띠노님은 자신이 직접 읽거나 소장하고 싶은 인문학 도서를 중심으로 큐레이션을 하고 계셨다. 내부 공간 역시 거실과 방 두 개의 틀을 그대로 살려두었다. 책과 클래식 음악이 워싸고 있는 그 작은 공간에, 심지어 작은 방은 미술관이었다. 그동안 모은 좋아하는 작품이나 지역의 예술가 분들의 작품을 걸어둔다고 하셨다. 네이버 카페에서 책 소개뿐만 아니라 여러 다양한 인문학 수업을 진행하고 계신다. 하고자 한다면 공간의 크기는 아무런 제약이 되지 않는다는 걸 직접 보여주고 계셨다. 뽀스띠노님이 직접 쓰신 <길담서원, 작은 공간의 가능성>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다. 나는 그 책과 함께 몇 권을 더 골랐다. 남편은 바로 그곳에서 그의 첫 그림책이 된 레오 리오니의 <파랑이와 노랑이>를 골랐다. 계산을 하고 나니 비닐봉지나 쇼핑백이 아니라 주변 친구들과 지인들이 모아서 보내줬다는 에코백에 책을 담아주셨다. 이것까지 멋있어. 나는 보답으로 내가 직접 만든 거즈행주를 선물했다.


두 분은 책방도 꾸리시면서 가끔 빵을 굽고 텃밭을 일구며 살아가신다. 책방 뒤편에 있는 별채도 수리해서 새로운 무언가를 좀 더 모색해보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그 별채가 탐이 날 지경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내게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책은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였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었다.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 시골에 이렇게 작은 가정식 책방을 하면서. 책밭 글밭도 일구고 텃밭도 가꾸면서. 조화롭게 일하고 배우며, 살며 사랑하며 저물고 싶다.


책이 약이고, 책방이 약방이다. 하지만 약효는 약이 담긴 봉투가 내는 게 아니다. 그 봉투를 건네는 사람의 손길이 내는 것이다. 그 약을 지어주는 공간과 그 공간을 지키는 마음이 내는 것이다. 봉투가 아무리 그럴싸하고 공간이 아무리 화려하다고 해도 철학과 정신이 담기지 않으면 책은 그냥 비과세 상품에, 서점은 그냥 장사치에 불과하다. 나는 이곳에 다녀오면서 그 믿음이 더욱 굳건해졌다.



송무백열 [松茂柏悅]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뜻으로, 벗이 잘되는 것을 기뻐함"


뽀스띠노님이 책에 적어주신 글귀를 한 번 더 마음에 새겨 본다.



<길담서원>


p.s. 곧 연꽃 피는 계절도 다가옵니다. 계신 곳에서 그리 멀지 않다면 한 번 다녀오시길 추천드립니다.  <길담서원>만 들르기 아까우시다면 공주 계룡산 갑사와 신원사도 좋습니다. 바로 옆 부여도 들르셔서 궁남지 연꽃밭도 보시고, 왕릉원과 국립부여박물관도 추천드립니다. 정말 좋은 여행이 되실 거예요. 여행에는 책방을 꼭 끼어 넣기! 잊지 마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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