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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여운 Jun 28. 2024

때가 되면 인도한다

하늘의 의지



사수와 조수의 본(本)은 수행자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수저를 갖고 태어나지 못했다. 대신에 삽과 호미를 가지고 태어났다. 재인박명이 아니라, 운명()()하여 이것저것 닥쳐오는 대로 해내다 보니 재인()이 될 수밖에 없다. 살아보니 그렇더라.


스스로 길을 찾고() 터를 닦고(修) 일궈 나간다. 움직이는(行) 만큼 이뤄낸다. 그러니 길을 내는 가장 첫 번째 조건은 그쪽으로 마음을 내는 일이다. 일이 된다는 믿음이다. 될 것이다, 되게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움직인다. 그러니 실제로 움직이는 만큼 이뤄진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가 아니라, 열릴 때까지 두드리는 것이다.


의지는 갖되 욕심은 금물이다. 그것이 순리에 맞다면 마음에 걸림이 없이 물 흐르듯이 일은 되어지리라. 물론 손수 삽질도 하고 호미질도 해서 걸림돌도 드러내고 물길을 좀 더 깊이 고르게 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아니겠는가.


순리를 거슬러 과욕을 부리고 무리를 하게 되면 반드시 감당해야 할 몫이 생긴다. 그 방향이 옳고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했음에도 되지 않은 일이라면 인연이 아니고 길이 아닌 것이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남들은 몰라도 나 자신이 알고 하늘이 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내가 의지를 내야 하늘도 의지를 낸다. 나의 의지가 곧 하늘의 의지이다.


수행자는 관념을 경계해야 한다. 머리로 생각으로만 머무르는 것을 거부한다. 아는 만큼 실천(知行合一) 해야 한다. 아는 것을 뽐내고 말만 앞세우는 것은 수행자로서 몹시 부끄러운 노릇이다. 그래서 솔직히 나는 매일 부끄럽다. 글 또한 그 연장선이다. 타자를 이해하고 나를 정돈하는 수행의 도구이기도 하다. 그러니 체득하고 체화되어야만 쓸 수 있다. 어쩌면 그래서 나에게 글은 생(生)이고 활(活)이다. 나만큼 밖에 없으니 결국엔 한계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이 길이 가야 할 길인지 멈추어야 할 길인지 알아차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끝까지 그 감을 잃지 않고 자신에게 엄격하게 선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의 균형을 잡아나가는 끊임없는 노력의 과정이 수행일 것이다.


사수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다. 끝까지 늘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고 '돕고자 하는 사람'이다. 조수는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이다. 무언가를 배우려는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은 무엇이든 스스로 스승을 삼을 줄 안다. 인연이 스승이 되고, 길이 스승이 되고, 그 마음이 절로 스승이 된다.


마음을 품고 때가 무르익으면 하늘이 그 길로 인도할 것이다. 사수는 묵묵히 때를 기다린다. 조수는 또 묵묵히 사수의 뒤를 따를 뿐이다.






필요한 단계에 도달했을 때 스승이 눈앞에 나타난다.

 - <권법소년>



《권법소년》 하늘의 의지


길이 없으면 스스로 길을 내면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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