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우울의 이불을 덮고 있다면 감사를 복용할 차례예요

싶고요 했고요 됐고요

by 햇살나무 여운


오늘 아침에는 글쎄요!

세수를 하려고 보니 치약을 손 위에 짜고 있지 뭐예요. 폼클렌징으로 이 닦지 않은 게 천만다행일 지경이지요.

아무래도 아직 우울이 다 걷어지지 않은 모양이에요. 물먹은 솜이불 마냥 좀 무거워야 말이지요.

다른 때도 아니고 오월과 유월 사이에 우울이라니! 너무 안 어울리잖아요.



커피 요법도 해 보고,

싱잉볼도 울려 보고,

향도 피워 보고,

음악도 틀었어요.

단 두 줄이어서 좀 짧긴 했지만 오늘치 시도 복용했거든요.

아! 때마침 주문했던 문구가 방금 도착했어요. 택배 아저씨의 나이스 타이밍!

(저는 온갖 문방구의 클리어런스 세일을 놓치지 않는답니다.)


그런데도 안 듣는다? 그럼 우울을 걷어서 세탁기에 넣고 돌려버리는 수밖에요. 발로 지근지근 밟아서 빠는 것도 속 시원한 방법이 될 거예요. 바람 잘 통하게 앞뒤로 창문 열어놓고 얼른 내다 널어서 오뉴월 햇볕에 바짝 말려버려야지 별수 있겠어요.


그리고는 말해요. 가장 믿을만한 안전한 사람을 찾아서 시시콜콜 일러바쳐요. 나의 모든 증상들을 낱낱이 고해바쳐요. 우울을 노가리 안주 삼아 잘근잘근 씹어가며 대낮에 맥주 한 캔도 괜찮다 싶네요. 최고로 예쁜 잔이어야 해요. 느낌 알죠?




설거지도 했고요.

빨래도 해서 널었고요.

원고를 보고 또 보고 오늘치 교정교열도 봤고요.

반가운 메일을 받고 계속 써야 할 목표도 생겼고요.

밀린 수업도 들었고요.

밀린 독서 인증도 마쳤고요.

음.... 또.....

작업실엔 분위기 있게 가림막 커튼도 달았고요.

내일도 출근할 곳이 있고요.

카드값 밀리지 않고 잘 냈고요.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앞에서 덜 망설이고요.

곁에 있는 사람을 아직 사랑하고요.

나를 찾는 친구들이 있고요.

그 친구들이 부르면 달려가고요.

하루 또 무사히 마쳤고요.

다행히 오늘 아침에도 눈이 떠졌고요.

오늘도 여전히 읽고 싶고 쓰고 싶고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고요.


이 우울의 근원이 어디서 오는지 사실 나는 알고 있어요.

뭔가 눈에 보이게 딱히 이뤄낸 결과물 없이 그저 계속의 계속 상태!

재미없어 보이는 꾸역꾸역 성실하기만 한 고독!

하지만 나는 그 뿌리를 뽑을 치료법도 알고 있어요.

정체되는 기분이 든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안정되게 살 만하다는 뜻이 되기도 하잖아요.

퇴보하는 듯 느껴질 때야말로 도약하기 직전에 다다른 신호라는 걸 체득으로 알지요.

비록 고독할지라도 그 성실함만이 내가 가진 유일한 힘이라는 걸.


감사가 다시 짙어지면 오늘 밤 자려고 누웠을 때 숨은 한결 가벼워질 거예요.


https://youtu.be/3kGAlp_PNUg?si=3Q3pVMEGFFMYF9h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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