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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여운 Jul 14. 2024

한 마디로 알잘딱깔센!

친절한 손님들

공감은 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다. 감동 또한 강요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절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것이다. 매뉴얼을 넘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살아있는 마음이다. 조수는 그렇게 사람들로부터 매일 새롭게 배우고 깨우친다.


어제는 이사 들어올 준비로 분주한 아파트 베란다에 선반을 설치하는 작업이 있었다. 그 밖에도 여러 복합적인 작업이 겹쳐 있어 사수를 따라나섰다. 베란다 창문을 열고 있는데도 유난히 습하고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무더운 날씨였다.


세 시간에 걸쳐 선반 세 곳과 빨래 건조대를 설치하는 작업을 마무리했다. 뚫는 거야 뭐 드릴을 가져다 막 그냥 뚫으면 되니 금방이다. 문제는 정확한 위치 측정과 수평 맞춤이다. 의뢰인 아주머니께 원하는 높이를 짚어달라고, 이 정도면 괜찮겠느냐고 몇 번 거듭 꼼꼼하게 확인한 후 유격 없이 수평을 정확하게 맞추어 위치를 표시하고 조심스럽게 타공을 했다. 이미 말할 힘도 없이 방전된 조수는 사수의 뒷모습을 올려다보며 마음속으로 속삭인다. 예술을 하십니다 , 예술을 해요.


요청받았던 작업을 마무리할 즈음 의뢰인분께서 잠시만 뭘 좀 봐달라고 하신다. 끝방에 들어와 있는 큰 서랍장 두 개를 가운데 방으로 옮기고 싶은데 혹시 가능할지 물어오신다. '이 정도면 껌이죠!'라는 말은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는 센스를 장착한 조수는 얼른 가서 빈 박스를 가져온다. 이쪽! 하면 이쪽을 들고 박스를 깔고, 저쪽! 하면 저쪽을 들고 박스를 밀어 넣는다. 사수는 앞에서 끌고 조수는 뒤에서 민다. 사수도 조수도 이제는 알잘딱깔센이다. 집에서 심심하면 밑에 이불을 깔고서 혼자서 가구를 이리 옮겼다 저리 옮겼다 하는 게 조수의 오랜 취미라는 것은 안 비밀이다.   


"두 분은 일하시면서 어쩜 그렇게 안 싸우고 사이좋게 작업하세요?"


"저희요? 조금 전에도 싸웠는데요? 싸울 때는 존댓말로 싸워서 그래요."


처음엔 아들과 남동생분께 가구를 좀 옮겨달라고 했다가 앞에 이미 여러 일을 지나온 덕에 서로 지쳐서 짜증을 내며 미루고 있던 참이란다. 우리가 기꺼이 거뜬히 가구를 옮기니 장정 두 사람이 마음이 나셨는지 두 번째 가구는 남자 셋이서 번쩍 들어 금세 옮긴다.


마지막으로 안방에 커튼을 좀 떼어달라고 하신다. 사다리가 있으니 이 또한 금방이다. 묵직하고 두터운 두 겹 암막 커튼에 속커튼까지 떼어내고 아주머니와 함께 커튼핀을 빼는 작업을 도와드렸다. 워낙 크고 무거워서 봉투에 담는 것까지 도와드리니 무척 고마워하신다. 이게 뭐라고.


조수는 우리가 작업하고 머물렀던 자리를 마지막으로 한번 더 둘러본 후 타공 자리에 쌓인 먼지들을 물티슈로 닦아내고 선반 위나 문틀에 놓고 온 장비는 없는지 꼼꼼하게 살핀다. 사수는 이미 분실물이 많다. 제일 비싸고 좋은 줄자도 잃어버리고, 휴대용 조명도 잃어버리고, 얼마 전에는 사이즈별 드릴 비트가 들어있는 필통을 잃어버렸다. 어디에 놓고 왔는지 기억도 못하고 찾아 헤매는데 다행히 고객분이 먼저 연락을 줘서 되찾았다.


사수와 의뢰인이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동안 조수는 밖에서 장비와 쓰레기를 챙긴다. 엘리베이터를 불러 놓고 멀찌감치에서 조수도 가볍게 인사를 전하려는데, 의뢰인분께서 얼굴을 보며 인사하고 싶다고 밖에까지 나오셔서 너무 고맙다고 손을 꼬옥 잡아주신다. 심쿵했다. 의외로 낯을 많이 가리는 조수는 새삼 다짐한다. 부끄럽다고 피하지 말고 마지막까지 눈맞춤하며 제대로 예의를 갖춰 인사하겠다고.





때로는 사수나 조수보다도 더 친절한 손님들을 만난다. 그분들이야말로 자발적으로 알잘딱깔센이다!


작업실에 멋진 선반을 설치하고 나니 너무너무너무 마음에 든다며 인테리어 잡지에 나올 법한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시는 손님도 계시고, 모두가 어려워하는 작업을 해결해 주니 너무나 감사하다며 기존에 약속했던 공임을 지불하고도 또 별도로 커피 쿠폰을 보내주시거나 선뜻 사례비를 몇 만 원 더 얹어서 보내주시는 손님도 계신다.


잡지 사진 아님 주의! 의뢰인이 음악하시는 강사님이셨다.



무엇보다도 조수가 가장 감격하는 지점은 바로 진솔한 후기를 읽었을 때다.


글을 쓰는 일이 아무리 마음이 있다고 해도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욱 감동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다. 그냥 별점만 주는 것도 아니고, "감사합니다" 다섯 글자도 아니다.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서 진심으로 자발적으로 늦은 시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써주셨다. 꽤 길어서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것만 모아도 진솔한 감성에세이 한 권 나오지 않을까? 매일매일 기다려지는 리뷰!


나는 이런 글이 좋다. 저 멀리 높이 고매하고 고결한 문학도 위대하지만, 현실은 생활이다. 기있게 짝 핀 마음꽃 이야기꽃 같은, 여기 내 가까이 낮은 곳에서 우러나는 우리의 글이 좋다. 그러니 매일이 감동이다. 감동이 헤픈 조수는 오늘도 읽고 쓴다.


추신.

저희가 짐을 싣는 동안 엘리베이터를 잡아주시고, 실수로 엘리베이터가 닫혀서 꼭대기층까지 오르락내리락하는데도 무더운 날씨에 짜증 내지 않고 오래 기다려주신 이름모를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복받으실 거예요.



친절한 고객님들의 감동후기


사수님, 이참에 그림도 한 번 그려 봅시다! 벽화예술도 하실듯?
팔을 후들거리며 저 세면대를 얼마나 받치고 있었던지! 잡생각할 겨를이 없다.


여기에 뒷심을 모두 쓴 조수는 집에 가서는 발휘할 뒷심이 없어요, 사수님?!


깔끔하게 성공적으로만 보여지는 결과 뒤에는 더 힘들고 고되고 지저분하기까지 한 과정이 숨어 있다.


내공은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것이다.

- 조윤제 <다산의 마지막 습관> 중에서




*알잘딱깔센

'아서   끔하고 스있게'의 줄임말. 더 줄여서 '알잘딱'이라고도 한다.

 

- 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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