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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여운 Jun 16. 2024

조수의 실력이 늘지 않는 까닭

사수의 덕목


사수가 너무 금손이면 조수는 두(頭) 도사, 구(口) 도사만 된다. 말 그대로 사수가 너무 뛰어나서 다 알아서 잘하면 조수는 굳이 열심히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배워야 할 의욕도 동기도 안 생기고 구경만 해도 충분하다고 느낀다. 요청하면 알아서 척척 다 해주니 조수는 입만 살았다. 글로 쓸 만큼 머리로는 다 아는 것 같지만 아니다. 직접 할 일이 별로 없다. 시도도 해보고 실수도 해봐야 그 과정 속에서 배우고 성장도 하고 실력도 늘고 진정한 내 것이 될 텐데 굳이 안 해도 될 것 같다. 무엇보다 이미 뛰어난 사수의 눈에는 조수가 뭘 해도 어설프고 부족해 보인다. 두고 못 보고 결국 답답해서 본인이 나서서 직접 하고 말지.


사수의 덕목은 누가 뭐래도 "두고 본다!"가 아닐까? 참을 인(忍)을 새기며 좀 두자. 기회를 주자. 실수도 좀 하고 그 실수를 스스로 바로잡을 수 있도록 기다리며 바라봐 주자. 가르치려 지 말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자. 그 배우고 싶은 마음이 꺾이기보다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게 지켜봐 주고 북돋워주자. 평생 혼자 다 일할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데 난 아무래도 글렀다. 금손 사수를 이미 보유해 버려서 만년 조수로 남을 것이다. 조수는 잔소리 실력만 늘고 있다. 게다가 비자발적 조수는 딴 데 관심이 더 많다?(조수의 마음은 콩밭에)


사수님, 후계자는 따로 알아보시는 걸로 하시죠.


 



나의 사수의 대표 신공은 금손이 아니다. 진정한 신공은 따로 있다. 한 마디로 말할 것 같으면 무장해제력이라고 해야 할까? 친화력 갑이다. 방문하는 곳곳에서 만나는 처음 만나는 모든 강아지와 고양이들을 순식간에 친구로 만든다. 지켜보는 주인들이 놀란다.


"어머머! 쟤 봐! 원래 저런 애가 아닌데. 아주 그냥 따라가서 같이 살겠네!"가 다반사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도 마찬가지라고 봐야 한다. 아파트 장터에서 호떡을 사면서도 아주 가끔 한두 번 보는 그 잠깐 사이에도 알고보니 투잡 뛰는 목사님 부부였다는 그분들의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꺼내놓게 만들고, 엘리베이터에서 오고 가며 만난 아래층 새댁이 친정어머니가 치매를 앓으셔서 같이 살려고 모셔와서 가까운 곳에 집을 알아보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 온다.


작업 문의를 해오는 상담에서도 그 신공은 빛을 발한다. 지난번 다녀온 오동나무 장롱 할머니와는 또 꾸준히 통화를 하고 다른 일도 봐드리고, 그 사이 그 어르신께서 70세가 넘도록 50여 년 넘게 일을 해오셨다는 그분의 역사도 들려주었다. 나의 사수는 진정한 스토리텔러가 맞는 것 같다.

 

처음 보는 모든 동물을 친구로 만드는 무장해제신공! 사진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귀여운 첫 실습의 흔적 후, 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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